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정치적 약속'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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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정치적 약속'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전체섹션1 '정치 속의 기본소득, 기본소득 속의 정치' 23일 진행
  • 2023.08.29 22:58
  • by 노윤정 기자
▲ 23일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전체섹션1 '정치 속의 기본소득, 기본소득 속의 정치'가 진행됐다. ⓒ라이프인
▲ 23일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전체섹션1 '정치 속의 기본소득, 기본소득 속의 정치'가 진행됐다. ⓒ라이프인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는 지난 몇 년간 정치권에서 조금씩 존재감을 키워 왔다. 특히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현금성 지원의 효용과 보편지급 및 선별지급 논쟁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기본소득 논의의 외연이 확대되었다. 또한 지난해 제20대 대통령 선거(대선)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지방선거)라는 두 차례의 큰 선거를 치르면서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가 정치적 공약이 되고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기본소득이라는 담론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국내외에서 진행된 다양한 기본소득 관련 실험 역시 정치 영역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 23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현실 속의 기본소득'의 전체섹션1 '정치 속의 기본소득, 기본소득 속의 정치'에서는 국내외 연구자들, 정치인, 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본소득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살피고, 정책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 위르겐 데 비스펠레레 교수(프라이부르크대학교). ⓒ라이프인
▲ 위르겐 데 비스펠레레 교수(프라이부르크대학교). ⓒ라이프인

위르겐 데 비스펠레레 교수(프라이부르크대학교)는 다양한 기본소득 실험들과 그 안에서 확인되는 '정치적 약속'의 지속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UBI(Universal basic income, 보편적 기본소득)은 굉장히 정치적인 프로젝트다. 대부분의 실험들이 탄생하는 데 있어 명확한 정치적 이니셔티브가 존재하고, 민간의 실험이라도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가 개입한다"며 "우리가 명시적으로 다뤄야 하는 문제는 정치로부터 UBI 실험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위르겐 교수는 4개국의 사례를 들어 UBI 실험이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살펴봤다. 우선 그는 2017~2018년 2년간 만 25~58세 실업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약 8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 핀란드의 사례를 소개했다.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시범사업 기간을 늘리는 측면에서 문제"를 겪기는 했으나, 핀란드 정부의 실험은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 속에서 무사히 진행됐고 2020년 최종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스페인 카탈루냐주(州)에서는 올해부터 주민 5,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하고자 했으나, 주 의회에서 예산안이 부결되며 현재 중단된 상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州)는 지난 2017년 3년 기한으로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했으나, 선거 이후 새롭게 부임한 주정부 장(長)이 1년 만에 중단시켰다. 아일랜드 정부는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받은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본소득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별도의 안내 없이 파일럿 프로그램이 취소된 상태다.

위르겐 교수는 이러한 기본소득 실험들의 공통점으로 '정치적 간섭'을 꼽았다. 정치적 개입은 기본소득 실험을 진전시키는 힘이 될 수도, 후퇴시키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 그렇기에 위르겐 교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할 때 반드시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본소득 시범사업과 정치를 분리할 때, 정치적 약속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고 봤다.

기본소득 시범사업과 정치를 분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신뢰·도덕·합리에 의한 설득과 여론의 압력 등을 이용하는 '정치적 해법'과 규정과 규제를 만들어서 시범사업과 정치를 분리하는 '제도적 해법'을 들었다. 특히 위르겐 교수는 제도적 해법이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범사업을 정치와 분리할 때 ▲시범사업 초기 정치적 약속의 형태(누구의 주도로/어떤 의사결정 과정에 따라 시범사업이 진행되는지) ▲안정적 예산 ▲운영 주체 ▲외부 공조 및 협력 대상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르겐 교수는 "보편적 기본소득 실험은 정치적 이벤트이고, 정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정치적 간섭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정치적 약속을 유지할지, 사전적 해법을 모색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예방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남훈 (사)기본사회 이사장. ⓒ라이프인
▲강남훈 (사)기본사회 이사장. ⓒ라이프인

강남훈 (사)기본사회 이사장은 '탄소중립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하여 기본소득이 탄소 중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먼저 "한국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든다면 재생에너지 정책에서 실패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라며 "우리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지 못하면 후세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을 것이고 우리는 국제 무대에서 소외될 것이다"는 말로 논의를 시작했다.

이어, 탄소 중립 정책과 정치적 지지의 관계를 인과순환지도(Causal Loop Diagram)를 통해 "탄소 중립 정책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감축하거나 소위 '탄소세'(화석연료 사용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를 늘리는 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을 펴면 누군가에게는 소득이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정치적 지지도가 낮아진다"고 설명하며, 탄소 중립 정책을 시행할 때 정치적 지지가 올라가는 구조로 순환고리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 이사장은 탄소 중립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할 문제들로 ▲독일이 제안한 기후클럽 출범 ▲기후채권 발행 등 발전 분야 탈탄소를 위한 공공 투자 ▲토지 용도 지정 등을 언급했다. 그는 "기후클럽 가입국은 의무적으로 탄소세를 일정 수준 이상 부과해야 한다"고 설명했으며 "(세계 무역 질서 변화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발전 분야에서는 탈탄소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투자가 민간 금융자본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민간 자본은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재생에너지 가격이 독점 가격으로 설정되며, 탄소세가 올라갈 때마다 민간 자본이 횡재 수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에너지 전환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하며 정부의 기후채권 발행을 제안했다.

토지 용도 지정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독일 정부는 전체 국토의 2%를 풍력발전 단지로 지정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1%만 지정해도 에너지 전환에 충분할 것이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강 이사장은 "탄소 중립에는 적어도 5가지 기본소득 배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이사장이 말하는 5가지 기본소득이란 ▲탄소배당(탄소세 수입을 사회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것) ▲공유부배당(토지나 생태 환경처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속했던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 또는 특정인의 기여분과 귀속분을 따질 수 없는 수익을 사회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것) ▲토지배당(토지에서 징수한 보유세를 사회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것) ▲협동조합 수익금 배당 ▲인근 배당(송전선로 주변지역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제공되는 배당) 등이다. 그는 이것이 실현될 때 불평등을 줄이는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으며, 재생에너지 개발이익을 주민들에게 배당하고 발전소와 가까울수록 배당금을 많이 주는 신안군의 '햇빛연금'과 '바람연금'을 예시로 들었다.

마지막으로 강 이사장은 "에너지 전환은 태양과 바람이라는 무한한 공유부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태양과 바람은 토지라는 희소한 공유부가 없으면 이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 또한 공유부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모두가 합의해서 에너지 전환에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공공 차원의 투자와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공유부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탄소 중립이 가능할 것"이라며 "기본소득이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든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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