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과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하기 전, 사람들은 고심하여 고른 예쁜 편지지와 다정한 문장들로 서로 안부와 마음을 나누곤 했다. 그랬던 시기가 있었다. 이렇게 말한다면 너무 옛일처럼 들릴까, 혹은 고루한 말로 들릴까. 그만큼 손편지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편지를 "느리고 비효율적인 소통 수단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사람 냄새가 나고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매체"라고 말하며 편지가 전하는 온기의 힘을 믿는 조직이 있다. 지난 2일 오후 온라인 줌(Zoom)에서 진행된 라이프인 열린 강좌 '주제가 있는 대화'는 '손글씨로 그려 내는 작은 기적들'이라는 주제로 사단법인 온기(이하 온기) 조현식 대표와 함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조 대표는 온기가 영위하는 사업을 소개했다. 온기는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익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온기우편함'을 설치한 뒤, '온기우체부'라고 부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손편지로 답장을 전하는 정서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조 대표는 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소통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온기 프로젝트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인물이 편지로 고민을 보내면 미래 인물이 답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울하고 슬픈 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조 대표는 곧바로 목공소에 가서 우편함을 만들었고, 그 우편함을 서울 삼청동 돌담길에 설치했다. 이것이 바로 온기우편함의 시작으로, 2017년 2월 시작한 온기우편함 사업은 현재 8년째 이어 오고 있다.
온기의 목표는 사회 구성원의 우울감을 낮추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1년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성인 인구의 우울감 경험률은 11.3%로 나타났으며, 지난 1년간 심각한 스트레스, 인터넷 및 스마트폰 중독 등을 포함한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인구 비율은 73.6%에 달했다(2024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발표, 국립정신건강센터).
조 대표는 "우울감이 발생했을 때 그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 문제"라며 "어떻게 우울감 지속을 완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울감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온기우편함은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는 곳으로서 구상했다.
그렇다면 조 대표는 왜 '편지'라는 매개를 선택했을까. 그는 이에 대해 "고민 사연자와 답장을 보내는 자원봉사자가 서로 연결되도록 하고, 그 연결이 SNS와 같은 피상적 연결이 아니라 느리지만 깊고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연결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SNS가 발달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지만, 많은 경우 소통의 깊이는 얕고 내용의 휘발성도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 대표는 처음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편지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
또한 그는 답장을 받은 고민 사연자들의 후기를 일부 전하며 "이 편지가 누군가에게는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온기는 현재 70곳에서 온기우편함을 운영하고 있으며, 700여 명의 온기우체부가 정기적으로 활동하며 월 평균 1,500통의 편지를 작성하고 있다. 또한 온기가 전하는 정서적 지지를 확대하고자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작해 현재 9,100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조 대표는 이와 같은 성과를 밝히며 "온기우편함은 사회 구성원의 왕래가 많은 곳에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학병원 암센터, 추모공원 같이 외롭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도 설치해 가고 있고 정부기관, 기업과도 협력해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온기는 메인 파트너사로 협력하고 있는 CJ를 비롯해 다양한 조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우정사업본부에서는 2021년 협약을 맺어 온기에 우표를 약 2만 장씩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기 사업이 창출한 사회적 임팩트를 측정하고자, 임팩트리서치랩과 함께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양사가 협력하며 만든 성과를 구체적 수치로 평가하고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CJ CGV-사단법인 온기, 오픈 파트너스 데이 개최..."함께할 때 사회문제 해결하는 콜렉티브 임팩트는 더 커져")
이러한 확장 노력으로 온기우편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조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 받을 곳을 필요로 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으며, 편지 안에 사회 문제의 양상이 담기기도 한다며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들이 편지에 담기고 있고, 그 안에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 모습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자주 언급되는 '은둔 청년' 문제를 사례로 들어 "은둔 청년들은 정신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은둔 청년들이 있는 곳에 온기우편함을 설치해서 정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온기는 ▲일상 ▲공감 ▲느슨한 연결 ▲커뮤니티 등 네 가지 열쇳말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자신이 받은 도움을 또 다른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고민 사연자가 자원봉사자가 되는 구조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은 사람이 자신도 위로를 전하고 싶다며 자원봉사자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조 대표는 사업 확장 계획에 관해 "현재 대학과도 협력하여 대학 내에 우편함을 설치하고 있다. 또, 우정사업본부와 최근 맺은 협약을 통해 폐우체통을 기부받아 온기우편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앞으로는 지역 우체국에서도 온기우편함을 볼 수 있을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신건강이라고 하는 사회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고민했을 때 우리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리더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모을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온기가 그 리더가 되고자 한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지금은 '예방'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치료' 솔루션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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