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팩 쓰게 한 것도, 재활용 주체도 소비자. 정부는 그걸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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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균팩 쓰게 한 것도, 재활용 주체도 소비자. 정부는 그걸 도와야"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배연정 환경기술센터장 인터뷰
  • 2024.02.05 17:54
  • by 정화령 기자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문구가 표기되어 유통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포털 사이트에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을 검색하면 가장 처음에 '재활용어려움이 써 있던데 그냥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나요?'라는 질문 글이 보인다.
 

▲ (왼쪽)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기가 되어 있다. ⓒ라이프인 ▲ (오른쪽)재활용 어려움에 관한 네이버 카페 문의 글. ⓒ온라인 갈무리
▲ (왼쪽)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기가 되어 있다. ⓒ라이프인 ▲ (오른쪽)재활용 어려움에 관한 네이버 카페 문의 글. ⓒ온라인 갈무리

환경부는 재활용률을 평가해서 제품 설계 생산단계부터 재활용이 쉽게 만들기 위한 제도로 포장재 등급 표시 제도를 운용한다 밝혔으나, 정작 재활용을 실천하는 소비자에게 혼돈을 주는 상황임이 드러나고 있다. 전문가는 2025년이면 전체 종이팩 출고량 중 멸균팩이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사용량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재활용의 대안은 무엇일지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배연정 환경기술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가 그린에코공학연구소에서 환경기술센터를 담당하며 재활용 분야를 연구한 지는 6년 정도 되었다. 환경 전반에 걸쳐 통계에 기반한 분석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재활용 정책 평가 및 종이팩에 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지난해 12월 숲과나눔에서 진행한 종이팩 컬렉티브 정책 포럼에서 발제를 시작하며 "멸균팩을 포함한 종이팩이 과연 친환경 포장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당연히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멸균팩에 관해서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묻자 "멸균팩을 왜 써야 하는지에 관한 답은 명료하다. 소비자가 찾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친환경적이라 인식하고 있고, 플라스틱보다 물류에 효율적이며 포장재에 직접 인쇄가 가능한 것이 멸균팩의 장점"이라고 설명하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적지 않지만, 소비자가 친환경이라고 인식하고 찾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더 많이 재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배연정 환경기술센터장. ⓒ라이프인
▲ 서울대학교 그린에코공학연구소 배연정 환경기술센터장. ⓒ라이프인

그렇다면 멸균팩은 얼마나 재활용되고 있을까. 그는 지난해 멸균팩이 고작 1.4%밖에 재활용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전했다. 2022년에는 전체 종이팩 출고량 대비 재활용률이 14%로, 이는 일반팩 29.3%와 멸균팩 10.9%를 합산한 수치였다. 22년에는 멸균팩 재활용 업체가 한 곳 있었는데 지난해 문을 닫아 그나마 재활용되던 양도 소화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배 센터장은 "종이팩이 재활용되는 경로를 정확하게 짚어보면, 14%가 아니라 최대 48%"라고 말한다. 많은 소비자가 종이팩을 '용기'가 아니라 '종이'로 인식하고 폐지에 혼입해서 분리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지 베일(압축 폐지)을 직접 뜯어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종이로 재활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종이팩 자체로 수거해서 재활용해야 통계로 인정하고 있다.

 

Q. 그렇다면 그냥 종이와 함께 재활용하면 안 되는가?

A. 같은 종이팩이라 하더라도 일반팩과 멸균팩은 종이 특성이 다르다. 폐지에 소량 섞여 있으면 몰라도 본격적으로 상품화하면 그 특성을 살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종이팩은 매우 고가의 펄프를 사용한 제품이다. 일반팩은 화장지와 고급 인쇄용지의 주요 원료가 되고, 멸균팩은 종이 타올 등 위생용지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골판지 심지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원료가 된다.

자연드림은 멸균팩을 회수하여 주방용 종이 타올 원료로 공급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이용하여 건축자재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다. 싱크대에 사용되는 기존 MDF 목재는 톱밥에 접착제를 섞고 압착하여 제작하는데, 멸균팩을 이용할 경우 접착제 없이 제작할 수 있어 유해 물질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드림의 재활용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거라 종이팩 전체 재활용 시스템의 대안으로서는 부족하다.
 

▲ 자연드림 멸균팩을 이용해서 재활용되는 품목. ⓒ자연드림 홈페이지
▲ 자연드림 멸균팩을 이용해서 재활용되는 품목. ⓒ자연드림 홈페이지


Q. 1.4%라면 재활용률이 심각한 상황인데

A. 작년을 큰 기점으로 볼 수 있다. 이전에는 멸균팩 재활용을 취급하지 않던 대형 제지사가 이제는 ESG 경영의 하나로 멸균팩 재활용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멸균팩 재활용 종이의 수요도 발생한다. 작년 한솔제지에서 멸균팩 40톤을 테스트했고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 이제 제대로 된 방향이 잡히려는 시점인데 정부에서 '멸균팩이 재활용 어렵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타이밍의 착오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재활용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폐지에 섞여서 얼마나 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이제는 제지사에서 대규모로 활용하려는 시점에 단순히 수치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Q. 큰 흐름이 활성화되려면 어떤 게 주요할까?

A. 재활용 가능성이 증명되었고 본격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지사 이야기를 계속하면, 골판지 원료 중 펄프 대용으로 미국산 폐골판지(A-OCC)를 많이 이용하는데, 멸균팩이 이를 대신할 수 있으며 물리적 특성이 A-OCC보다 우수하다. 다만 수율(투입량 대비 생산량 비율)이 A-OCC에 못 미치기에 지금까지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지원금 중 일부를 제지사에 직접 지원한다면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A-OCC가 연간 24만 톤 수입되는데, 그중 10%만 멸균팩으로 대체해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종이팩 재활용 구조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팩과 멸균팩을 완벽히 구분 선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일반팩 속 멸균팩은 품질에 치명적인 이물질이고, 멸균팩 속 일반팩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회수량이다. 최소 연간 1만 톤 이상의 멸균팩이 모였을 때 재활용 체계의 경제성이 확보된다.
이미 틀은 어느 정도 갖춰졌기에 앞으로 잘 되리라 생각한다. 멸균팩이 이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건 소비자가 찾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활용을 활성화하는 것도 소비자의 역할이 클 거로 생각한다.


Q. 소비자 역할이라면 분리배출이 떠오른다

A. 배출부터 멸균팩과 일반팩을 분리하라고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게 어렵다. 구분하지 않고 배출해도 종이팩 회수가 어려운데 분리배출은 재활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길이다. 씻고 말려서 펼치라는 건 너무 과도한 주문이다. (Q. 일본에서는 씻고 말려서 택배로 회수하는 경우도 보았다) 일본과 우리나라 EPR 제도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품질 기준에 어긋나면 재활용 사업자가 지자체를 대상으로 폐기물 수거를 거부할 수 있다. 세척 후 말려야 수거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그렇게 하는 거라, 문화의 차이가 아닌 제도 차이다. 단지 내용물이 부패하니까 플라스틱 배출처럼 한번 씻어서 내보내면 될 것 같다.


Q. 구분 없이 모인 종이팩이 어떻게 분리될지 궁금하다

A. 일반팩과 멸균팩을 분리하는 선별기가 있다. 현재 종이팩을 수거하고 선별하는 작은 업체에서 이 설비를 도입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대형 재활용선별 업체 두 곳에서 선별기를 도입해서 멸균팩을 골라냈더니 순도가 98%였다. 이곳은 금속‧플라스틱‧폐지‧캔 등 재활용품 대부분을 선별하는 곳으로, 이미 PET와 PP를 구분하기 위해 광학 선별기를 사용하던 업체다. 종이팩 재활용도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다른 종이팩 재활용 업체들도 도입을 미룰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종이팩 소규모 재활용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정부나 EPR 제도 분담금에서 투자비를 지원할 때만이 종이팩 재활용 시스템이 안정화할 수 있다.


Q.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종이팩 수거함 설치 현장. ⓒ숲과나눔 종이팩 컬렉티브 3차 정책포럼 자료집
▲ 종이팩 수거함 설치 현장. ⓒ숲과나눔 종이팩 컬렉티브 3차 정책포럼 자료집

A. 환경부가 올해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을 개정하고 종이팩 분래배출 및 회수시스템을 개편하려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파트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 설치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중 30% 정도 설치되었다고 추정하는데, 이게 최대 90%까지 늘어나면 종이팩 회수량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외에 서울시는 관내 4천여 개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종이팩 분리배출 및 회수체계를 구축하였으며, 광주에서도 종이팩 전용 수거함 운영에 힘쓰고 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나름의 종이팩 재활용 활동을 추진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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