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 정부들이 필란트로피 사업을 장려하는지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발전시키고, 국가와 비영리단체의 관계를 현대화하며,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해관계를 융합하고, 국가와 영리 부문이 제공하지 못하는 물자와 파급 이익을 제공하며, 비영리 부문이나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구축 잠재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유럽의 필란트로피,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필란트로피 활동과 기금 모금 분야를 연구하는 크리스토퍼 카니는 자신의 저서 『유럽의 필란트로피,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에서 필란트로피 활동의 변화상을 조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유럽의 많은 나라, 그리고 기부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 사회·경제·환경적 임팩트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 필란트로피를 활용하고 있고, 특히 벤처 필란트로피가 부상하며 투자 기술을 필란트로피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효과적인 사회혁신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다는 점을 밝혔다.
지난 11일 오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진행된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Asan Frontier Academy) 글로벌 특강'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필란트로피 경향을 살펴봤다. 이번 강연은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13기 수강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솔브(MIT Solve)의 케이시 반 데 스트리히트(Casey van der Stricht) 교수와 스탠퍼드대학교 PACS센터(Stanford PACS) 창간 기관)의 베라 마이클칙(Vera Michalchick) 박사가 강사로 참석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케이시 교수가 MIT가 운영하는 MIT 솔브의 사례를 통해 기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지, 또한 필란트로피가 어떻게 사회혁신 조직이 기술을 활용해 임팩트를 확대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케이시 교수는 사회 혁신가들을 위한 촉매자본 역할을 하는 벤처 필란트로피 펀드인 솔브 이노베이션 퓨처(Solve Innovation Future)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우선 케이시 교수는 MIT 솔브에 대해 "자금 접근성이 낮았던 혁신가들이 MIT 혁신 생태계 안에서 파트너십을 맺고 혁신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연구 협업도 지원하고 있으며 직접투자도 실행하고 있다"며 "단순히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혁신가들이 실제 시장에서 느끼는 니즈를 알려주면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MIT 솔브는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혁신가들을 지원하고자 '글로벌 챌린지'(Global Challenges)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케이시 교수는 글로벌 챌린지가 기술을 통해 ▲평화로운 방식의 경제 번영 ▲구성원들의 학습 성과 향상 및 포괄적이고 동등한 학습 기회 보장 ▲넷제로 달성 및 기후위기 대응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평한 접근 보장 ▲사회·환경·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한 미국과 캐나다 원주민 커뮤니티의 기여 인정 및 협업 등을 이루고자 하는 팀을 발굴하고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솔브 이노베이션 퓨처에 관해 설명했다. 솔브 이노베이션 퓨처는 2019년 론칭하여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자를 실행한 필란트로피 기금이며, 기부금을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솔버팀으로 선정된 기술 기반 솔루션을 가진 혁신가들에게 채권, 지분의 형태로 투자한다. 현재까지 18번의 투자를 집행했으며, 투자 수익은 솔버팀에 재투자되고 기부자에게는 세금상 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구조다.
또한 케이시 교수는 벤처 필란트로피를 설명하며 기부사의 기부를 받아 위험을 감수하는 자본으로서 역할을 하며,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익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케이시 교수는 "최근 기술 트렌드를 보면 많은 사회적기업, 비영리조직들이 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파악했으며, 그럼에도 해당 조직들의 기술 활용도가 낮은 이유에 대해 "조직 내부에 이를 지원할 인력, 프로그램 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MIT 솔브는 사회적기업, 비영리조직들이 이런 애로사항을 극복하도록 돕고자 한다. 기술이 어떻게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고 경쟁력을 제고하는지, 그리고 조직이 구상하는 기술 기반 솔루션이 실현 가능한지 파악하여 확장 가능성 및 지속 가능성, 다른 주체들과의 협업 가능성, 투자 잠재력 등을 평가하여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다.
이 외에 케이시 교수는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으로서 조건부지분인수계약(SAFE, 투자금 우선 지급 후 후속 투자 유치 시 약정된 조건대로 지분을 발행하는 투자 방식), 전환사채, 수익공유약정(RSA, 미래 수익의 일정 비율을 받는 대가로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 방식), 프로그램 연계 투자(PRI, 비영리조직이나 공익법인이 기부금을 조직의 사명과 일치하는 곳에 투자하는 방식) 등을 소개했으며, ▲네트워크 기반 마련 ▲조직이 추구하는 활동에 시민, 지역사회가 참여하도록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행동 확산 ▲네트워크 기반으로 협업 기회 모색 등을 강조했다.
특히 MIT 솔브가 진행하는 커뮤니티 어워드(Community Award)를 예시로 들어 "투표 과정을 재미있게 만듦으로써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특정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행동을 인식하고 흥미를 갖게 된다"고 부연했다.
이어진 섹션에서는 베라 박사가 미국의 기부 문화와 효과적인 자선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무엇이 효과적인 자선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효과적인 자선은 ▲심사숙고(Thoughtful) ▲명확한 목표(Clear) ▲헌신(Committed) ▲학습 기반(Learning-oriented) ▲신뢰(Trusting) 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익을 위한 자선 활동의 영역에서 최근 무엇이 화두인지를 밝혔다. 증상에 관심을 두는가 원인에 관심을 두는가. 엘리트층만이 행하는 기부인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기부인가. 기부금 사용의 통제권을 누가 갖고 있는가. 기부는 혁신인가 보완인가. 현금성 기부를 지향하는가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이처럼 필란트로피가 확산되고 변화하면서 자선 활동과 관련한 여러 가지 논쟁거리 또한 대두되고 있다.
베라 박사는 통제권과 관련하여 "기부자가 통제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의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으며, 기부의 역할에 대해 "기부가 새로운 모델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인지, 정부나 기업의 역할을 보완하는 것이 것인지, 아니면 기업이나 정부가 감수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인지 다양한 질문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베라 박사는 개인 기부, 민간재단 기부, 기부자조언기금(DAFs, 기부자가 공공 자선 단체에서 관리하는 기금에 현금, 주식 등을 기부하고 발생한 수익을 지원대상자에게 전달하는 형식의 기부), 유한책임회사의 자선사업, 임팩트투자 등 다양한 필란트로피 형태를 설명했으며, 미국 전역에 2,500여 개의 도서관을 설립한 앤드류 카네기, 어려운 이들의 보건의료와 교육 등을 위해 힘쓴 존 록펠러, 남부 지역 흑인 아동들의 교육 기회 보장을 위해 노력한 줄리어스 로즌월드 등의 사례를 통해 미국 내 재단 기부의 뿌리와 역사를 개략했다.
이어 베라 박사는 미국 사회에서 기부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으로서 위험을 감내하는 자본의 역할을 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부자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부유할수록 기부를 통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부자들이 통제력을 너무 많이 갖는다는 주장도 있다. 모든 사람이 선(善)에 기여할 수 있으며 수혜자, 저소득층 모두 논의 테이블에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베라 박사는 효과적인 기부의 방식으로서 신뢰 기반 자선, 참여형 자선, 콜렉티브 임팩트, 혼합금융,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 등을 들었다. 특히 신뢰 기반 자선을 강조하면서, 신뢰 기반 자선이란 "통제적이지 않고 수혜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에 동등한 관계가 형성되는 자선"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