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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신년칼럼] 전태일과 김용균[라이프인ㆍ생명안전 시민넷 공동기획_안전칼럼] 김 훈 (작가, 생명안전 시민넷 공동대표, 서울소방재난본부 명예소방관)

 

2018년 연말에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전태일 재단)을 다시 읽는 일은 슬프고 부끄럽다. 전태일은 1948년 생으로 나와 동갑이고,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는 1947년생이다. 전태일은 스물두 살에 조영래는 마흔세 살에 세상을 떠났고, 나는 일흔 한살이 되도록 살아있다.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구 평화시장 앞거리에서 피복 노동자 동료들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해서 숨졌다. 몸에서 불꽃과 연기가 치솟을 때 그는 외쳤다. 그의 외침은 다음과 같다.

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②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2018년의 한국사회는 전태일의 ①번 외침을 배반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말은 그 법을 시행하고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정부관계자의 행정명령이라야 마땅한데, 야만적 노동조건에 항거해서 몸을 불사르는 젊은 노동자의 마지막 절규가 되었다. 장관이 해야 할 말을 분신하는 노동자가 외쳤다. 전태일은 '법을 때려 부수라'면서 죽은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라'면서 죽었다. 그는 근로기준법이 적힌 법전(法典)을 품에 안고 법전과 제 몸을 동시에 불 질렀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절박하고 성실하게 준비해 왔다.
 


2018년 연말에, 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 김용균이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갈려서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다. 작업장은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았고 2인 1조의 근무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사고 당일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늘 그래왔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에도 거듭되는 산업재해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대부분은 안전 법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 법규를 무시하면 기업에게 큰 이익이 돌아온다.

반세기 전에 죽은 전태일의 혼백은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평화시장 앞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전태일은 스물두 살에 죽었고 김용균은 스물네 살에 죽었다.

한국사회는 전태일의 ②번째 외침을 배반했다. 산업현장에서 죽고 다치고 골병드는 일은 일상화되었다. 죽거나 다치면 돈을 좀 주고, 골병이 들면 작업과 관련 없는 질환이라고 뭉개버렸다. 일류대학 나오고 외국 유학 다녀온 의사, 변호사, 박사, 교수들이 회사 쪽에 고용되어서 골병과 작업의 '관계없음'을 증명했다. 골병든 사람들의 골병은 아프기만 했을 뿐 증명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노동 현장의 골병은 더 깊어져 갔다. 사람이 죽어야 잠깐 정신이 드는지, 장관 차관들이 희생자들의 빈소에 문상 와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사태는 흐지부지되었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

돈 없고 학력 없고 연줄 없는 사람들, 싼 임금에서도 별수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별도의 조직으로 묶어서 회사의 책임 구역 밖으로 내보내고, 위험하고 더럽고 골병드는 작업을 이들에게 모두 떠넘겼다. 그리고 이 떠넘기기를 경영의 합리화, 기업 경쟁력 강화, 민영화, 위험의 전문화라고 하더니 요즘엔 일자리 창출이라고도 말한다. 죽음에 죽음을 잇대면서 전태일 이후 반세기 동안 수많은 죽음이 헛되이 흘러갔으니, 더 많은 죽음이 예비되어 있으리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전태일의 혼백은 지금도 평화시장 앞거리에서 불타고 있다. 그 혼백이 2018년 연말의 추운 거리에서 외친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2018년 연말에 <산업안전 보건법>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김용균의 참혹한 죽음과 들끓는 여론이 여야 합의를 도출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청와대 고위 보좌진을 국회운영위로 불러내려는 야당의 요구를 정부여당이 수용하는 조건으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개정된 법안을 놓고, 핵심 부분이 빠져있기는 하지만 노동 현장의 안전에 어느 정도 기여하리라는 기대도 있었고, 기업 경영을 마비시키는 반기업적 악법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정부에서 법안이 넘어와도 쳐다보지도 않던 국회는 사람이 죽고 여론이 악화되자 비로소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 법안을 노동안전과는 사소한 관계도 없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흥정의 미끼로 삼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조차도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방망이를 세 번 두드려서 법조문을 확정한다고 해서 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법은 시행된 내용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전태일의 평화시장에서도 법이 없어서 참사가 벌어진 것이 아니다.

이윤은 나에게 불이익은 너에게, 안전은 나에게 죽음은 너에게, 건강은 나에게 골병은 너에게. 죽음, 위험, 골병은 따로 모아서 남에게.

이것은 생산력 강화가 아니고 경영합리화가 아니고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이것은 약육강식이다. 이 약육강식은 경영이론으로 합리화되고 계약으로 합법화되고 정책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이 약육강식에 이론적, 사상적 정당성의 토대를 제공하는 담론들은 대체로 강식(强食)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약육(弱肉)에는 관심없다. 강(强)이 더 많이 먹어야 그 남긴 부스러기가 약(弱)에게 떨어진다는 학설도 많은 '좋아요'를 거느리고 있다.

나는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갑질처럼 슬픈 단어들이 이 세상의 표면에 떠올라있는 사태를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 단어들은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서 사람들의 인식을 일깨우고, 그 사태에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절망을 절규하고 있다.

전태일은 야만적 시대의 폭압에 짓밟히면서 자신의 사상과 행동을 완성했다. 전태일의 일기는 이론이 아니고 학설이 아니다. 그의 글은 분석되거나 비평되지 않는다. 그의 글에는 각주가 필요 없고 덧붙일 군말이 필요 없다. 그의 글은 목숨이고 생활이다. 몇 줄 옮겨 적는다.

-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1969년 12월 31일의 일기에서 (전태일 평전 207쪽)

-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
무엇을 … 제품 계통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일
누구와 … 제품 계통에 종사하는 어린 기능공들과
언제 … 1970년 음력 6월 달 이전에
어디서 … 서울 평화시장에서
1970년 3월의 일기 (전태일 평전 221쪽)

김 훈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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