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름다운 청년 '태일이'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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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름다운 청년 '태일이' 기억하세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인터뷰
  • 2019.02.13 18:45
  • by 공정경 기자

한국 사회가 다시 전태일을 부르고 있다. 전태일을 처음 널리 알린 매체는 책이었다. 1978년 일본에서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판됐고, 한국에서는 1983년 6월에야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 전태일 평전'(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 돌베개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이 책은 군사독재의 탄압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고, 원고 내용도 상당히 수정됐다.

1991년 개정판을 내면서 비로소 '전태일 평전'이라 곧게 부를 수 있었고, 내용도 원고대로 출판할 수 있었다. 추측과 풍문으로 떠돌던 저자도 '조영래 지음'라고 정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저자 조영래 변호사는 민청학련 사건 이후 수배상태에서 3년여에 걸쳐 전태일의 수기·일기,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함께 활동한 노동자들을 만나며 혼신의 노력 끝에 전태일 평전을 완성했다. 그 후 전태일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최호철 작가의 만화 '태일이'(2007~2009) 등으로 다뤄졌다.

2019년 지금 한국 사회가 다시 전태일을 부른다. 지금까지와 달리 이번엔 애니메이션이다.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 11월 13일 개봉을 목표로 명필름과 전태일재단이 공동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제작발표회 이후 제작비 마련을 위한 범국민 모금 운동도 2월 19일까지 진행한다. 1만원 이상 기부자들의 이름은 영화 엔딩크레딧에 올라간다. 

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생전에 전태일 평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태일 평전은 우리가 전태일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지시한다. 우리는 그의 죽음보다 그의 삶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의 삶 속에 점철되어 있는 고뇌와 사랑을 읽어야 한다."

전태일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22살에 불꽃이 된 투사이지만, 그 이전에 지극히 인간을 사랑한 오빠이자 형, 친구였다.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은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통해 전태일의 '마음'과 '꿈'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라이프인과 만난 전태일재단 이수호 이사장은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통해서 무엇보다 '전태일의 마음'과 '전태일의 꿈'을 봤으면 좋겠다. 애니메이션은 세대 구분 없이 다 좋아하고 일반영화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영상미를 구현할 수 있는 장르이다. 청년, 청소년, 초등학생들이 전태일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형식"이라고 말했다. 열사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이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마당을 나온 암닭' 제작진과 함께 하기에 오히려 더 친근하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 나올 거라 기대했다.

전태일은 왜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불려 나올까?

"불려 나올 수밖에 없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전태일 시대의 질곡과 고통이 존재한다. 젊은 청년들의 고통,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태도, 메말라버린 인간성, 불평등... 우리의 삶, 구체적인 노동과 생활에서의 고통, 그 고통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를 따듯하게 격려해주는 인물이 별로 없다. 전태일은 어린 시절부터 온갖 가난과 시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항상 따뜻하고 남다른 사랑으로 인간을 대하였다. 민족의 혼을 일으킬 때는 흔히 유관순, 김구 같은 인물들을 불러오지만, 구체적인 삶에서 끝까지 지고지순한 인간미로 빛이 되는 인물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_ 전태일의 수기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린 나이에 신문과 구두통을 들고 온종일 돌아다녀도 며칠씩 굶는 일이 전태일의 일상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 화형식 날,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온몸을 불사른 전태일이 혼수상태에서 잠깐 깨어나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배가 고프다..."였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굶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보지 못했지만,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의 참담한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늦은 시간 여공들의 야간 업무를 대신 해주고 작업환경과 고된 노동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환에 대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기업주에게 대신 요청했다. 점심도 쫄쫄 굶는 여공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는 자신은 두세 시간씩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고,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도 허다했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과 동갑내기이고 고향도 같다. 이수호 이사장이 처음 전태일을 만난 시점은 교사로 부임한 후 교육운동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누군가 '전태일 평전'을 건네줬다. 한번 잡은 책은 도저히 놓을 수 없었다. 같은 시대, 같은 고향에서 자랐지만 둘의 삶은 같지 않았다.

"나도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살았지만 그래도 학교공부는 다 마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집안 형편상 학생운동이나 사회에 큰 관심을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다. 소시민으로 지냈다. 교사로 부임하고 나서 학교 현장에서의 여러 가지 모순, 국가의 폐해,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교사 개인이 아무리 충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쳐도 제대로 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 초반에 YMCA 우산 아래에 숨어서 교사회를 만들고 교육운동을 시작했다. 사회의식에 눈 떠갈 때 우연히 전태일 평전을 만났다. 밤을 새워가며 뜨겁게 읽었다."

"전태일의 삶이 내 삶과 등치 됐다. 태일이는 10살 때 이렇게 살았고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평화시장에서 이렇게 살았고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이렇게 살았고...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태일이는 이렇게 살았는데. 태일이는 22살이라는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는데...그러면서 일종의 사회적 채무를 태일이에게 느꼈다. 최소한의 양심, 부름에 답하면서 교육운동을 했고 자연스럽게 노동운동, 진보정치운동을 하게 됐다. 강력한 계기를 마련해준 전태일 평전이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상황에 봉착했을 때 '태일이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했지?'라고 물으며 들춰본다."

"태일이는 진짜 노동자였다. 누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노동의 의미와 그 본래적 가치를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전태일은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이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에는 노동자의 숨은 희생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자본가와 대등한 관계로서 노동자의 지위와 역할을 당당하게 외쳤다.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지 남 좋은 일만 시켜주고 제 한 몸은 죽어가고 싶어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학력이었지만 한자투성이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책장이 헤지도록 공부하고 노동조합을 스스로 만들고 책임졌다." 

평화시장 다락방 작업장의 모습. 한 층을 상하로 나누어 이 층으로 만들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장면.

전태일의 삶은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철저하게 버림받은 삶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하면 가족들 밥이라도 먹일까 싶어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주린 창자를 채우기는 어려웠다. 동생이라도 책임지기 위해 어린 동생과 서울에 올라왔지만 끼니는커녕 차가운 길거리에서 잠들어야 했다. 입던 바지를 팔아가며 지독히도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그 바람은 이룰 수 없었다. 비참한 여공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어 재단사가 됐지만, 여공들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결국 쫓겨났다. 혼자의 힘으로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다고 깨달아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를 조직했지만 다 흩어졌다. 노동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빛과 같은 근로기준법을 발견했지만 노동청은 움직이지 않았다.

"태일이가 하려는 일은 대부분 실패했다. 평화시장에서 한번 패배하고 쫓겨났으면 다시는 보기 싫고 용기도 안 나고 그냥 나만 잘 살자 할 텐데, 태일이는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 여러 가지를 새롭게 판단하고 결심을 굳히고 다시 또 일어섰다. 평화시장에 또 찾아가서 삼동회를 만들고 기업주 몰래 실태조사를 하고, 언론사에 찾아가 이 비참한 노동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노동청과 서울시청에 찾아가 평화시장을 근로기준법대로 개선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하다 하다 안 되니까 대통령에게 14~15살 어린 시다공들이 1주 98시간의 고된 작업과 온갖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으니 작업 시간을 1일 10~12시간으로 단축해주고, 매주 일요일 휴무, 제대로 된 건강검진, 시다공의 수당을 인상해달라는 편지를 쓴다. 편지 마지막에 보면 '이 요구는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라고 썼다."

이수호 이사장이 전태일 기념관의 기념품을 보여주고 있다. 가방에는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가 쓰여 있다.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전태일 친필 편지


1970년 3월 전태일은 본격적으로 모범기업체 설립을 구상한다. 

목적

정당한 세금을 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 계통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조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들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 

나는 이 사업을 위하여 보잘 것없는, 물질적으로 본다면 1달러의 값도 없는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칠 것이다. 

대학노트 30페이지 분량의 사업계획서는 매우 구체적이다. 사업방침, 필요한 설비 비품의 숫자와 가격, 필요한 인원과 인건비, 예상 수입과 지출 내역, 생산할 제품의 종류와 판매방법, 소비시장 45개를 일일이 조사한 서울특별시 시장조사도, 직공들의 교육, 오락 시설과 처우 문제, 자금 확보 방법까지 구상했다. 설립 목적에서도 볼 수 있듯, 전태일은 자본가들이 갖는 과도한 돈에 대한 욕심을 줄이고 지금 있는 법만 따르더라도,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모범기업을 꿈꾸면서 자본금 3000만원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한쪽 눈까지 기증하려 했지만 결국 모두가 허사였다. 

1970년 8월 9일 전태일은 마침내 하나의 결단을 내렸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태일이를 폄훼하려는 일부 사람들은 전태일은 충동적인 사람이다, 하다가 잘 안 되니까 분에 못 이겨 그렇게 행동했다고 하는데, 일기를 보면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게 반증 된다. 수개월 전부터 고민했고 결심을 굳혀갔다. 태일이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허리도 펼 수 없는 좁고 어두운 작업장에서 각혈까지 토하면서 일하지만 결국 쫓겨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수많은 여공을 모른 체하지 못했다. 태일이는 인간을 물질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는 세상, 차별과 가난 없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꿨다. 우리가 태일이처럼 살기는 어렵지만, 전태일을 알고 전태일을 생각하면 100만큼 지저분해질 나를 80만큼만 지저분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 범국민 모금 운동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2020년, 50주기를 맞아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로 다시 태어납니다.
2020년 대한민국을 바꿀 희망의 불꽃 <태일이>의 첫걸음에 함께 해주세요.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를 함께 만들어 주신 소중한 기부자님들을 영화 엔딩크레딧을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 카카오같이가치 크라우드 펀딩

- 1차 모금 기간 : 2019년 2월 19일까지

참여방법 : PC 또는 모바일을 통해 카카오같이가치 사이트(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9548/stor)에 접속 후 '같이기부' → '모금중' 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 크라우드 펀딩 선택

■ 직접후원 

- 모금 기간 : 2020년 개봉 시까지

- 계좌번호 : 국민은행 807501-04-236126 (전태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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