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행복국가를 위한 기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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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행복국가를 위한 기본 방향
  • 2024.03.23 10:00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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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DP 성장 중독과 한국의 불행 

우리는 오랫동안 성장 중독에 빠져 있었다. 경제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쳤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구매력평가 국민소득은 5만 2천 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중에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 불과하다. 이미 바라던 선진국이 다 되었다. 그런데도 행복도는 무척이나 낮다. 

아마르티아 센은 81세 때 『장남들(first boys)의 나라』라는 에세이집을 썼다. 인도는 잘 나가는 몇 사람들만 우대받고 나머지는 모두 경시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그 '장남'이 되기 위해 청소년은 학원을 전전하고, 청년들은 고시원의 어두운 동굴에서 빛을 잃어간다. 생활이 빡빡한 중년, 여생이 불안한 노년 등 전 세대에 걸쳐 불행은 사방에 퍼져있다. 뒤처진 자들의 좌절. 위로 올라가야 하는 압박. 어차피 국가와 사회가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 그 모든 것이 세계 제1의 자살률과 저출산율이라는 창피한 숫자로 나타난다. 

 

2. 각자도생의 황금만능주의 

가난해도 공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은 존경받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고 있다. 각자도생의 황금만능주의 사회에서 '공익'이란 생뚱맞은 가치에 불과하다. 출세를 위해 '애국'과 '공동체'를 떠드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묵묵히 공동체적 헌신을 실행하는 사람은 점차 줄어든다. 

이럴 때 묻게 된다. 대체 옳게 산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생각할 때 플라톤 『국가』의 도입부에 나오는 한 논쟁이 상기된다. 정의(옳은 것)에 대한 논쟁이다.

트라시마코스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주장한다. 양치기가 양떼를 보호하는 것은 자신의 생계를 위한 것이지 양떼를 위한 것은 아니다.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를 대변하는 논리다.

글라우콘은 만약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불의가 정의보다 훨씬 이익이 크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도전적으로 질문한다. "선생님! 주변에 성공했다는 정치인들을 보세요. 모두 다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미덕을 치장하지만, 뒤로는 영리하고 교활한 여우를 끌고 다니는 것 아닙니까?" 

강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내로남불의 뻔뻔함도 상관없는 것. 위선의 가면을 미덕으로 치장하는 것.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제는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을 여기서 설명할 여유는 없다. 확인하고 싶은 것은 오랜 세월 욕망을 행복으로, 위선을 행복 실현의 방법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공익'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진 사회에서의 삶의 방식은 소확행(작고 확실한 행복)에 빠지는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41년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제2권)』라는 책에서 이러한 상황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대다수의 미국인이 물질주의에 빠지고, 개개인은 단절된 자기 세계에 빠져 공공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국민 개개인은 점차 중앙정부라는 후견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한다.

그러다 사람들은 불만이 고조되면 거대한 밀물이 되어 기득권을 집어삼킨다. 그 물결이 '개혁'이 될지, '혼란'이 될지는 역사에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과도한 빈부격차, 지식인의 곡학아세, 가짜뉴스와 망국적 진영논리, 선동하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암약하는 곳에서 민주주의는 항상 실패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가장 염려했던 상황이다.

 

3. 위기는 기회다 

문제가 많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다. 그 기회를 살리면 된다. 일단 기존 모델이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은 인정하자. 

세계의 삼성으로 대표되는 거대기업들, 국민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는 거대 관료체계,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 중심의 발전, 발전의 중심에 서는 엘리트, 그 엘리트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한국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미 끝났다. 재벌이 오천만 인구의 일자리를 만들어갈 방법이 없고, 관료는 복지부동의 통제기구로 바뀌었다. 수도권 집중은 나라 전체의 활력을 잃게 하며, 엘리트 경쟁은 경쟁에서 뒤진 자들의 좌절을 통해서만 자부심을 확대한다.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다행히 선진국화된 생산력이 있다. 국가예산 640조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인적자원도 충분하다. 고령화되는 베이비부머 세대도 아직은 튼튼하고 경험과 지식도 풍부하다. 게다가 대한민국 최초의 연금세대다. 부부합산 150만 원 이상의 기초연금,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연 1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보장하는 일자리만 제공된다면 좋은 노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청년들도 우리 역사상 최고로 교육받은 세대다. 개성이 강하고 문화감수성도 아주 높다. 이들의 높은 실업률은 앞으로 활용할 자원이 그만큼 많다고 사고하면 오히려 득이다. 새롭게 경제활동의 영역으로 이들을 끌어들이면 경제적 사회적 활력은 충분히 증가한다. 

이 청년과 베비이부머의 넘치는 에너지를 어디에 투입할까? 하나의 가능성은 '지방'이다. 자산 가격이 싸며,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국공립 공유지 또한 상당히 존재한다. 이 모든 자원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이다. 

 

4. 새로운 돌파구, 지방 

1962년 필자가 태어난 해 신생아는 103만 명이었다. 그 중 91만 명이 아직 살아있다. 대부분 수도권에 살며 아파트 하나의 자산에, 여생은 30여년이다. 앞으로의 삶을 버틸 힘이 버겁다. 경쟁 사회의 압박에 지쳐 신음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들에게 지방은 새로운 가능성의 땅으로 될 수 있다. 서울보다 더 멋진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서울대 정영록 명예교수는 『핏팅 코리아』라는 책에서 공익근무자에 대한 자산·소득 보전을 주장한다. 구체적으로는 20대의 청년 세대에게 2년 정도 사회공공복무의 대가로 5천만 원의 목돈을 부여하며, 은퇴세대(55-70살)에게 5년 정도의 공공 복무 기회를 주고 월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 중요한 일자리가 지방에서 이루어진다. 연간 34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여한다면 1인당 5천만 원씩 연 17조원, 100만명의 시니어가 참여하여 월 100만원씩 받는다면 연 12조원이면 충분하다. 막대하나 국가예산 규모에서 조달 못할 돈은 아니다.

중앙·지방으로 이어지는 국가 예산의 사용방식을 크게 바꾸면 예산의 효율성은 크게 증가한다. 대강 국가 예산의 반은 지방에서 사용되며 지방예산의 40%는 중앙정부의 보조금 예산이다. 얼추 100조 이상의 돈이 그럴싸한 계획서, 화려한 피피티 경쟁으로 우열을 가린다. 허황된 계획, 형식적인 검사·감사가 난무한다. 동네 할머니 1000만 원짜리 사업에도 컨설턴트가 개입된 100-200만 원짜리 제안서가 올라온다. 같은 피피티에 마을 이름만 바뀐 제안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자기 돈이라면 그리 허투루 쓸 리가 없다.

근본적인 해법은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과감한 권력 이양밖에 없다. 이와 관련된 정부조직법의 개정, 예산계획·집행의 권한이양을 위한 (가칭)지방발전법 제정, 지방분권 개헌까지 포함하여 앞으로 점검할 미래과제는 많다. 

 

5. 자유를 위한 이념·정책·세력

우리는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왜 타인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려 하나고? 영국의 두 자유주의자, 애덤 스미스와 존 스튜어트 밀에게 물으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동감하는 마음"(스미스 '도덕감정'), "다른 사람의 행복과 자기 행복을 일치시키려는 행위"(밀 '사회성')은 인간 본성에 자리 잡은 기본 속성이다.

밀의 글 중 백미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자기만 아는 이기심과 지적 교양의 부족"이라는 표현이다. 어떻게 아냐고? 밀은 논증 방식은 명확하다. 양쪽 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무식한 사람보다 지혜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더욱 행복하다. 우리는 오로지 자신만 아는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누군가 소시오패스가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논외다. 

정리해보자. 어떠한 사회와 사람이 행복할까? 우리를 옥죄고 있는 각종 부자유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 그 자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제, 약자 배려의 평등, 시민적 책임, 시장·정부·시민사회의 혁신, 자연과 생명과 조화가 필요하다. 장애인·청년백수·고령자·경력단절여성 모두 주거·노동·생활의 기본권리를 향유하는 사회가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지적 스승과 동료 학자들에게서 증명되고 있는 바다. 현대의 행복경제학·실험경제학의 연구 성과다.

문제는 가고자 하는 목표가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급함에 개혁가들은 과격한 수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세상은 한꺼번에 변하지 않고, 또한 변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옳은 것도 정면 돌파만을 고집해서는 실현되지 않는다. 그게 인간사회의 묘미다. 그래서 인간사 최악의 무질서는 언제나 이런 조급한 확신범에 의해 생겨난다. 확신을 안 가지려 노력하는 확신. 그것이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자들의 기본 덕목이다.

세상을 바꾸기에 필요한 것은 명확한 이념(활동방향), 정책(실현방법), 세력(함께할 동지)이다. 어떻게 마련할까? 일상생활에서 유쾌하게, 조금씩, 꾸준히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수요세미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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