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⑦] 가난한 농부들 곁에 '친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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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농부들의 기후행동⑦] 가난한 농부들 곁에 '친구'가 있었다
인도 PDS 설립자 아라칼 주교의 열정 넘치는 도전
  • 2024.04.24 12:00
  • by 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1980년 남인도 케랄라 산악지역의 향신료 재배 소농들과 젊은 가톨릭 신부가 설립한 비영리조직 PDS(Peermade Development Society)는 관행농법의 폐해와 산업화된 대규모 농식품기업들이 주도하는 시장 속에서도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고 있다. PDS가 위치한 서고츠(Western Ghats)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며,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고대부터 후추, 카다멈, 생강, 강황 등 향신료의 원산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들은 쉽지 않은 유기농법 전환과 인증 및 모니터링 체계, 전체 가치사슬의 규모화와 전문화, 혁신적인 리더십, 선진국 소비자단체들과의 공정무역, 장기적인 파트너십 등을 쌓아왔다.
본 기획기사는 공정무역과 협동조합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해온 두 명의 연구자가 인도 최남단 케랄라 지역을 방문하고 연구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2022년 6월~23년 7월). 이를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향신료 농부들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소개하고, 여러 도전과제 및 어려움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도전해 온 노력의 흔적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전 세계인의 과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케랄라의 향신료 농부들과 같은 농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이해와 공감, 적극적인 협력과 연대가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편집자 주]

 

"그는 자주 마을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든 힘든 부분을 함께 해결하려 했다" 
"집 앞에 길이 없어 차를 댈 수 없었다. 농산물을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주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집 앞에 길을 만들어 주었다."


농부들은 케랄라 이두키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PDS의 창립자 매튜 아라칼(Mathew Arackal) 주교를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그는 80의 나이로 은퇴했지만 수십 년을 그와 함께해 온 농부들은 그가 수시로 농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 은퇴한 사제들의 숙소를 방문하여 매튜 아라칼 주교를 만난 연구자들.
▲ 은퇴한 사제들의 숙소를 방문하여 매튜 아라칼 주교를 만난 연구자들.

케랄라의 가톨릭교회는 라틴(Latin), 시로-말라바(Syro-Malabar), 시로-말란카라(Syro-Malankara) 교파가 있다. 아라칼 주교가 속한 시로-말라바 교회는 산악 부족 여성을 위한 권한 강화 프로그램, AIDS 및 암 치료 센터, 중독자를 위한 프로그램, 노인과 빈곤층을 위한 주택 제공 등 교회 구성원뿐만 아니라 신분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행한다. 소액 대출 프로그램, 저축 장려,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를 제공한다. 주택 건축, 건강 프로그램 운영, 생활 개선 사업, 유기농업 및 퇴비화, 직업 기술 훈련, 긴급 재난 구호 등 진행하는 서비스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Catholic Near East Welfare Association 홈페이지). 케랄라 가톨릭 주교 위원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4,860개의 교육 기관, 2,614개의 보건 및 자선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빈곤한 이들과 함께해온 길

PDS를 설립한 매튜 아라칼 주교가 아두키 지역의 발전을 위해 걸어온 길은 교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아라칼 주교는 27세인 197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77년 칸지라팔리(Kanjirapally) 교구가 만들어질 때부터 부임하여 평생을 가난한 산악부족, 여성, 아동, 소농들을 돕는데 헌신한다(시로 말라바 교구 홈페이지). 교구 설립 3년 후 1980년에 PDS를 설립한다. 아라칼 주교가 퇴임한 2020년 교구에서 출판한 그의 전기를 보면, 깊은 숲속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부족들의 가난한 삶이 그려져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한 것은 착취당하는 부족들의 처지였다. 

"한번은 숲에서 자란 카다멈과 흑후추를 팔러오는 부족을 보았다. 그들은 상점에 싼값에 농산물을 팔고 소금과 담배를 사서 돌아갔다. 아라칼 주교는 상점 상인들에 의해 엄청난 착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건은 숲속에 거주하는 부족들의 자급자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전환점이 되었다."(Mar Mathew Arakkal Historical Memorial)

인도 케랄라 숲속에 사는 산악 부족은 가장 빈곤한 계층이며 문명에서 소외되어 온 소수민족을 의미한다. PDS를 시작할 당시 조사에 따르면, 칸지라팔리 교구 내에서만 35개 부족 공동체에 1,059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아라칼 주교는 산악 부족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빌린 천 루피를 들고 인도 델리에 있는 중앙 농업부를 찾아간다. 당시 장관을 맡고 있던 나이르(Nair)씨는 아라칼 주교의 설명을 듣고 개발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원해 준다. 나이르 장관 역시 서고트 산악지역 출신이었으며, 이때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 PDS의 다양한 지역개발 사업에 도움이 된다(Mar Mathew Arakkal Historical Memorial). 

스스로 발전하는 길 모색

아라칼 주교는 정부 지원이나 국제 원조를 받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농부들과 함께 다양한 실험과 혁신을 통해 농업 기술을 개발하고, 판로를 확대하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서 PDS 산하에 연구소, 실험실, 종묘장, 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다. 적극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95년에 마리안 대학(Marian College)도 설립한다.
 

▲ 마리안 대학 건물 일부와 대학에 남아 있는 아라칼 주교의 흔적 .
▲ 마리안 대학 건물 일부와 대학에 남아 있는 아라칼 주교의 흔적 .

그는 가난한 산악부족들과 농부들이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는 방법을 찾는다. 우선은 케랄라 숲속에 자생하는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캐오는 산악 부족들에게 제값을 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동안 산악 부족들이 상인들에게 헐값에 넘겼던 허브와 약용식물을 제값에 구입하여 인도 전통 치료법인 아유르베다에 기반한 치료 약을 만들기 시작한다. 야생 구즈베리를 비롯한 후추, 카다멈 등 총 250여 종의 식물을 약재로 사용한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천연 식물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아유르베다 병원, 아유르베다 약품 제조 공장 및 약국, 치료실과 방문자들이 머무는 숙소, 아유르베다 테라피스트 훈련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 산악 지역 농부들과 의기투합하여 국제 유기농 인증을 받고 수출을 시작한다. 그리고 인도 최초의 유기농 후추 수출 회사를 설립한다. 
 

▲ PDS에서 운영하는 아유르베다 약국
▲ PDS에서 운영하는 아유르베다 약국

그의 업적은 PDS 산하 기관 설립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사하드리 협동조합 은행(Sahyadri Co-operative Bank)설립에도 기여한다. 이 협동조합 홈페이지에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아라칼 주교로부터 신용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쓰여 있다. 신용협동조합 설립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고리대금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원한다. 현재 케랄라주와 타밀나두주에 만 명 이상의 주주가 있다. 이 협동조합은 주주의 약 60%가 1주를 보유한 농민이다. 주당 가격은 천 루피, 약 한화 만 5천 원이다. 시중은행보다 좋은 예금과 대출 금리가 정해지며 협동조합의 자조 및 상호부조 원칙에 따라 사회·경제적 발전을 돕고 있다. 

현지 조사 당시 만났던 농부들은 아라칼 주교와 PDS 덕분에 중개인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농부가 그와의 '우정(friedship)'을 강조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평생을 농부들과 함께했던 아라칼 주교에 대한 존경과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2023년 1월 29일, 은퇴한 사제들이 거주하는 숙소로 아라칼 주교를 만나러 갔다. PDS를 비롯한 그간의 활동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그동안의 활동은 자신의 소명, 종교적 의미의 '풍성한 삶(abundant life)'을 추구하는 과정이었으며, 아유르베다의 뜻인 '생명을 위한 바이블'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상통한다고 했다. 왜 유기농법으로 바꿔야 하는지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그는 무엇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설명하고 교육하며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농부들의 삶에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며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려고 했던 그의 마음과 실천, 그리고 도전정신이 공동체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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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김선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
협동조합경영학 박사, 주로 협동조합,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의 제도 변화 및 발전 과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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