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대응에 필요한 재원 규모가 2030년까지 연간 최대 약 250조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재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공공 기후재원 규모는 약 36조 원에 불과하며, 중장기 재원 조달 방안 역시 모호하다.
여기에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소멸과 세원 축소 등 엄중한 재정 환경으로 안정적인 기후재원 조달의 길이 좁아지고 있다. 이에 발전(전환) 부문 유상할당 확대, 탄소세 전환, 녹색국채 발행 등 여러 기후재정 조달 방안 해법을 논의하고자 국회와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후재정포럼(이로움재단·녹색전환연구소)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기후재정,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는 더불어민주당(정태호·오기형·강득구·김정호·위성곤 의원)과 국민의힘(김소희), 조국혁신당(서왕진·차규근 의원), 진보당(정혜경), 기본소득당(용혜인), 사회민주당(한창민) 등 여야 의원들이 기후재정포럼과 공동으로 주최했다.
발전 부문 유상할당 100% 확대 시 2030년 기후재원 연 9조 원 추가 확보
먼저 발제자로 나선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 확대가 효과적인 기후재원 추가 조달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환경부가 내놓은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안(2026~2030년)에 따르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은 현행 10%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늘어날예정이다.
이에 대해 최기원 팀장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중을 2030년까지 100%로 높일 경우 연간 9조 원 규모의 기후재원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2030년 배출권 가격이 톤당 6만 1,400원까지 오르고,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따른 감축경로 등을 기반으로 산출한 액수다.
최기원 팀장은 "정부가 제시한 2030년 발전 부문 유상할당 50% 달성안은 국제적 흐름에 비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연 20%씩 상향해 2030년까지 100% 유상할당을 달성하는 방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향후 5년간(2026~2030년) 누적 24조 1,000억 원 규모, 연평균 4조 8,000억 원 규모의 기후재원 확보가 가능하다"며 "직전 5년보다 20배 확대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발전 부문 유상할당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우려에 대해서 그는 '과장된 걱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감소가 낮은 수준(0.4~0.7%)에 불과해, 월 4,000원 내외 소득 보전 지원만 병행해도 사회적 수용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조업 역시도 마찬가지다. 유상할당 확대 100% 시나리오에서 제조업 전체 전기요금 부담은 4조 원이었다. 전체 매출 대비 0.2% 미만, 영업이익 대비 2.9~3.2% 수준이다. ▲전자부품(8,093억 원) ▲화학(6,193억 원) ▲철강(5,380억 원) 등 일부 업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나, 매출·원가 대비 미미한 수준이었다.
끝으로 최기원 팀장은 "2030년까지 발전 부문 유상할당을 100% 확대하면 오히려 국내총생산(GDP)이 0.2~0.4%p(퍼센트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유상할당 수익을 일자리나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정의로운 전환에 재투자하면 부정적 파급효과보다 경제적 효과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도 녹색국채 본격 도입 검토 …'기후재정 트릴레마' 완화 수단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아태재정협력센터장은 '기후재정 트릴레마(Trilemma)'를 지적했다. 트릴레마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 재정 안정 유지, 정치적 수용성 확보를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지적한 바 있다.
허경선 센터장은 "세입을 늘려 재정건전성과 기후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면 정치적 저항이 커진다"며 "반대로 감축 수준을 완화하면 재정은 안정되나 기후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녹색국채'가 단기적으로 이 딜레마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녹색국채는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녹색채권이다. 녹색채권은 기업이나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가 발행할 수 있는 반면, 녹색국채는 정부가 직접 발행해 기후·환경 프로젝트에 자금을 조달한다. 2016년 폴란드가 최초 발행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됐다. 2025년 5월 기준 38개국이 녹색국채를 발행하고 있으며, 전체 녹색채권 발행 중 녹색국채가 20.3%를 차지했다.
일본은 작년 2월 '탈탄소 성장형 경제구조 이행채권(GX 경제 이행채)'를 1조 6,000억 엔(약 15조 원) 규모로 발행했고, 향후 10년 간 총 20조 엔(약 188조 원) 규모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역시 올해 4월 60억 위안(약 1조 1,687억 원) 규모의 첫 녹색국채를 발행해 전기자동차 충전시설과 해양생태 복원 등에 활용 중이다.
한국 역시 2021년부터 녹색국채 도입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올해 8월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녹색대전환(GX)의 자금공급 방안의 하나로 녹색국채 발행 근거 마련과 관련 시스템 개선이 제시됐다.
허경선 센터장 녹색국채가 탄소세나 세제 개편 등 다른 기후재원보다 단기간 확대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기후대응기금 재원 확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상환계획과 제도적 설계 없이는 공허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에 그는 녹색국채 도입 시 ▲재정건전성 확보 ▲다년도 자금관리 ▲투자 범위 확대 ▲운영 효율화 ▲명확한 가이드라인 등이 마련될 것을 주문했다.
"탄소가격 부과, 민간·금융 참여…기후재정 종합 대안 제시"
이어진 지정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먼저 배진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녹색국채가 만능이 아니란 점을 짚었다. 녹색국채 역시 결국 '국채'이기 때문에 정부 차입 규모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고, 다른 예산과 경합 관계가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녹색국채를 발행하는 국가들 사례를 보면, 녹색국채와 일반국채 자금 모두 동일한 국고로 귀속돼 서로 경합하는 관계"라며 "녹색국채가 정부 차입 규모와 무관하게 별도로 늘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진수 연구위원은 오히려 실질적인 기후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녹색국채보다 탄소세나 탄소가격 부과가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가격을 부과하면 탄소배출 행위에 대한 유인이 억제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를 직접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온실가스 감축 시그널(신호)을 제공하여 민간의 탄소감축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일 목원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도 "녹색국채 발행이 실제 감축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기존 예산의 '그린 라벨링'에 그칠 경우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발행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또 "한국의 기후재정 전략은 단순한 행정이나 재정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수출 주도·재벌 중심·탄소집약적 성장 체계와 충돌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기후위기는 체제 전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형식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재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민간투자와 전기요금 인상을 통한 국민 부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후재정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수입과 교통·에너지·환경세의 탄소세 전환이 기후재정 조달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규빈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이 선도적인 역할을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정유·화학·철강·자동차 등 기후리스크 취약산업의 사업개편과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상풍력단지·에너지고속도로 건설에만 총 85조 원 규모의 금융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정책금융와 민간금융이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들이 스코프3 배출량 공시 의무화를 통해 ESG금융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기후재정포럼은 별도의 이슈브리프를 발간해 구체적 정책 대안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편, 기후재정포럼은 오는 25일 국회에서 '기후예산 시스템 개혁'을 주제로 한 차례 더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