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장애인ㆍ비장애인 구분할 수 없는 사회를 꿈꾸는 찬솔사회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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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장애인ㆍ비장애인 구분할 수 없는 사회를 꿈꾸는 찬솔사회적협동조합
  • 2023.08.02 12:00
  • by 정원각 객원기자

2023년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11년을 맞는 해로 협동조합 법제화를 비롯하여 각 사회적경제 조직의 제도화를 점검할 시점이다. 지난해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책이 크게 축소되는 기조 속에 침체국면에 처할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구시 동구 안심마을 ▲전남 영광군 여민동락 ▲전남 목포 건맥1897협동조합 ▲경남 창원시 내서푸른주민회 ▲충북 옥천고래실 등 사회적경제 분야 조직들의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타 사회적경제기업이 참고할 수 있게 모범적인 현장 기업들을 어떻게 활동하고 운영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 매장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곳이죠"
"장애인이 어느 분이죠?"
"아 그래요? 누구인지 모르겠는데요."
지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일을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업무 능력을 가진 장애인.

찬솔은 순우리말로 '속이 꽉 찬 소나무'라는 의미라는 것이 찬솔사회적협동조합 김인환 이사장의 설명이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꿈꾸는 사회는 '장애인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비장애인,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한다. 지적장애인을 보호, 케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지적장애인들에게 바리스타로서 일자리도 소중하다. 그러나 스스로 경영을 해야 하고 나아가 일반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적장애인은 케어,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사는 동료

이런 방향을 잡게 된 것은 특수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이 졸업한 후의 삶을 보면서다. 특수학교에서 지적장애 학생의 진로를 위해 직업교육을 한다. 그런데 그 직업교육은 단순히 바리스타 자격을 위한 기능 교육을 넘어서지 못한다. 더구나 현장 실습도 할 수가 없다. 여러 사업장의 문을 두드려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정부의 법적 요건을 채우기 위해 장애인에게 문을 연 다국적 기업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는 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지적장애인 바리스타에게 매장과 화장실 청소 그리고 설거지만 시켰다. 그 청년은 당연히 몇 달 후에 그만뒀다. 청년들이 이런 경험을 두세 번 하면 취업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중의 하나인 '소소한 카페'.
▲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중의 하나인 '소소한 카페'.

장애인 고용을 기업 이미지 제고와 정부 정책을 기계적으로 이용하는 사업장도 문제지만 이를 극복하는 대안 마련도 필요했다. 지적장애인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리스타의 역할만 아니라 포스 운영 그리고 자재 구입, 커피 원두 선정과 계약 등도 해야 한다. 결국에는 자기 매장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자기의 단점, 한계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 성찰적 인간으로 성장해야 한다. 동생, 가족 또는 배우자 등과 경영해야 지속 가능한 생존이 된다. 늘 변하고 새로운 손님이 오는 카페에서 발생하는 일, 사건에 대해 대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정해진 정답 중심의 교육을 하므로 자립할 수 있게 훈련할 수가 없다. 

22명의 직원 중에 장애인 17명, 비장애인 5명이 함께 협업하는 찬솔사회적협동조합

이런 배경이 찬솔사회적협동조합 창립 배경이다. 특이한 점은 2018년 창립 조합원 5명이 모두 울산에 있는 특수학교, 태연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다. 그리고 이 다섯 명의 역할이 다 다르다. 직업 교육 트레이닝, 학급 담임, 관리자, 스마트팜, 카페 등의 분야를 담당한다. 조합원은 9명인데 모두 이사와 감사 등 임원에 참여하는 구조다. 2022년 매출은 10억 원 규모이고 직원은 22명인데 장애인 17명, 비장애인 5명이며 비장애인은 고령자, 경력단절 여성, 청년 등이다. 사업 분야는 세 분야인데 스마트팜에 2명, 화장지와 물티슈 제조와 판매에 10명, 카페에 9명 등이다. 
 

▲ 물티슈와 점보롤 화장지 제조.
▲ 물티슈와 점보롤 화장지 제조.

찬솔의 첫 사업은 물티슈와 화장지의 제조, 판매였다. 복사용지를 검토했는데 이미 많은 장애인 사업장이 하고 있어 포기했다. 물티슈 분야는 공공기관 납품 품목은 아니지만 식당 등에 영업을 하면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점보롤 화장지도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9년 인천에 있는 점보롤 화장지 기계를 생산하는 곳에 갔다. 울산, 경남에도 기계가 있지만 지적장애인 특성상 진동과 소음이 최대한 적고 성능이 좋은 기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계값은 7천8백만 원으로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김인환 이사장은 사장을 만나서 담판 지었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의 사정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리고 현재 찬솔은 돈이 없는데 1년 동안 매월 3백만 원씩 갚고 1년 후에 나머지 금액을 다 드리겠다고 했다. 속된 말로 무대포였다.

이사장 개인이 담보하여 점보롤 화장지 기계를 구입

처음 본 사람에게 그냥 기계를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계를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대신에 개인 담보를 요구했다. 그래서 김인환 이사장이 집을 담보로 잡히고 기계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2019년 가을부터 사업을 시작했는데 몇 달 안 가서 코로나가 터졌다. 거래하는 식당들의 매출이 80% 급감했다.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마침 점보롤 화장지가 2020년부터 울산시청, 울산북구청 등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지역에 알려지지 시작했는지 한국동서발전에서 연락이 왔다. 경증치매 어르신 환자들과 청소년이 협업하는 카페였다. '주문을 잊은 카페'로 어르신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일을 하는 방법이었고 카페 운영에 필요한 장비 일체 지원하는 조건이었다. 성과는 매우 좋았다.

공기업, 사기업 등과 협력하는 카페 운영과 새로운 직업 분야 개발

기회가 또 왔다. 울산대공원(약 20년 전에 SK가 조성한 후, 울산시에 기부채납한 공원) 내에 있는 SK그룹이 시민을 위해 만든 북카페 지관서가(止觀書架)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 위탁 운영하는 카페가 3곳이다. 2020년부터 스마트팜을 하고 있다. 토경, 수경 모두 하는데 작물은 새싹삼이다. 지적장애가 있지만 변수가 많지 않아 몇 가지 조건만 맞춰주면 되는데 상당히 관리를 잘한다. 이렇게 지적장애인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일도 개발하고 있다. 가령 도시락에 들어가는 수저, 이쑤시개, 냅킨 포장은 중증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불량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현재 지역 대기업에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 중증지적장애인들이 직접 포장한 수저세트를 납품하고 있다.

▲ 카페 이외의 직업 분야를 개발한 스마트팜과 도시락 수저세트 포장.
▲ 카페 이외의 직업 분야를 개발한 스마트팜과 도시락 수저세트 포장.

육체노동만 아니다. 지적장애인이 강사로 나갈 수 있게 훈련하고 있다.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이 특수교육에 쓰는 교구를 개발하여 특허를 받았는데 지적장애인들이 이 교구를 가지고 노인 등 피교육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강사로 뛰는 것인데 이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로 큰 변화이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이 인정을 받아서 찬솔사회적협동조합은 2021년 제1회 울산 사회적경제 IR 데모데이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렇게 카페, 물티슈와 화장지, 스마트팜에 참여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꿈과 욕망이 자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페 매니저를 하면서 부총괄 매니저를 하고 싶어서 회식 때에는 현재 부총괄 매니저의 문제를 슬쩍 흘리기도 한다. 지적장애인에게는 숨겨져 왔던 비장애인들의 욕망이 지적장애인들에게도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부 직원은 운전면허도 땄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등록되면 혜택도 있지만 자격증 취득에 제한도 있다. 그래서 운전면허를 주지 않으려는 당국을 설득했다. 선배 장애인이 후배 장애인을 조언하고 가이드하는 역할도 한다. 비장애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지적장애인 사이에서도 조금씩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서 갈등도 배우고 조정 능력도 배운다. 그래야 가정을 이룰 수 있고 자녀들을 키울 수 있다.
 

▲ 위탁 운영하는 카페 '지관서가'와 기관서가에 온 고객이 남긴 글.
▲ 위탁 운영하는 카페 '지관서가'와 기관서가에 온 고객이 남긴 글.

일반 생활을 더 훈련하고 경험하기 위해 공동의 숙식 생활도 준비하고 있다. 700평의 땅을 사서 숙박을 하면서 텃밭도 가꾸는 공간이다. 이는 김인환 이사장 개인이 조성하고 찬솔협동조합이 이용할 수 있게 계약하는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다. 직장에서 일하는 방법 외에 생활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카페도 늘리고 로스팅도 할 수 있게 훈련하며, 탄소배출 제로도 계획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앞에 놓인 과제 해결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 지관서과 매니저와 내부.
▲ 지관서과 매니저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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