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첩] 벚꽃 지고 라일락 피고, 5년 뒤 생일에는 어떤 꽃을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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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수첩] 벚꽃 지고 라일락 피고, 5년 뒤 생일에는 어떤 꽃을 보려나
  • 2023.04.13 13:44
  • by 노윤정 기자
▲ 지난 4월 7일 촬영한 라일락꽃. ⓒ라이프인
▲ 지난 4월 7일 촬영한 라일락꽃. ⓒ라이프인

햇살이 좋던 며칠 전,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목에서 라일락꽃을 발견했다. 아니, '발견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길을 따라 라일락꽃이 만개해 있었다. 라일락은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에 기꺼이 발걸음을 멈추고 꽃을 구경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라일락꽃이 필 때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한 주 전 절정이었던 벚꽃은 이미 거의 진 상태였다.

어릴 적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10년 전만 떠올려 봐도 올해 꽃들이 피는 시기가 얼마나 이상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목련이 피고, 이어 개나리와 진달래가 개화하고, 그다음 4월 중순쯤 벚꽃이 만개했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자주 했던 우스갯소리가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이었다. 대학 중간고사 기간이 벚꽃철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벚꽃이 지고 난 뒤 비로소 라일락이 피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4월 초에 있는 기자의 생일에는 라일락은커녕 벚꽃도 볼 수 없었고 그 점이 늘 아쉬웠다(그때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다).

꽃들의 개화 시기가 우리에게 익숙했던 날짜와 달라진 것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거나 서로 만나지 않아야 할 꽃들이 한꺼번에 피곤 했다. 이미 지난 2021년은 1922년 벚꽃 개화 관측을 시작한 이래 서울 지역에서 벚꽃이 가장 이르게 핀 해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올해는 관측 이래 두 번째로 서울 지역에서 벚꽃이 이르게 핀 해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개화 시기 변화의 주원인은 기후위기다. 기상청이 발간한 '2020 기후변화감시 종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육지 평균 기온(10.09℃)은 20세기 평균 기온보다 1.59℃ 높아져 1880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13.0℃)은 평년보다 0.5℃ 올라, 최근 48년간의 연평균 기온 중 5번째로 높았다. 이처럼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지구의 연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꽃들에 봄이 이르게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활짝 핀 꽃들 사이에서 나비나 벌들을 보기 어렵다는 점 또한 기이하다. 지난해 초, 약 70억 마리 꿀벌이 사라졌다고 수차례 언론에 보도됐던 일이 떠오른다. 나비와 벌들의 실종이 이상기후 때문만은 아닐 수 있겠으나, 누적돼 온 기후변화의 영향은 천천히 생태계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2~3월 평균 기온의 상승, 늦겨울과 초여름을 오가는 4월 날씨. 인간도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적응이 어려운데 곤충들은 오죽할까.
 

▲ 지난 4월 11일 촬영한 자목련. 본래 자목련보다 늦게 피던 벚꽃이 올해는 먼저 피었다가 진 모습이다. ⓒ라이프인
▲ 지난 4월 11일 촬영한 자목련. 본래 자목련보다 늦게 피던 벚꽃이 올해는 먼저 피었다가 진 모습이다. ⓒ라이프인

기상청은 지난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토대로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고탄소 시나리오, SSP 5-8.5) 21세기 후반에는 벚꽃이 3월 10일경 필 것으로 분석했다. 그렇게 되면 벚꽃보다 이르게 피는(이르게 펴야 하는) 진달래꽃은 2월 말경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100여 년 뒤를 전망할 필요도 없다. 당장 5년 후면 4월 초 있는 나의 생일에 라일락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일에 가장 좋아하는 꽃을 보는 일, 어린 시절 언젠가 바랐던 일인데 기쁘지 않다. 기후위기로 인해 우울감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하던데, 이렇게 기후위기를 실감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본다. 씻기 번거롭지만 텀블러를 사용하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산 뒤 되도록 비닐봉지를 받지 않으려 하고, 새 옷을 덜 사고, 물건을 소비할 때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의 제품을 사려고 한다. 환경 문제뿐 아니라 노동 문제가 제기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 최대한 동참한다. 환경단체에 기부를 시작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하나 더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는 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 가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4월 초 나의 생일에 라일락을 보는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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