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민주주의'(民主主義). 민주화를 위해 힘겹게 투쟁해 온 시간을 알기에 매일의 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 세대는 세대 갈등, 성별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갈등 등 이전과 다른 새로운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다시금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다가오는 9월 15일 '세계 민주주의의 날'을 기념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7분 민주주의 토크콘서트'가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행사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상상하며 민주주의를 점검하는 자리로서 마련됐다. 1부 '다르게 想상하다'에 이어 진행된 2부 '변화를 상像하다'에서는 민주주의가 이룰 수 있는 변화와 그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 부족본능을 다스려야 민주주의가 살아난다
먼저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진화적 본성을 통해 정파 간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정파적 갈등은 인간이 패거리(연합)를 이루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우리편 편향'(Myside bias)에 주목했다.
우리편 편향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상대편보다 더 옳고 고결하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는 편향을 뜻하는데, 전 교수는 이러한 편향이 보수와 진보로 나눠 싸우는 당파적 편향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또, 터무니없고 극단적인 신념일수록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입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배지가 되기 때문에 편향된 신념이 빠르게 확산된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당파적 편향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전 교수는 두 가지 태도를 제안했다. 그는 나의 확신은 내가 지켜야 할 소유물이 아님을 인지하고, 정파와 관계없이 열린 마음으로 최선의 방안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유권자로서 정치인이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하려면 '스윙보터'(선거에서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시민은 소속감 때문에 지지당의 입장을 따를 뿐, 그다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발표의 핵심을 짚으며 "정치는 죽거나 죽이는 격투가 아니라, 함께 최선의 해법을 찾아가는 공동 연구"라며 "부족 본능을 다스려야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전했다.
■ 기후위기 대응은 '1.5도씨 라이프 스타일'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지구라는 생태계적 한계 속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인간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 방법으로 완전한 전환, '1.5도씨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앞서 이 소장은 "탄소중립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며 "지구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민주주의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창안한 '도넛 경제'는 ▲지구의 생태계적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인간의 사회적 기초를 보장받을 수 있는 모형이다. 이 소장은 도넛 모형에 기초해 지역경제 위기에 처한 보령시(정부 제10차전력수급계획에 따라 2036년까지 화력발전소 28기가 폐쇄된다. 보령시는 2020년 보령 1, 2호기가 폐쇄되면서 일자리 및 인구 붕괴 문제를 겪고 있다)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를 통해 국가, 경제, 지역의 전환 모델을 고민하다 보니 '개인의 전환' 또한 결코 빼 놓을 수 없었다며 '1.5도씨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1.5도씨 라이프 스타일'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을 측정해 보는 방식으로, 녹색전환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대부분은 산업 부분(70%)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개인의 소비 패턴과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에 개인 또한 '전환'을 이뤄야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 직무가 아닌 장소(현장)를 생각하며 사는 세상
민주화의 역사가 그랬듯 갈등 해결 역시 쉽게 얻어 낼 수 없다. 여전히 길에서 몸을 부딪치며 갈등을 해결하는 이도 있다. 변재원 장애인권활동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역할을 직업적 전문성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뜻하는 'Democracy'에서 'Demo'는 '사람'을 뜻한다. 민주주의는 사람답게 살아보고 결정하고자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전문가가 민주주의를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며 핵심을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우리가 지금 가져야 하는 건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현장에서 본 활동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변재원 활동가는 활동가를 ▲세상의 아픔을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자 ▲비극의 원인이 된 제도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끝까지 지키는 사람', 그리고 ▲'가까이 서 있는 사람'으로서 고통의 곁을 지키고 마음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의 칼럼 '두 번째 사람 홍은전'을 빌려 말하며 "활동가는 첫 번째로 아픔을 겪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이해해서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제도를 분석해 정책을 개선하는 변혁가로서, 마음을 이해해 이웃을 사랑하는 동료로서 활동가는 존재한다"며 민주주의 사회 속 활동가의 존재 의미를 짚었다.
■ 지구사회 계급으로서, 지구에서 지속해서 거주할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일
마지막으로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인류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현 위치를 사유하고 답했다. 그는 악셀 호네트의 저서 『사회주의 재발명』의 일부를 인용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질문할 때 '사회적 자유(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서로의 자유를 북돋아 주는 자유)를 늘리는 데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발 하라리가 저서 『사피엔스』에서 구분한 인류의 세 혁명 ▲인지 ▲농업 ▲과학을 설명했다. 모성적 사유를 토대로 공존의 가치를 존중했던 1차 인지 혁명 단계의 인류는 '호혜 중심 사회'를 보냈다. 이후 침략과 약탈이 난무하는 2차 농업 혁명은 폭력적 사회를 막기 위한 성현들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극단적 비참의 상황에서 공감과 자비의 사상을 펼쳐 왔다. 하지만 도구적 이성만 남은 채 3차 과학 혁명을 맞이한 인류는 '타자에 대한 공감의 부재'라는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가 맞이한 과학 혁명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 핵심은 무엇인가. 조 교수는 '내가 어디에 머무느냐'에 해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브뤼노 라투르의 『녹색 계급의 출현』 일부를 이야기하며 '노동계급'이 아닌 '녹색계급'으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녹색계급이라 생각하고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아우르는 '지구사회 계급'으로서 지구에 지속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아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강연자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청중들이 실천할 방안으로 ▲이성에 근거해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 때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것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두려움 없이 만나 대화하고 토론해야 변화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 ▲직무가 아닌 장소를 생각하며 사는 일이 곧 내 삶에 떳떳한 선택이자 자유로움이 될 것 ▲문제를 인식하고 이야기하고 푸는 것, 즐겁게 작당하면 좋겠다 등의 말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