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오딧세이를 시작하며] 사회적경제인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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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오딧세이를 시작하며] 사회적경제인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 2022.01.10 08:00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11:56
▲ A room bathed in Very Peri. ⓒCOURTESY PANTONE AND ARTECHOUSE
▲ A room bathed in Very Peri. ⓒCOURTESY PANTONE AND ARTECHOUSE

■ 굳은 신념을 위해 필요한 것

우리는 사회적경제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한다. 이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사회적경제에서 일하는 경제적 보상은 대부분 일반 영리기업보다 낮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은 만큼 마음의 상처를 받을 가능성 또한 크다. 그래도 많은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꿈을 꾸고 좌절하고 다시 도전한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게 하는가? 무엇이 이들의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이게 하는가?

플라톤(기원전 427-347)의 명저, 『국가』의 제1권 후반부와 제2권에는 '정의'(옳은 것)와 관련해서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와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 그리고 플라톤의 형인 글라우콘의 대화가 나온다. 트라시마코스는 세상에 정의란 없다고 말한다. 굳이 있다면 강한 자들이 맘대로 하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순진한 소크라테스 선생! 대규모로 훔치고 강탈하는 권력자들은 행복하고 축복받았다고 불리는 것을 보세요. 불의란 대규모로 저질러진다면 정의보다 더 강력하고 더 자유로우며 더 주인다운 것 아닙니까?

글라우콘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에게 '정의롭다고' 보이면 그만이지 진정으로 '정의로울'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에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귀게스(Gyges)의 절대반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 정의로운 일을 할까요? 그래서 소위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미덕의 환영'을 내걸고, 뒤로는 "영리하고 교활한 여우를 끌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책 전체(10권)로 길게 이어진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옳은 일을 실천하며 인간의 이성을 갈고닦아야 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순수한 본질의 세계(이데아)를 체득한 철학자만이 세상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며, 겉으로가 아니라 내면의 구석까지 정의로워야 자신도 세상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트라시마코스나 글라우콘과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한때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던 사람들도 그 푸르른 결기를 잃어버린다. 생활의 방편으로서만 '활동'을 이어가는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이럴 때 우리는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많은 인류의 스승들에게 삶의 방향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때 들려주는 대부분의 대답은 한결같다. 진심을 다해 사람을 대하라. 조금이라도 세상이 좋아지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행동하라. 그것만이 세상도 너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길이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란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수많은 노력이 모여 흘러가는 거대한 강과 같다. 여기저기 탁류가 몰려와 그 강물의 일부가 더럽혀질지라도 그래도 주변의 메마른 땅을 적셔가며 도도히 흐르는 정의(正義)의 강은 막을 수 없다. 그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것, 수많은 선배 선현들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활동가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많은 사상의 스승들은 알려준다.

■ 사회적경제 :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책임의 중시

우리가 사회적경제를 하려는 이유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고,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왜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조직해야 하는가? 정부에 맡기면 안 되는가?

많은 오만한 지식인들은 세상을 거대한 방정식인 양 착각하며, 정책과 법률의 개혁을 통해 세상이 금방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정치를 통한 개혁을 중요시하고, 정치인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며, 그것이 해소되지 못한다고 정치의 세계를 혐오하기도 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세상의 개혁이란 대부분 법과 제도를 바꾸어 가는 과정이며, 그것은 대개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오해하면 곤란하다. 법과 제도의 개혁이란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 시켜 갈 때 그 의미가 있다.

예컨대 복지를 생각해보자. 빈민문제의 해결은 빈민들 자신이다. 정부와 사회는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며, 그들을 복지 의존적인 '거지'로 만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 담당자는 빈민에 대한 물량공세, 예산살포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듯 흥분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찰해보면 문제의 본질이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이 회복해야 할 것은 '경제적 물품'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경제는 "나와 내 주변의 문제를 시민들 스스로 풀어가는 것"을 강조한다. 그 속에서 배양되는 사람으로서의 건강한 자부심에 주목한다. 1995년 9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영국 맨체스터)에서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대한 성명"을 채택했다. 이때 발표된 협동조합의 가치가 바로 "자조, 자기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이다. 협동조합에서 '연대'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조'와 '자기책임'이 먼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타인과 함께 노력하는 것, 그러면서도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와 책임을 중요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가치이다.
 

▲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 사회적경제 : 경제민주주의의 중요한 축

사회적경제는 또한 경제민주주의 실현의 중요한 축이다. 만약에 민주주의를 "민중(demos)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라고 한다면, 경제민주주의란 "특권층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우대받는" 경제로 필자는 이해한다.

협동조합의 예를 들어보면, 생산자조합, 소비자조합, 근로자조합 모두 보통의 생산자, 소비자, 근로자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경제는 근로자 생활의 안정화, 중소기업, 자영업자의 발전 등과 함께 경제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가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경제조직 자체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대로 실천하기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경제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은 일반 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보다 더 어렵다.

일반 주식회사는 자신이 투자한 만큼 자신의 권한도 강해진다. 이것이 효율적인 기업체로서의 강한 책임성과 기민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경제조직은 주식회사 형태를 가진다. 그런데 사회적경제란 경제조직인데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려 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시간이 들며, 급속한 경제 환경 변화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자금조달도 문제다. 협동조합의 출자금은 법리상 '자본'이라기보다 '차입금'에 가까우며, 안정된 자금 확보가 어렵다. 명확한 주인이 없기 때문에 직원의 관료주의와 경영자의 무능함이 팽배할 수도 있다.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치열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더해질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바로 조합원들에게 있다. 민주주의 성공의 기반이 개개 국민의 참여이듯, 협동조합 성공의 기반은 책임지는 조합원의 존재인 것이다. 『맹자』의 양혜왕(하)에는 '천하와 함께' 즐기는 이야기가 나온다(여민동락, 與民同樂). 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조합원이 책임지고 조직을 운영하는 것, 서로가 같이 즐기고 조직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 즉 '여조합원동락(與組合員同樂)'이야말로 협동조합 경쟁력의 근간이다.

■ 사회적경제 : 현실의 끈을 잡고 이상을 향하여

사회적경제는 경제조직이다. 참가자에게 구체적인 이득이 주어야만 유지 가능하다. 예의염치도 곡간에서 나온다는 동서고금의 격언을 무시한다면 그 어떠한 경제조직도 지속될 방법이 없다. 그동안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협동공동체가 있었다. 그런데 1844년 영국 로치데일의 토드레인 가(두꺼비 거리)의 허름한 건물 1층을 빌려 마련한 소박한 매장을 협동조합의 발생지로 말하는 이유는, 그 조직이 '조합원의 이득'이라는 현실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한 몸 잘살자고 우리가 사회적경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보다는 좀 더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로치데일의 선구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명한 알렉산더 레이들로 박사(1908-1980)는 돌아가시기 직전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 『21세기 협동조합』의 제5장에서 우리는 협동조합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별 협동조합 단독으로는 주류 경제 시스템과 사회 질서에 실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에 속한 조직 모두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 또한 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협동조합 몇 개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협동조합의 '창세기'와 그 역사는 28명의 로치데일의 직공을 포함한 수많은 선배활동가들이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 마지막 '묵시록'은 협동조합이 꿈꾸던 원래의 목표, 즉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역과 사회를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목표를 향해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은 우리에게 제기된 엄중한 질문이며, 이번 고전여행을 통해 탐구해야 할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 로치데일 선구자들. ⓒ영국협동조합연합회
▲ 로치데일 선구자들. ⓒ영국협동조합연합회

■ 독서 오딧세이를 떠나며

대체 우리는 왜 사회를 바꾸려 노력할까? 필자는 한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어가는 삶의 즐거움이다. 세상의 빚을 갚고 있다는 안도감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은 2500년 전의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논어(論語)의 키워드 중 하나는 즐거움(樂)이다. 논어 첫 구절에도 세상을 좋게 만들려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즐거움이 기록되어 있다.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즐거움, 같은 뜻을 품은 동지가 멀리서 찾아와 서로 격려해주는 즐거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꿋꿋이 그 신념을 지켜나가는 자부심. 이것은 우리의 사회적경제 선배들이 걸어왔던 길과 큰 차이가 없다. 논어의 또 다른 키워드 중 하나는 배움(學)이다. 배움을 통해 확신을 얻고, 배움의 통해 행동의 지침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짊(仁)을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어리석어지고(愚), 지혜를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허황되며(蕩), 신의를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남을 해치고(賊), 정직을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각박하게 되고(絞), 용맹을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난폭하게 되며(亂), 강함을 좋아한다면서 호학하지 아니하면 광기(狂)에 빠지는 것이다."(논어, 양화편:8)

필자는 진심을 다한 활동가들의 공부만이 세상의 개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공부란 단순한 실무적 지식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활동이 인간사 전체와 자신 삶에 가지는 의미를 성찰하고, 그것을 굳건한 신념으로 바꾸지 않는 한, 사회변혁의 험난한 길을 계속 걸어갈 방법이 없다.

우리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판은 인류역사의 도서관에 꽉 차 있다. 이번 오딧세이의 여정 속에 공자, 맹자로부터 한국의 장일순 선생까지, 소크라테스, 플라톤으로부터 존 롤스와 아마르티아 센까지 다양한 스승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필자 또한 그 과정에서 한층 성숙해질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공부의 과정은 단순히 아는 척하기 위한 '화장술'이 아니다. 사회개혁의 성공을 진실로 바라는 사람들의 절실함의 반영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류의 지적 선배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 역사와 현실로부터 치열하게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 현실의 번잡함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기만의 생각의 안식처를 가지지 못한 사람, 즉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개혁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공부야말로 개혁가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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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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