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전태일의 손을 잡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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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전태일의 손을 잡아 달라
한석호 (사회적경제와 노동의 접목을 꿈꾸는 노동운동가)
  • 2018.12.26 10:58
  • by 한석호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정권과 투쟁하던 시절이었다. 고문과 구속을 피할 수 없는 시대였다. 전태일을 푯대 삼아 언제든 전태일처럼 죽겠다고 결심했다. 당시에 읽었던 전태일정신은 결단과 희생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전태일의 결단과 희생은 운동의 시대정신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흐르던 어느 날 전태일을 다시 펼쳤다. 또 눈물이 났다. 그런데 눈물의 성분이 바뀌어 있었다. 전태일을 처음 접했을 때의 눈물은 열사의 죽음에 대한 눈물이었는데, 다시 읽을 때는 스물 둘 청년의 삶에 대한 눈물이었다. 살고 싶었을 텐데…. 스스로 불붙이고 뛰쳐나가는 순간에도 무척 살고 싶었을 텐데…. 그 청년이 품었을 간절함이 사무쳐 처음의 눈물보다 더 많이 흘렀던 것 같다. 그 눈물은 지금도 마르지 않고 있다. 아마 목숨 끊어지는 날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 뒤로도 전태일을 펼칠 기회가 계속 있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펼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였다. 열 살 갓 넘은 나이에 하루 14시간 장시간 노동에 수돗물로 허기를 때우는 어린 시다들이 못내 안타까워 자신의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흐뭇해하는 열아홉 무렵의 청년이 보였다. 차비를 그렇게 쓴 뒤에 자신 또한 장시간 노동에 지친 몸으로 평화시장에서 창동까지 무려 3시간 거리를 걷고 뛰고 헉헉대며 퇴근하는 한 청년, 그러다 야간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자는 한 청년이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전태일은 도대체 뭐지….

최근에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그때 사회연대경제운동이 있었다면, 아마 전태일은 죽지 않을 수도 있었겠구나.

1968년 12월, 스무 살 전태일은 모범기업체를 구상했다. 시다‧미싱사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정당한 세금을 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도, 제품계통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경제인에게 입증시키고, 사회의 여러 악조건 속에 무성의하게 방치된 어린 동심들을 하루 한시라도 빨리 구출하자는 목적이었다. 지방 출신을 위한 단체 기숙사생활 제도로써 단체생활의 이점을 살려 협력정신을 기른다는 세부 방안도 있었다. 이듬해 4월부터 본격 추진했다. 그러나 자본금 3천만 원을 구할 수 없었다. 모범업체를 시도한 지 1년 되는 1970년 3월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학력이 없으므로 대학 동창이 없다. 또한 집안 친척들 중에도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댈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나의 가진 것 중에서 사회에 내놓을 것이라고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 즉 한쪽 눈을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눈을 사회에 봉사하고 나는 사회로부터 자금주를 소개받을 것이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사업을 꼭 이루고야 말 결심 아래 행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실제로 전태일은 중앙일보 사회면의 어떤 실명자 기사를 보고 편지를 보냈다. 자기 눈을 각막이식 수술용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의였다. 어떤 이유인지 편지는 겉봉에 노란 반송딱지가 붙어 되돌아왔다.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13일, 전태일은 불꽃이 되어 산화했다.

이미 이삼십 년의 경험이 축적된 지금의 사회연대경제 측면에서 볼 때, 전태일의 모범업체 구상은 초보적인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1968년이었고, 스무 살이었다.

전태일의 모범업체 구상으로부터 50년이 흘렀다. 그 전태일이 산화한 지 곧 50년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분명 대한민국은 달라졌다. 그러나 그 속의 숱한 삶은 여전하게 한숨이다. 전태일이 온몸 던져 손잡은 밑바닥 노동자 처지도 모범업체 꿈도 꽃피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외침도 여전하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태일을 움켜쥐어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좀 더 인간다운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곧 전태일 50주기다. 사회 곳곳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태일을 호명할 것이다. 누구는 결단정신을, 누구는 풀빵정신을, 누구는 모범업체정신을 불러낼 것이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을 되살리는 방안의 하나로, 전태일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려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명필름 영화사와 공동으로 제작한다. 고맙고 아름다운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잘 표현하면서도 각계각층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 50주기인 2020년에 전국 극장에 걸릴 것이다. 1천만 관람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극장 상영에 따른 수익이 남으면, 전태일재단은 풀빵기금으로 적립할 것이다. 노동자와 서민의 처우를 개선하는 기금으로 사용하고, 또 다양한 사회운동의 지원에 사용하려 한다.

범국민 모금운동으로 제작하려 한다. 제작비로 1만원 이상 참여하면 영화 자막에 이름 올라가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감히 요청한다. 불에 탄 전태일의 손을 잡아 달라고. 그렇게 전태일을 불러내서 전태일의 꿈이 실현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보자고.

애니메이션 <태일이> 제작비 모금운동
<카카오같이가치>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59548/story
<은행모금계좌> 국민은행 807501-04-236126 재단법인전태일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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