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지역에서 생산한 가치가 지역에 머물도록 지원하는 지역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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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지역에서 생산한 가치가 지역에 머물도록 지원하는 지역화폐
  • 2023.11.03 14:00
  • by 정원각 객원기자

2023년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1년을 맞는 해로 협동조합 법제화를 비롯하여 각 사회적경제 조직의 제도화를 점검할 시점이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책이 크게 축소되는 기조 속에 침체국면에 처할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전남 영광군 여민동락 ▲전남 목포 건맥1897협동조합 ▲경남 창원시 내서푸른주민회 ▲충북 옥천고래실 등 사회적경제 분야 조직들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타 사회적경제기업이 참고할 수 있게 모범적인 현장 기업들을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로버트 오언은 협동조합의 아버지이면서 대안 화폐 운동가

로버트 오언은 뉴라나크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노동자들 노동 시간을 기존의 다른 영국 공장에서 하던 16~18시간에서 12시간 이하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아동 노동은 하지 않고 청소년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교육을 했으며,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세웠다. 아울러 협동조합 운동을 주창하고 실행했으며, 미국 인디애나주의 뉴하모니에 가서 공동체를 시도했다. 영국 뉴라나크에서의 활동과 달리 미국 뉴하모니의 공동체 운동은 실패했다. 실패 후에 다시 영국에 와서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해 급여를 너무 낮게 지불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1832년 노동교환소를 만들어 노동증서 교환으로 파운드 화폐를 대신했다. 약 2년 동안 진행한 이 운동을 화폐 대안 운동의 시작으로 부른다.
 

▲ 로버트 오언 | G. D. H. 콜 지음 | 홍기빈 옮김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협동조합.
▲ 로버트 오언 | G. D. H. 콜 지음 | 홍기빈 옮김 |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협동조합.

이후 약 100년이 지난 1929년,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왔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화폐가치가 턱없이 떨어졌다. 노동자가 하루 종일 노동해서 받은 돈으로는 생필품 구매조차 어려웠다. 이에 대해 독자적으로 화폐를 만들어 거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 스위스 비아, 덴마크 JAK은행의 무이자 화폐 등이 그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즈음, 캐나다 밴쿠버시의 코목스 발레라는 지역에서는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자, 그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유통하는 LETS(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 지역통화제도 또는 지역교역교환시스템)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이 오늘날 여러 지역에서 하는 지역화폐 운동이다. 그러므로 지역화폐 운동은 노동자의 노동과 자영업자들의 사업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 지역에서 생산한 부가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내에 머물게 하는 것 그리고 자원봉사 활동의 활성화 등의 효과가 있다.

국내의 지역화폐 운동 역사

국내에서는 <녹색평론>이 1996년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움직이는 지역화폐 운동 사례를 소개했는데 이를 계기로 1998년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미래머니'라는 화폐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지역화폐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 중 한밭레츠는 2000년 2월 대전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지역화폐 운동이다. 그리고 관에서는 2010년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종이 지역상품권을 시작하여, 지금은 많은 지자체가 온라인 시스템, 카드 지불 시스템 등을 더하여 다양한 방안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화폐협동조합은 한밭레츠를 경험했던 지역의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새롭게 움직이는 지역화폐 운동이자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이다. 한밭레츠를 통해 지역화폐 운동을 알게 되었고 현재는 지역화폐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이원표 상임이사를 만나서 과정과 현황 등에 대해 들었다. 
 

한밭페이 어플리케이션.
▲ 한밭페이 어플리케이션.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대전 지역에서 진행한 한밭레츠는 2000년부터 시작하여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회원과 가맹점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정체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원표 상임이사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먼저 한밭레츠가 이용하는 지역화폐 '두루'를 국가 화폐로 교환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두루를 구입할 때는 현금과 1:1 매칭을 원칙으로 하는데 두루를 다시 현금으로 교환하지 못한다. 두루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참여를 위해 가맹점으로 가입하려면 두루에 대해 꽤 높은 신뢰가 필요하여 가맹점이 되기 쉽지 않다. 다음으로 '두루'를 사용하여 거래하는 것이 편리한가이다. 두루를 사용하기 편리하게 하려면,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많아야 하고 요즘 대세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지역화폐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역사회에서 포럼, 세미나 등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밭레츠는 거래소의 장부와 홈페이지에서 거래를 신고하고 사무국에서 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환 과정에서의 소통이 지역화폐 운동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고수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한밭레츠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새로운 지역화폐 운동을 하는 지역화폐협동조합

이런 논의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2019년 산업자원부의 커뮤니티비즈니스 활성화사업 R&D 품목으로 지역화폐가 선정되어 공고되었다. 한 해 전에는 커뮤니티케어가 선정되어 충남대학교 간호대학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하였고, 이번 지역화폐 플랫폼 개발은 한밭대학교 컴퓨터공학과가 총괄 책임을 맡아 연구개발이 진행되었다. 개발은 이듬해인 2020년까지 진행되었고 개발된 지역화폐 플랫폼 기술은 지역화폐협동조합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지역화폐 플랫폼은 지역화폐협동조합의 발기인이자 장애인 개발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사회적기업 위즈온협동조합이 유지보수를 맡고 있다.
 

▲ 지역화폐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한 일부 단체들과 이 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공간이음'.
▲ 지역화폐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한 일부 단체들과 이 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공간이음'.

지역화폐협동조합은 지역화폐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 생협, 사회적기업, 마을공동체, 시민단체 등 대전의 13개 법인 및 단체가 발기인이 되어 설립하였다. 이후 창립할 때에는 개인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2020년 9월 '지역화폐협동조합(이사장 박경)'이 출범했고, 현재는 조합원 250명, 출자금이 약 5천만 원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금융보험업을 할 수 없다'는 협동조합기본법으로 인해 대전시가 여러 차례 반려와 수정을 요청하는 바람에 2020년 12월에 신고증을 받을 수 있었다. 지역화폐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현금을 입금하고 한밭페이로 충전하는 것이 '선불전자지급업'에 해당하여 '기타금융업'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주식회사로는 가능한 업종들이 협동조합으로는 막혀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주식회사와 같이 금융을 할 수 있게 하고 금융 업종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에 따라 규제하면 된다. 대부업, P2P온라인 금융 등이 다 그런 방식이다.

협동조합이 금융업을 할 수 없다는 차별을 자회사로 해결

이에 대해 법무법인 더함의 자문을 받아서 자회사로 주식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지역화폐 온라인 플랫폼 한밭페이는 지역화폐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지역화폐협동조합이 만든 자회사인 ㈜한밭페이가 충전과 환전을 한다. 그리고 ㈜한밭페이는 온라인 플랫폼 수수료를 지역화폐협동조합에 지불하는 방식이다. 한밭페이 APP는 플레이스토어(Android) 또는 앱스토어(ios)에 가면 검색이 된다. 충전 방식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CMS를 활용하여 충전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한밭페이에 송금하여 충전하는 방식이다. 아직 이용자 계좌를 연결하여 즉시 충전하는 방식은 오픈뱅킹 진입장벽이 있어 시도를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법에 정해진 자본금(10억 원 이상)을 마련하여 추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한밭페이로 가맹 커피숍에서 커피를 구매하는 이원표 상임이사.
▲ 한밭페이로 가맹 커피숍에서 커피를 구매하는 이원표 상임이사.

소비자들은 지역화폐협동조합의 조합원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한밭페이를 이용할 수 있다. 이용하는 방법은 앱을 설치하여 가입하고 현금으로 한밭페이를 충전하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하고 편리하게 되니 2023년 현재 앱을 설치한 사람이 약 4천 명이고 2021년 첫해 5억 원 충전에 거래액은 10억 원, 2022년에도 5억 원 충전에 거래액 12억 원이다. 2023년에는 10월 현재 5억 원 충전이 넘어가고 있다. 현재 매달 정기적으로 충전하는 사람은 300~400명 정도고 1,000명은 가끔 충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할 때, 충전한 한밭페이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방식을 했더니 한밭페이 충전을 훨씬 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를 통해 지역 상권만 아니라 지역민, 자영업자들의 소통과 네트워크 살아남

한밭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은 500개인데 이 중에 150개는 사회적경제기업이고 나머지 350개는 소상공인들이다. 한밭페이의 활성화를 위해 가맹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책을 채택했다. 하나는 가맹점이 평소에 다른 수수료는 없지만 한밭페이를 현금으로 바꿀 때는 3%의 수수료를 지불하게 하는 것이고 가맹점 가입시킬 때는 조합원과 앱 가입자가 많이 분포하는 특정 지역을 정해서 그 지역의 골목에 있는 사업장을 집중적으로 가입하게 하는 것이다. 가맹점이 한밭페이를 현금화할 경우 3% 수수료를 지불하게 했더니 가맹점 점주들이 현금화하는 것보다 다른 가맹점에 가서 사용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사회적기업이 직원 회식을 같은 골목에 있는 가맹점 식당에 가서 하여 거래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지역에 가맹점을 집중하니까 소비자들의 이용이 많아지고 해당 지역에 가맹점들의 네트워크가 생겼다. 지역화폐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지향, 지역사회 소통 공간과 교류가 생긴 것이다. 대전시 서구 관저동이 그런 지역이다.
 

▲ 위의 것은 가맹점, 아래의 것은 기부처.
▲ 위의 것은 가맹점, 아래의 것은 기부처.

한편 공공이 하는 지역사랑 상품권은 소비 촉진의 효과는 있지만 지역 간 격차 심화와 상권 양극화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전의 서남부지역은 생활권이 공주시, 대전시 유성구, 세종시 등이 겹치는데 지자체 상품권들의 과잉 경쟁으로 대전 유성의 상권으로 소비가 집중되어 다른 지역의 소비가 위축되기도 한다. 더 큰 캐시백 혜택을 주는 곳으로 소비가 쏠리고 당연히 재정 여력이 좋은 지자체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주시나 세종시의 시민들이 대전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사용하는 '쏠림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역 주민들이 구입할 수 있는 지역사랑 상품권의 지역 제한과 지역 가맹점 이용 제한을 통해 적절하게 규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것을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성과주의에 맡기지 말고 민간 비영리 조직에 맡겨서 자율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가 살아나고 지역민들의 유대가 강화될 수 있다.

수익 모델을 찾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한밭페이

아직 한밭페이는 수익 모델이 약하다. 지금까지는 한밭페이의 공공성과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익 사업은 가맹점이 충전액을 현금으로 바꿀 때 수수료 3% 받는 것과 가맹점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온라인으로 선물을 보낼 때와 문화 티켓 판매 수수료 정도다. 앞으로는 지금의 2배 즉, 한해의 충전 금액이 10억 원과 사용자 1만 명이 넘어가면 몇 가지 수익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첫째, 광고를 유치하고 수수료를 받을 계획이다. 둘째, 대전시 등에서 하는 행사에 대해 앱을 이용하는 대전시민들에게 온라인 무료 티켓을 발송하고 그 무료 티켓을 받은 시민이 참여 의사를 밝혀 오면 그에 대한 홍보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수익 사업으로 하는 것이다.

주식회사,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에 비해 차별받는 일반 협동조합과 생협에 금융, 공제를 허용해야

한밭페이는 대전 지역에서 2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밭레츠의 혁신 모델이다. 한밭레츠가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밭레츠 모델에만 머물렀으면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어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밭레츠도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에서 자율적인 거래를 연결하여  기존의 지역화폐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한밭페이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현금과의 교환을 일반화했다는 점에서 더 많은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밭페이가 지향하는 지역화폐에 많은 대전시민들이 참여하고 사회적경제기업에도 크게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역화폐로 사회적금융을 실현하는 방향도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화폐로 주민들 스스로 다치거나 아플 때 등을 대비하는 공제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금융업을 할 수 없다는 협동조합기본법은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은 금융과 공제를 하고 있다. 생협과 협동조합기본법에 의한 협동조합만 금융과 공제를 못하게 하고 있다. 이는 분명한 차별 규제로 꼭 시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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