▲ '민주주의와 마음건강'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라이프인
▲ '민주주의와 마음건강'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라이프인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신 건강의 위기는 복합적 원인에서 기인한다.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재난을 겪으며 '기후 우울'과 '코로나 블루'라는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던 바 있으며, 짧은 기간 동안 사회적 참사를 연이어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불안과 슬픔 등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더욱이 지난해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이어진 준(準) 내란 상황, 그 과정에서 발생한 극단주의와 폭력 등은 국민들의 마음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반면 마음건강의 중요성은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가운데 김예지·김남희 국회의원실과 랩(LAB) 2050, 희망제작소 주최, 한국상담학회와 (사)한국심리학회 주관, (사)한국상담심리학회·한국임상심리학회 후원으로, '민주주의와 마음건강' 토론회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마음건강 지원 정책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교류했으며, 무엇보다 심리학계의 4개 학회(한국심리학회, 한국상담학회,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임상심리학회)가 모두 모여 의미를 더했다.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민주주의를 치유하는 마음'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우선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극단주의와 갈등의 심각성을 지적한 뒤, 극단주의와 폭력으로 치닫는 이유를 "인지적 차원에서 보자면 복잡한 사회 현상을 단순한 도식(편견)으로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며, 정서적 차원에서는 적대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느끼는 정체성과 소속감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김 교수는 '새로운 마음의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갈등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애매함을 견디는 시민적 지성(단정짓지 않기)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기 ▲적대적 정체성에서 우호적 정체성으로 전환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상호존중과 환대의 문화 ▲연민의 마음으로 일상의 공통 감각 회복 등을 제시했다. 또한 "민주주의는 인류의 굉장한 발명품이지만, 취약하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돌보고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며, 한강 작가의 질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를 인용하며 "현재가 미래를 구할 수 있고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이 먼 훗날 후손들을 살릴 수 있는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 김동민 중앙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 김동민 중앙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이어 김동민 중앙대학교 교수(한국상담학회 부회장)는 '근거기반실무(EBPP)와 마음건강 제도의 방향성'에 대해 발표했다. 근거기반실무란, 미국심리학회(APA) 정의에 따르면 '환자의 특성, 문화, 선호 등의 맥락에서 임상 전문성과 최선의 연구 결과를 통합하여 내담자에게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심리적 처치를 선택할 때 임상가의 전문성뿐 아니라 내담자의 선호, 필요와 같은 맥락까지 반영한 '심리서비스 제공 실무의 원리'라는 점에서 근거기반치료(EBT), 경험적으로 지지된 치료(EST)와 구분된다.

김 교수는 심리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근거기반실무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근거기반실무가 종종 '처치'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짚었다. 이후 근거기반실무 원리를 반영한 마음건강 정책 방향으로서 ▲임상가의 치료법 선택 자유 보장 ▲실무기반증거(ROM) 등을 활용해 임상가 및 임상기관의 책무성 제고(여기에서 말하는 책무성이란, 내담자에게 최적의 처치를 제공하고 그 성과를 보여야 함을 의미) ▲임상가 양성 프로그램 개선: 연구와 임상이 융합된 교육 과정 필요(대학원 과정을 임상 실무 영역 중심으로 재구조화 및 각 개설 과목에 최상의 연구 증거 반영) 제안했다.
 

▲ 배성만 단국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 배성만 단국대학교 교수. ⓒ라이프인

마지막 발제는 한국임상심리학회 회장인 배성만 단국대학교 교수가 맡아 '전국민을 위한 마음건강 제도의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배 교수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정신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체계적 심리 상담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성공적인 정신건강 지원 사업으로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을 구체적 사례로 소개했다. 해당 사업은 2022년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됐으며, 서울시 시행 결과를 분석했을 때(전국 지자체 중 서울시만 성과 측정 체계 도입) 참여자들에게서 자아존중감 및 회복탄력성과 같은 긍정적인 정서는 증가하고 우울감이나 불안감,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정서를 감소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은 지난해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으로 확대 시행됐으며,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역시 시행 첫해 긍정적인 지표를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총 15만5천여 건의 심리상담을 제공했고, 서비스 신청자 수는 4만 명을 넘겼다. 또한 전국에서 1,222개의 서비스 제공 기관이 운영되며, 5천여 명의 상담 전문가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배 교수는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89.8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마음건강 제도의 구축 방안에 대해 제언하며 ▲법제화 필요성: 정부 차원에서 심리상담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고 상담사의 전문성을 보장하는 법적 규제 필요 ▲재정적 지원: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 ▲공공과 민간 부문 간 협력: 공공기관과 민간상담센터 간의 소통과 역할 분담 ▲정신건강 관련 종사자들 간 협력 등을 이야기했다.

이날 토론회는 마음건강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과제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마음건강 정책의 제도화와 전문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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