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롤즈: 평화의 정치 철학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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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롤즈: 평화의 정치 철학②
2024년 희망한국 만들기 수요세미나: 자유와 공정의 사상④
  • 2024.02.06 10:00
  • by 정원섭 경남대학교 교수

(①에 이어서)

 

3. 왜 정치적 자유주의인가? - 민주적 정당성과 공적 이성

『정의론』에서 정의의 두 원칙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면서 롤즈는 두 가지 중요한 가정 위에서 출발했다. 하나는 '정의의 여건'(Circumstances of justice)이라는 발상이며 다른 하나는 '질서정연한 사회'라는 관념이다. 정의의 여건이란 데이비드 흄으로부터 원용한 것인데, 어떤 사회에서 정의를 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여건은 그 사회의 경제적 상황이 적절히 부족한 상황이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물질적 조건이다. 즉, 그 사회가 지나치게 빈곤하지도 과도하게 부유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당장 끼니조차 구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가 지나치게 빈곤할 경우, 그 사회에서 정의를 논하는 것은 사치가 되고 말 것이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온갖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사회라면 굳이 정의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가정 때문에 롤즈의 정의론은 미국이나 서유럽처럼 유복한 사회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두 번째 여건은 제한된 이기심이라는 주관적 조건이다. 만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욕심이 끝이 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이기적이라면 정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와 달리 그 사회 사람들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고려하고자 한다면, 정의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존 롤즈. 존 롤즈의 아들인 알렉 롤즈가 찍은 사진.
▲ 존 롤즈(John Rawls). 존 롤즈의 아들인 알렉 롤즈가 찍은 사진.

사실 롤즈가 이러한 두 가지 여건을 가정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론을 펴고 있는 롤즈에게 결정적 타격이 될 수는 없다. 롤즈 스스로 심각한 문제라고 여긴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정의의 원칙에 대한 합의의 가능성, 그리고 그 합의를 준수할 가능성을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것을 롤즈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정의론』에서 제시한 '질서정연한 사회'라는 발상이 비현실적이며 따라서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질서정연한 사회란 어떤 원칙이나 이론에 따라 일관성 있게 운용되는 사회를 말한다. 만일 한 사회가 공리주의에 따라 다스려지고 있다면 그 역시 질서정연한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발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을 롤즈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이 자유롭게 발휘된 어떤 사회이건 다원주의라는 것을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한 사회 내에서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경쟁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는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여러 종교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는 유교, 불교, 기독교와 같은 기성 종교뿐 아니라 여러 신생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나 진리에 대해 주장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나름대로 일리도 있지만 종교마다 서로 다른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롤즈는 이와 같이 개인의 일상적인 행동에서부터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까지 포괄하며 어느 정도 일관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는 입장을 포괄적 교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회 내에 다양한 포괄적 교설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온 것도 아니고 임의로 떠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권력은 모든 시민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그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정의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다음과 같이 재정식화한다.

"합당한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교설들로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로 구성된 정의롭고 안정적인 사회가 상당 기간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원주의를 진지하게 수용하면 수용할수록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사이에서 정의의 원칙들, 곧 공동선(Common good)을 모색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교설들을 가진 시민들은 정의관뿐 아니라 입헌적 원칙 그 자체에 대하여 당연히 매우 상이한 입장을 취할 것이고, 그 결과 그에 대한 정치적 합의는 복잡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령 입헌 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해도 그에 대한 해석 및 적용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 다원주의 사회의 내재적인 규범적 불일치는, 철학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하나의 정치 체제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 성원들 간의 정치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방해물임에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내재적인 규범적 불일치를 '합당한 다원주의의 사실'(The fact of reasonable pluralism)로 간주하여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영구적인 특징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현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합의를 모색하는 롤즈의 작업은 이처럼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적 합의와 관련된 난점들에 대처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중첩적 합의와 공적 이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 관념을 도입한다. 간단히 말해 중첩적 합의란 사회를 정초하는 정치적 합의의 원칙들이 그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합당한 포괄적 교설들로부터 중첩되는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비해 공적 이성이란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중첩적 합의는 그 사회의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성에 기초하여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하여 이성적인 시민이라면 누구나 합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중첩적 합의가 그 사회에서 서로 경쟁하는 포괄적 교설들과는 독립적으로 존립한다는 생각이다. 롤즈는 공정으로서 정의가 중첩적 합의의 초점이 되고 공적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때 다원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공정으로서 정의라는 자신의 정의관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민주주의관이 롤즈의 이런 정의관의 특성을 잘 반영하는가? 『정의론』에서 롤즈는 민주주의를 평등, 즉 정치적 자유들의 공정한 가치를 평등하게 받는 것과 거의 동일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롤즈는 정의가 심의민주주의 개념(The deliberative conception of democracy)까지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말하자면, 공적 이성을 매개로 하는 롤즈의 정의관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정치적 합의에 적극 참여할 때 국민 주권이 내실화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정치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의 공적 의지를 필수적으로 요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공적 이성을 매개로 하는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정치 공동체를 만들고 정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국민의 민주적 의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가? 롤즈가 제시하고 있는 이와 같은 유형의 정치적 자유주의 사회를 왜,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롤즈는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주 사회를 특징짓는 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협력한다는 점이며, (이상적인 경우) 시민들이 협력을 통해 성취하는 바는 정의의 원칙들을 실현하고 또한 시민들에게 시민으로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전(全)목적적 수단을 제공하는 배경적 제도들을 구비한 정의로운 기본 구조이다.

우선 민주주의에 대한 롤즈 입장의 뿌리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간의 협력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일차적으로는 자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롤즈는 자치란 관념을 사회의 정치 조직 내에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체들 간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다시 말해 롤즈에 있어서 '정치권력이란 집합적 단위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권력'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민 집단의 민주적 권력은 결국 정치권력의 행사와 연관된다.

언제 이 권력은 적절히 행사되는가? 다시 말해, 만일 이 권력의 행사가 다른 시민들에게 정당화되어야 하며 또한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합당성과 합리성을 존중해야만 한다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인 우리가 어떤 원칙과 어떤 이념에 비추어 우리의 권력 행사를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롤즈의 답은 이렇다. 정치권력의 민주주의적 행사는 첫째,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하며 둘째, 시민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원칙들에 의하여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롤즈의 설명에 따르자면 "정치권력의 행사는 정치권력이 자유롭고 평등한 모든 시민들이 그들의 공통된 인간 이성에 대해 수락 가능한 제반 원칙 및 이념에 비추어 승인할 것으로 합당하게 기대될 수 있는 헌법의 핵심 사항과 일치하여 행사될 때 정당"하다.

이렇게 볼 때 롤즈가 생각하는 이상적으로 질서정연한 사회는 첫째 다원적이며, 둘째 정의롭고, 셋째 민주주의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질서정연한 사회가 다원적인 이유는 이 사회가 다양한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교설들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사회가 정의로운 이유는 이 사회가 시민들을 그 사회의 자유롭고 평등하며 협력하는 구성원으로서 대우하는 공정으로서 정의 혹은 기타 정의관을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회가 민주주의적인 이유는 이 사회의 정치적 헌장이 공적 이성에 의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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