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제70차 국제연합(UN) 총회에서 국제 사회는 지속 가능한 지구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인류의 공동 목표로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했다. 그리고 세계 각국과 기업은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가능발전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위한 지표를 개발해 왔다. 다만 각 평가 지표의 기준에 포괄적이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고, 다양한 주체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는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지속가능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2022년 지속가능발전 성과지표(SDPI)를 개발해 보급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가치연구원이 협력해 지난 11월 한글판 매뉴얼을 발간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제20회 H-ESG 세미나: SDPI와 함께 보는 지속 가능성 보고 체계 워크샵'에서는 SDPI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고 실제 조직에 적용할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SDPI 개발을 주도한 이일청 UNRISD 선임연구조정관이 참석해 '진정한 지속 가능성 평가: 지속가능발전 성과지표(SDPI)'라는 제목으로 해당 지표의 주요 내용과 활용 방안에 관해 설명했다.
이일청 박사는 우선 SDPI 개발 배경을 설명하며 "유엔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ESG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관료 조직인 유엔 기관들은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데 취약하다. 그리고 유엔 외부에서는 자본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ESG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중소기업이나 대안적 경제를 모색하는 기업들은 불만이 많았으나, 그럼에도 기존의 ESG 방법론을 따르는 지표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기존 ESG 지표가 지속 가능성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지, 이해관계자들에게 진정한 지속 가능성 정보를 제공하는지, 주체의 지속 가능성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아니오'였다.
왜일까? 이 박사는 기존 ESG 지표의 한계를 ▲대기업 중심: ESG 전담 조직 등을 꾸리기 어려운 중소기업에 장벽이 높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연대경제조직의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움 ▲점진주의: 유해한 영향의 점진적 감소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변혁적 변화의 측정 필요 ▲2~3년의 단기 추세 분석: 전년 대비 비교에만 집중하는 문제 ▲평균의 함정: 기업의 사회·환경적 영향을 평균 내는 현행 방식은 구체적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게 함 ▲환경적·규범적 임계값 무시: 지속 가능하기 위한 기준점을 파악하고 해당 기준을 반영한 지표 및 접근법 채택 필요 등으로 설명했다.
SDPI는 이와 같은 한계를 보완한 측정 도구로서 개발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연대경제 지표 6개를 포함하여 총 61개 지표로 이루어졌는데, 1단(Tier)은 추세 지표 20개, 2단은 맥락 기반·전환적 지표 41개로 구성됐다. UNRISD는 지난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소와 함께 국내외 대형 IT기업 5개사를 대상으로 각각 MSCI ESG 등급(세계 상장사를 대상으로 매긴 ESG 성과 등급)과 SDPI 점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MSCI ESG 등급을 우수하게 받았던 기업들도 SDPI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지표와 SDPI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UNRISD는 많은 기업에서 SDP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난해 온라인 플랫폼을 출시했다. 현재 81개국의 기관들이 가입했으며 한국은 상위 사용 국가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이 박사는 여러 학술 논문 및 언론 등에서도 SDPI 연구를 인용하는 수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 미션에 대해 "SDPI를 전 세계에 확산하기 위해 유엔에서 콘퍼런스를 열자는 내용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열리는 금융 써밋(Financing for Development conference)에서 SDPI를 다루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어 윤남희 임팩트스퀘어 이사는 '전략적 도구로서 임팩트 측정 및 평가 방법'에 관해 발제하며 임팩트 측정의 중요성과 현재 활용되고 있는 임팩트 측정 도구들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임팩트 측정과 ESG 측정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며 "현재 ESG는 대기업 중심으로 지표가 형성돼 있다. 그래서 작은 기업들에 적용하기 어려움이 있고 여전히 특정 부분만 측정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 뒤 "SDPI를 활용하면 중소기업이나 소셜벤처들의 ESG 성과를 훨씬 더 잘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는 ESG 투자를 임팩트 투자보다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ESG 지표가 경영 관리(리스크 관리)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임팩트 측정은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성과 비즈니스 활동이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주목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지속 가능 보고 기준을 제시하는 GRI에서 향후 5년간 직면할 어려움을 설문했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응답자가 '임팩트 워싱'을 꼽았다는 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임팩트 평가를 활용하는 기관들이) 임팩트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고,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특히 평가 기준이 다 달라서 공통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을 비롯해 기업의 임팩트를 측정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지표를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 윤 이사는 국내외에서 주요하게 사용하는 임팩트 측정 및 평가 도구로 사회적가치지표(SVI), B 임팩트 평가, SDGs, IRIS+, IMP 등을 설명했다.
각각의 지표를 소개한 뒤에는 가사도우미에게 체계적인 교육 및 일자리를 통한 소득 증대 기회를 제공하는 비태스키(bTaskee), 인공지능 기반 폐자원 회수기(네프론)를 개발해 자원순환에 기여하고 참여 시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수퍼빈, 결식아동과 식사지원가게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나눔비타민, 폐어망 수거 및 재활용을 위해 협약을 체결한 SK에코플랜트-넷스파의 오픈이노베이션 사례, 부산광역시·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마트·한국남부발전·롯데케미칼·코끼리공장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한 자원순환센터인 우리동네ESG센터 등의 임팩트를 측정한 사례를 공유했다.
이어 신윤관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안산의료사협) 이사 겸 ESG위원장은 안산의료사협의 ESG 경영 보고서인 'ESG 지구건강경영 보고서'를 소개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안산의료사협의 지향인 지구(Planet, E 경영), 사람(People, S 경영), 참여(Participation, G 경영)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이와 관련해 신 이사는 "지표나 측정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진 않다. 안산의료사협의 지향을 해설하는 준비 단계의 보고서다"고 말했다. 조합의 환경·사회적 영향을 외부에 잘 발신하고 조합원들의 변화된 행동을 이끌어 낸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첫 번째 보고서라는 설명이다.
이어 신 이사는 "E, S, G를 재해석해서 우리가 협력하고 싶은 기관, 단체들에 '그동안 우리가 ESG 측면에서 이런 활동을 해 왔고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하려고 하니 우리와 손잡아 보자'고 제안하는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영진 행복나래(주) 매니저는 행복나래의 자체 ESG 관리 지표 및 항목, ESG 보고서, 고객사의 공급망 ESG 평가 프로세스 등을 설명했다. 행복나래의 경우 SK그룹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환경 관련 항목 33개, 사회 관련 항목 34개, 지배구조 관련 항목 19개, 총 86개 지표를 활용해 ESG를 관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실무자로서 조직의 ESG 관리 시 느끼는 어려움을 말했는데 "SK 계열사에서 ESG 조직과 비용을 줄여 나가고 있다. ESG 관리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데, 인력이나 비용 같은 자원은 줄어드는 상황이다. 또한 생물 다양성이나 분쟁 광물 취급처럼 새로운 지표는 늘어나는데 국내 기업들에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보니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매년 ESG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관부서에서 자료를 받아야 하나, ESG에 대한 이해도가 전부 같지는 않다 보니 원활히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올해 라이프인은 사회연대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의 용어 변경을 제안한다. 다만, 원활한 내용 전달을 위해 사회연대경제 용어가 정착되기 전까지 사회적경제와 사회연대경제를 병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