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새로운 돌봄 체계의 필요성

우리 사회는 빠르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며 돌봄과 의료 체계 전반에 걸쳐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기존의 가족 중심 돌봄 체계는 더 이상 현재의 사회적 환경과 맞지 않다. 핵가족화와 도시화로 인해 가족 내 돌봄 제공이 어려워지고,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새로운 돌봄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광주광역시 서구는 이 문제를 누구보다 먼저 인식하고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를 선제적으로 준비했다. 서구의 비전은 주민들이 살던 곳에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서구는 돌봄과 의료를 하나로 통합하여, 주민들에게 단순한 서비스 이상의 지원을 제공하는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광주 서구는 의료와 복지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통합돌봄 체계는 주민들이 자신의 집에서 건강을 관리하며, 돌봄과 의료의 공백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방문 진료 모습. ⓒ광주광역시 서구청
▲ 방문 진료 모습. ⓒ광주광역시 서구청

광주 서구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통합돌봄 체계를 발전시켰다.

▲ 행복매니저 공유시스템과 초기 조직화

2019년, 서구는 통합돌봄추진단이라는 한시 조직을 운영하며 돌봄 체계 구축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조직은 국 단위 3과 9팀으로 구성되어 2년간 운영됐으며 '행복매니저'라는 공유시스템을 도입해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돌봄 관리를 시작했다.

▲ 의무방문을 통한 사례 관리

2020년부터는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의무방문을 시행했다.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매일 최소 3명의 노인을 방문하고, 다음 날 반드시 사례 회의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ACT(Assertive Community Treatment, 적극적인 지역사회 기반 치료) 사례 관리 시스템은 구와 동 간의 협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으며, 복지부 보건복지전달체계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확장형 동 모델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 광주다움돌봄과 노인의료돌봄 집중

2023년 광주다움돌봄이 시행되면서 돌봄 체계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노인 중심에서 전 주민 대상으로 돌봄 범위가 확장됐으며, 동 주민센터의 역할이 강조됐다. 2024년에는 다시 노인의료돌봄에 집중하며 동과 구의 역할을 분리했다. 동은 광주돌봄을, 구는 복지부 노인의료돌봄을 담당하며, 장기요양수급자의 1/5에 해당하는 약 1,000명에게 의사의 방문진료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광주 서구 통합돌봄 체계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여 환자들의 건강 상태 변화를 조기에 발견하고, 질병으로 확산되는 것을 예방한다. 예를 들어, 돌봄정보센터와 방문의료지원센터는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해 주민들의 건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응급 상황 시 즉각 대응한다.

둘째, 재입원률을 줄이고 환자들의 치료 기간을 연장하며, 장기적으로 지역 내에서 가족과 함께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돌봄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히 치료를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역사회 안에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비용 효율성을 높이며 의료비 절감을 실현한다. 현재 서구의 연간 의료비는 약 7,200억 원이며, 그중 절반인 3,600억 원이 노인의료비로 사용된다. 서구는 5년 후 재택의료 방문진료를 통해 이 비용의 약 10%인 360억 원을 절감할 계획이다.

돌봄정보센터와 재택의료센터의 운영

광주 서구의 방문 사례관리는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하여, 환자의 상태에 따른 맞춤형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먼저, 의무 방문을 통해 대상자의 상태를 발굴한 후 재택의료센터에서 본격적인 관리가 시작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환자의 변화를 조기에 파악하여 심각한 질병으로 진행되는 일을 예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문진료팀은 환자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조정한다.

재택의료센터는 구청 바로 앞에 위치하며, 공무원 16명과 의료진 등 8명이 협력하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23년 첨단가족연합의원의 김경현 원장은 매주 센터에 상주하며, 환자 방문 진료와 사례회의를 진행했다. 그의 주요 관심은 약물 중복을 줄이는 것으로, 환자 방문 전 처방전을 검토하고 환자의 환경과 증상을 면밀히 관찰한 뒤 약물을 줄이는 작업을 한다. 이는 환자와 가족의 신뢰를 쌓으며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재택의료센터는 패혈증 환자의 긴급 입원, 임종 돌봄 등 다양한 사례를 처리하며, 재택의료의 가능성과 한계를 실험하고 있다.

광주 서구는 복수의원이 참여하는 2차 사업을 통해 지역 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크게 향상하는 데 성공했다. 이 사업에서는 의료기관 간의 경쟁 체계를 도입하여 서비스 개선을 유도했다. 예를 들어, 1차 사업에 참여한 병원은 환자 만족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치료와 세심한 설명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환자와 가족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2차 사업에 참여한 병원 역시 선도 병원의 모델을 모방하며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로 인해 지역 내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 품질이 상승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성공적인 성과와 함께 여러 가지 문제도 드러났다.

우선,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 체계가 충분히 강화되지 않은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일부 병원은 구청에서 추천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거나, 사례 회의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태도를 보이며 협력 체계가 느슨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의료와 복지 간의 긴밀한 연계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지자체 수준에서 의료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정 능력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돌봄의 조정자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복지팀장은 의료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목표 설정이나 역할 분담, 우선순위 조정 등의 과정에서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광주광역시 서구청
ⓒ광주광역시 서구청

사례 관리의 실제 운영: 돌봄정보센터의 싱글포인트 접점

광주 서구 통합돌봄 체계는 사람 중심의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사례관리로 운영된다.

돌봄정보센터에서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의무 방문으로 발굴한 사례를 포함해 돌봄 신청, ICT 데이터, 350-4000번 콜센터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모두 통합 관리한다. 이후 방문의료지원센터에서 사례 회의를 통해 각 대상자의 상태와 필요를 평가하고, 적합한 서비스를 결정한다.

사례 회의는 매일 진행되며, 각 사례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조정한다. 방문 사례관리자는 환자 한 명당 매월 1회 방문과 2회의 전화 모니터링을 통해 상태를 점검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한다.

광주 서구 방문의료지원센터에서 진행되는 사례 회의는 통합돌봄 체계의 핵심이다. 매일 아침 팀원들이 모여 전날의 사례와 방문 결과를 공유하며, 새로운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회의는 효율성과 협력을 기반으로 진행되며, 이를 위해 '매삼매회팀중'(매일 3명 방문, 매일 회의 보고, 팀 중심 해결)이라는 원칙을 따른다.

회의는 팀장이 돌봄정보센터에서 접수된 데이터와 동 행정복지센터 및 콜센터에서 올라온 민원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시작된다. 팀장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회의 안건을 정리하고, 각 팀원들은 자신이 관리하는 대상자들의 상황을 보고한다. 이때 대상자의 건강 상태, 욕구 변화, 그리고 이전 서비스 제공 결과를 공유하며, 주요한 문제와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사례 회의의 주요 목표는 서비스 항목과 주기, 개시일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 가능한 단계로 나누는 것이다. 회의 중에는 서비스 제공 기한과 다음 모니터링 일자도 명확히 설정해야 하며,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한다.

사례 회의와 방문 사례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대상자의 상태가 매 순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는 한 달, 심지어 몇 주 만에 건강 상태가 급격히 변할 수 있다.

방문의료지원센터는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사례 관리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의사의 방문 진료 서비스 개시 여부다. 의사가 대상자를 방문한 이후, 정기적인 운동, 영양 보충, 가족의 정서적 지지 등 필요한 요소들을 점검하고, 이에 맞는 서비스를 조정한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 환자의 경우, 의사가 처음 방문한 이후 약물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약물 조정 후 환자와 가족의 반응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조정 과정을 반복한다. 환자가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방문 횟수가 3~5회를 넘어서면 사례관리사와 의사, 환자 간 신뢰가 형성되며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광주 서구 통합돌봄의 구체적 성과와 2026년 법 시행에 부치는 제언

광주 서구는 통합돌봄을 통해 주민들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재택의료센터는 서구 통합돌봄 체계의 핵심이다. 이곳에서는 병원 방문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사와 간호사가 팀을 이루어 가정을 방문해 건강 진단, 약물 관리, 재활 지도를 진행하며,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지난 10월까지 재택의료센터는 약 3,079건의 사례를 관리했으며, 이 중 526건은 신규 사례로 발굴됐다. 나머지 2,553건은 정기적인 방문과 사례 조정을 통해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개선한 사례들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리 덕분에 환자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다.

광주 서구의 경험은 2026년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법 시행을 앞둔 다른 지자체들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지자체는 통합지원을 위한 전담 조직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서구의 경우 통합돌봄국을 설치하여 동 주민센터와 보건소, 방문의료지원센터를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돌봄과 의료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둘째,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구는 지역 의사협회와의 소통을 통해 컨트롤타워를 형성하고, 재택의료센터의 복수 병원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의료와 복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과제다.

셋째,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 연계가 필요하다. 서구는 ICT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돌봄 대상자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사례 회의와 서비스 조정에 반영하고 있다. 데이터 중심의 접근 방식은 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광주 서구의 미래 비전

광주 서구는 2025년부터 통합돌봄국을 신설하여 통합돌봄 체계를 더욱 전문화할 계획이다. 이 체계는 아동, 장애인, 노인까지 모두 포괄하는 예방형 돌봄 서비스를 포함할 것이다. 보건소와 연계하여 방문 보건팀과 맞춤 돌봄팀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며 재택의료센터에 양방과 한방 모두 참여한다. 이를 통해 돌봄의 질을 높이고 효율성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사회연대경제(사회적경제)와 타임뱅크 시스템을 도입해 돌봄 활동을 기록하고, 이를 지역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이 돌봄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지역사회 내 돌봄 공동체를 활성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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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가 제시하는 초고령 사회의 새로운 모델

광주 서구의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재택의료센터는 초고령 사회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선도적인 모델이다.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이 존엄성과 건강을 유지하며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체계다.

이 모델은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는 다른 지자체들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광주 서구의 경험은 선제적 준비와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든 지자체가 이러한 체계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초고령 사회의 도전에 슬기롭게 대응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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