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끄랑, 제주] 당신의 하룻밤이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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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끄랑, 제주] 당신의 하룻밤이 누군가의 삶을 돌보는 곳
일자리 창출을 통해 장애인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곳, 호텔 엘린 체험기 및 한봉금 원장 인터뷰
  • 2020.07.31 00:03
  • by 노윤정 기자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기, 하계 휴가철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피하고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게 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누군가는 낯선 도시로 향한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이 많다. 이에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역시 증가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관광지인 제주도를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행을 보다 의미 있게 즐기고 여행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올여름, 제주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역, 사회와 연대하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라이프인은 제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적경제조직과 소셜벤처가 운영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제주 지역 사회적경제 분야를 지원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봉끄랑'은 가득차다, 풍요롭다, 빵빵하다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 인간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여행을 통해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205쪽)는 점을 꼽았다. 여행이라는 소재에 글쓰기, 인간, 삶의 의미를 담아낸 이 책에서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났다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말이다). 이러한 여행의 경로에서 호텔은 일상을 떠나온 설렘과 낯선 곳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을 주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일상과 어느 정도 유리된 곳이다. 그런데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공간이 된다. 나아가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희망의 공간이 된다. 그렇게 조금 특별한 곳이, 제주도에 있다.

▲ 호텔 엘린 정문. ⓒ엘린
▲ 호텔 엘린 정문. ⓒ엘린

■ 국내 최초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호텔, 직접 가보니…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호텔 엘린(Elin). 위치를 보자면 제주도청 인근, 즉 제주 시내 중심가다. 공항을 오가는 데 부담이 없을뿐더러, 어디로든 이동하기 용이하니 퍽 괜찮은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객들이 호텔 엘린을 찾는 이유가 단지 위치상의 이점 때문만은 아니다. 저렴한 편에 속하는 객실 요금 때문만도 아니다.

2012·2014년 제주시 숙박위생 점검 최우수 등급 선정
2013년 튼튼관광제주만들기 캠페인 숙박분야 우수업체 선정
2014년 제주관광협회 우수관광 사업체 지정
2019년 한국관광공사 품질인증 업체 지정
2019년 제주시 친절우수업체 선정

이처럼 많은 지표들이 호텔 엘린을 '가격과 서비스 모두 꽤 괜찮은 숙소'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처음 호텔 앞에 도착하면, 어쩌면 건물 외관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호텔 크기도 객실 32개 규모로서, 그리 크지는 않다. 하지만 정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깔끔한 로비가 외관을 보며 느낀 아쉬움을 사라지게 한다. 리모델링한 로비 모습은 신축 호텔 부럽지 않다. 그렇게 로비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프런트에 놓여 있는 '사회적기업' 인증패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이곳은 제주도를 찾아온 이들을 위한 숙소인 동시에, 사회적기업이며 국내 최초로 숙박업을 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다. 호텔 엘린에서 묵으면서 만날 수 있는 다수의 직원들이 근로장애인이다.

▲ 호텔 엘린 객실 내부. ⓒ라이프인
▲ 호텔 엘린 객실 내부. ⓒ라이프인

코로나19의 여파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그래도 제주도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지금은 여름휴가 기간이다. 그래서인지 로비에는 여행객들이 계속해서 오갔다. 이처럼 성수기라 투숙객이 많을 것을 대비해 기자는 숙박 어플로 예약하고 온 참이었다. 호텔 엘린은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숙박 어플 입점 기업이기도 하다.

키를 받고 객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면 엘리베이터 옆에 자리하고 있는 실내화 소독기가 보인다. 투숙객들이 사용하는 물품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눈으로 확인하니 조금 더 안심되는 기분이랄까. 객실 역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지난 3월, 2주간 영업을 중단하고 그 기간 동안 객실과 복도 도배를 새로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더 깔끔해 보였다. 투숙객들이 가장 신경 쓰는 곳 중 하나일 화장실도 물때 하나 없이 청결했다. 침구 역시 기분 좋게 보송보송하고 말끔하게 관리되어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안락함 속에서 에어컨이 내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혔다.

■ 엘린, 희망을 꿈꾸는 행복한 일터

▲ 한봉금 엘린 원장. ⓒ라이프인
▲ 한봉금 엘린 원장. ⓒ라이프인

라틴어로 '행복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엘린(Elin)은 사회복지법인 창암복지재단(이하 창암복지재단) 산하의 장애인 직업재활시설로, 지난 2012년 개업했다. 모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행복한 일터'. 현재 엘린은 숙박업소인 호텔 엘린과 건물위생관리업을 하는 엘린 클린, 이렇게 사업장 2개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체 직원 72명 중 53명이 근로장애인이다. 호텔 엘린에 룸메이드 사원, 마케팅팀 매니저, 조리보조사원 등으로 13명의 근로장애인들이 근무하고 있고, 엘린 클린 일상관리팀과 특수기술팀에 총 48명의 근로장애인이 소속되어 있다. 하룻밤 묵는 것만으로 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에 기여할 수 있는 곳, 평범하게 떠난 여행의 가치를 조금 더 높여주는 곳, 호텔 엘린에서 한봉금 원장과 만나 엘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엘린은 보건복지부 공모 사업으로 창암복지재단이 설립한 중증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이다. 나는 창암복지재단에 근무하고 있었다. 장애인 고용 창출을 위해 설립한 곳이다 보니, 다른 관리자들도 대부분 사회복지사다. 사업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호텔 시설을 정비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직무교육을 하고.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 처음에는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목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돈도 벌어야 하겠더라.(웃음) 그래야 장애인 고용이나 복지 혜택을 늘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업에 대해서도 배우면서 하나하나 만들고 꾸려온 시간이 만 8년이 되었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라고 하면 제조업 시설을 주로 떠올리게 되는데, 엘린은 숙박업과 위생관리용역업을 하고 있다. 많은 업종 중에 그 두 가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로서 호텔을 운영하는 곳은 우리뿐이다. 그래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견학을 오기도 한다. 숙박업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제주도가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숙소에 대한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또, 직업재활시설 생산품들을 보면 품목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직업재활시설에서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다양화하자는 취지도 있었다. 더불어 장애인들의 직업도 다양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다만 호텔은 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인 고용을 위해서 운영되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위생관리용역업을 하는 엘린 클린을 시작했다.

근로장애인 채용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일단 출퇴근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직무 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근로계약을 하기 전에 우선 훈련을 한다. 호텔의 경우, 훈련했을 때 그 사람이 혼자 방을 청소할 수 있는지, 일에 흥미를 느끼는지를 살핀다. 그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그때 근로계약을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일을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다.

근로장애인들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하다.

월 1회 이상 직무 교육을 실시하고 개인별로 상담도 지속하면서 의지를 가진 근로장애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꼼꼼하게 매뉴얼을 만들고 개인별 직업재활 계획도 수립한다. 또, 일하다 보면 당연히 슬럼프를 겪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사례관리 담당자를 비롯해서 관리자들이 면밀하게 살피면서 일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도록 돕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를 위해 시작한 사업인 만큼 직원들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하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어떻게 되나?
평균 근속 기간은 5년 정도다. 초반에는 사례관리도 잘 안 되고 정신이 없었는데, 체계가 잡히면서 장기근속자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이직이 흔하지 않나. 그런 걸 생각하면 5년 근속은 대단하다고 본다. 이렇게 장기 근속하는 근로장애인들을 보면 변화한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아주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아 이렇게 달라졌구나' 싶은 부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네'라는 짧은 대답만 하다가 나중에는 본인이 질문하기도 하더라. 직무 처리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성이나 언어능력도 향상된다.

▲ 호텔 엘린 로비. ⓒ엘린
▲ 호텔 엘린 로비. ⓒ엘린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2014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해보니 어떤가?
손님들이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다른 동종업체와는 다르게 봐주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사업 자체가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지만,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하니까 더 공익적인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 보다 가치 지향적인 곳이라고 생각해준다. 우리에게는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재화나 서비스는 경쟁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엘린은 기존 시장의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가?
일단 가성비가 좋다.(웃음) 그리고 웬만한 숙소보다 깨끗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객실에 비치된 컵을 예로 들자면, 우리는 손님이 퇴실한 후 전부 수거해서 씻고 살균소독기에 소독을 한다. 욕실에서 사용하는 컵이나 객실 실내화도 전부 소독기를 통해 소독한다. 청결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런 노력이 인정을 받는지, 처음에는 주변의 다른 숙소에 방이 없을 때 우리 쪽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우리 호텔에 방이 없어서 다른 숙소로 가는 손님들도 생기고 있다.
엘린 클린은 초창기에 위생관리 관련 기술을 가진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현재 질 높은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전국건물위생관리 기능경진대회에서 2016년에는 최우수상을, 2018년과 2019년에는 대상을 받았다. 그만큼 서비스 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 (왼쪽부터) 강명승 사무국장, 한봉금 원장, 김의산 팀장. ⓒ라이프인
▲ (왼쪽부터) 강명승 사무국장, 한봉금 원장, 김의산 팀장. ⓒ라이프인

당연한 일이겠지만, 청각장애인 초인종이나 휠체어 승강기 등 다른 숙소보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실제로 장애를 가진 투숙객들이 많이 찾는가?
전체 투숙객 중 장애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산출해 보진 않았다. 대략 20%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는 장애인분들이 최대한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다른 호텔을 보면 객실이 100개 있더라도 장애인 편의객실은 1~2개 정도다. 우리는 32개 객실 중 4개가 장애인 편의객실이다. 그리고 조식 서비스는 없지만, 장애인분들은 원할 경우 세미나실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게끔 해드리고 있다. 그 외 불편사항이 접수되면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엘린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점, 혹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예전보다 장애인, 그리고 근로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도 남아있다. 누군가는 근로장애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질이 떨어질 것이란 선입견을 품기도 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근로장애인분들을 볼 때 저 사람들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주는 것이다. 장애라는 것은 그 사람들이 가진 특성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부족한 부분은 비장애인 종사자들이 채워줄 수 있다. 근로장애인들이 청소한 곳을 비장애인 종사자들이 한 번 더 확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방이 더 깔끔하게 청소될 수도 있겠다고 여기고, 마음을 열어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엘린이 지향하는 점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점 아니겠나. 

엘린의 비전이 '2020년까지 한국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의 성공적인 모델 제시'다.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단, 2020년까지의 비전이라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중이다.(웃음) 운영하면서 아쉬움을 느낀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여러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선진지 견학도 자주 온다. 엘린이 어느 정도 지역사회에서 기반을 잘 잡고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로 꼽힌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관광지인 만큼 제주도에는 훌륭한 숙소가 정말 많다. 그 안에서 위생이나 친절 등의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상향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또한, 비록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제주도 관광산업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고객 유치에도 노력하고 근로장애인 고용도 유지해서 근로장애인들의 삶이 더 윤택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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