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끄랑, 제주] 아이들도 쓸 생리대, 아이들도 살아갈 지구니까
상태바
[봉끄랑, 제주] 아이들도 쓸 생리대, 아이들도 살아갈 지구니까
이경미 함께하는그날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 2020.08.04 16:12
  • by 노윤정 기자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기, 하계 휴가철이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위를 피하고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온 스스로에게 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누군가는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누군가는 낯선 도시로 향한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이들이 많다. 이에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역시 증가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관광지인 제주도를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행을 보다 의미 있게 즐기고 여행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올여름, 제주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지역, 사회와 연대하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들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라이프인은 제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회적경제조직과 소셜벤처가 운영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제주 지역 사회적경제 분야를 지원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을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봉끄랑'은 가득차다, 풍요롭다, 빵빵하다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이다.

 

▲이경미 함께하는 그날 협동조합 이사장. ⓒ라이프인
▲이경미 함께하는 그날 협동조합 이사장. ⓒ라이프인

제주시 노형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을기업 '함께하는 그날 협동조합'(이하 함께하는 그날)의 시작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깔창 생리대' 보도가 있던 해다. 당시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사지 못해 신발 깔창으로 대신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됐다.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충격과 안타까움,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40년 동안 평균 1만 4천 개.

여성 한 명이 평생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의 개수를 어림하여 계산한 숫자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당연히 생리대를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덧붙여 말하자면 국내 생리대 가격은 2019년 기준 개당 평균 331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비싸다(일본·미국 181원, 덴마크 156원).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 생리대의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이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여성의 삶과 밀접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고가인 데다가 안전성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힘들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몸에 무해한 생리대를 사용했으면.

이경미 이사장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이런 당연하고 소박한 바람 때문이었다.

■ 생협 마을모임에서 마을기업으로

▲지구별가게 내부. ⓒ라이프인
▲지구별가게 내부. ⓒ라이프인

함께하는 그날은 2016년 한라아이쿱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 마을모임에서 출발했다. 이 이사장을 비롯한 한라아이쿱생협 조합원 일부가 '깔창 생리대' 보도를 접한 후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17년 법인을 설립하고 마을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줄 면생리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단과 재봉틀이 필요했다. 즉, 자본이 필요했다. 마을기업 지원을 받으면 그래도 몇 년은 자금 걱정을 조금 덜 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라는 것이다.

의약외품인 생리대를 제조하기 위해서 의약외품 제조사 허가를 받고 브랜드 소락(SORAK)을 론칭했다. 2019년에는 아이쿱 자연드림 온·오프라인 매장에 입점하고, 제로 웨이스트 리빙랩(Zero Waste Living Lab)인 지구별가게를 오픈했다. 짧은 시간에 판로를 개척해가며 이룬 성과였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엄격한 납품 기준을 통과하고 자연드림에 입점했다. 그렇게 큰 유통망에 들어가면서 내부 체계도 더 잘 잡혔다. 그리고 최근 제로 웨이스트 숍이 증가하면서 오프라인 매장 소비도 늘어나고, 소락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서 온라인 판매 역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와입스, 파우치, 행주 등 현재 함께하는 그날에서 생산하는 품목 중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제품은 단연 면생리대다. 사람들이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성을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면생리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생리대는 일회용 생리대보다 휴대와 관리가 번거롭다는 진입 장벽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 이사장은 이러한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구별가게라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구별가게에 방문하면 제품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스포이드를 이용해 면생리대 흡수력도 확인하고 직접 세척도 해볼 수 있다"는 설명. 심리적인 거부감을 희석시켜 사람들이 편하게 면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이 이사장은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함께 해주자'는 설립 당시의 취지도 잊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함께하는 그날은 사업 초기부터 꾸준히 면생리대 나눔을 해오고 있는데, 바로 면생리대를 만들어 지역 청소년들에게 지원하는 '소녀, 별을 품다' 프로젝트다. 이 이사장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매달 100개의 면생리대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재단, 재봉 등의 작업을 함께 진행한다"고 말했다. 생리대에 사용하는 별 모양 패턴의 천에는 아이들이 '별'과 '꿈'을 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이웃, 그리고 지구와 함께 잘 사는 그날을 꿈꾸며

ⓒ라이프인
ⓒ라이프인

함께하는 그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정리해보자면 '여성, 건강, 환경,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유기농 면생리대를 통해 여성의 인권과 건강을 보호하고, 면생리대를 포함한 다회용품 제작을 통해 환경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며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이사장은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다"고 전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실직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젊은 친구들이 일할 곳이 없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일자리를 만들고, 한 사람의 인생을 유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 하루 8시간 근무한 뒤 퇴근하고 주말에는 쉬고. 평생 재봉 일을 해온 60대분이 신입으로 들어왔는데, 환할 때 퇴근하니까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한다. 여성, 청년, 그리고 시니어(Senior, 연장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친환경·유기농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함께하는 그날은 유기농 목화를 사용하여 면을 직조하고, 그렇게 짠 면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당연히 생산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면을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자연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 보고서(Cleaner, greener cotton: Impacts and better management practices)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농약의 8~10%가 목화 재배에 소비된다. 이 이사장도 목화에 대해 "그리 친환경적인 식물이 아니다. 물을 많이 빨아들이고, 농약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작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는 그날은 3년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 목화를 더더욱 고집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닌 친환경적 방식으로 기른 목화를 소비하자는 메시지와, 그렇게 해서 구매하는 사람이 증가하면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다.

더불어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된 목화를 사용하면 농약 사용에 따른 토양과 지하수 오염도 막을 수 있다. 또한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농약중독에 노출될 위험도 덜 수 있다. 유기농 면 제품이 단지 "내 아이에게만 좋아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목화를 재배하는 농부들, 그의 가족들, 그의 지역에도 이로워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유기농 제품을 소비하고 친환경을 실천하는 움직임에 동참하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 이사장은 "비누를 만드는 한 업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오는 나일론 비누망 대신 순면 비누망을 쓰고 싶다고 의뢰를 해왔다. 또, 일회용 화장솜을 사용하던 한 화장품 회사에서는 우리에게 면으로 된 다회용 화장솜을 의뢰했다"고 부연했다.

■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도록

ⓒ라이프인
ⓒ라이프인

이 이사장에게 향후 계획을 묻자 교육 사업에 힘쓸 예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조 및 판매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재의 사업 구조를 생각하면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 있으나, 이 이사장은 "처음 생각했던 비즈니스모델이 교육 사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면생리대와 유기농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친환경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삶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따라서 함께하는 그날은 청소년들을 위한 수업 구상과 함께 강사 양성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제품 개발 부분에서는 제주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천은 전부 목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식물성 섬유로도 천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아이디어다. 이 이사장은 현재 구상 중인 제품을 설명하며 "용설란에서 추출한 섬유로도 직물을 짜는 것이 가능한데, 용설란과 비슷하면서 제주 지역에서만 자라는 '신설란'이라는 식물이 있다. 신설란을 활용하여 제주의 특색을 담은 원단을 만들려고 한다. 조금 거칠지만 잘 마르는 재질이라서 수세미나 샤워타월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마을기업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는 바람도 전해왔다. "함께하는 그날은 협동조합이고 마을기업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기업'이라고 소개하면 사회적기업이 아니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사장은 마을기업을, 마을기업 역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곳임을 알리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그날과 같은 마을기업이 다른 마을, 다른 지역에도 늘어나길 소망했다.

"마을 안에 이런 사랑방 같은 곳이 있으면 좋지 않겠나. 필요할 때 와서 세제 같은 것을 나누어 가고,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가져다 두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공동 구매를 하고.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오가는 곳 말이다. 이러한 공간과 활동을 통해서 마을이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요기사
인기기사
  • (04214) 서울특별시 마포구 만리재로 15 제일빌딩 1206호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4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이영희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