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의 가능성 ③] 스스로를 돕는 "동행·풀빵·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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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의 가능성 ③] 스스로를 돕는 "동행·풀빵·밴드"
  • 2021.08.27 20:16
  • by 송소연 기자
07:15

공제(控除)는 항목에서 차감한다는 뜻이다. 공제(共濟)는 협동조합방식의 보험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협법에서 공제(共濟)가 공제(控除)된 듯 추진되지 않고 있다.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생협은 공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지만,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격적으로 공제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라이프인은 생협 3.0시대가 오기를 희망하며 복지 사각지대의 사회안전망을 만들고,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확장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공제(共濟)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각자도생의 시대가 끝났다. 최근 높아진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사회문제를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의 성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제를 풀기 위해 신뢰, 협력, 상부상조하는 인간관계와 같은 사회자본은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공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제는 얼핏 보면 보험과 비슷해 보이는 개념이지만, 관계를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조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제의 기본이 되는 상호부조는 서로를 돕는 '행위'와 그 행위가 가능하도록 성립되는 '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공제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자본을 바탕으로 가장 약한 점을 연결해 복지 사각지대를 촘촘한 안전망을 만든다.

동료의 삶을 마주 보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야근을 하던 한 활동가가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지만, 모아둔 돈도, 개인보험과 4대 보험도 없었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가 떠났지만, 유족이 살아갈 기반이 없었다. 이후 시민사회는 활동가 안전망 부재에 대한 본격적인 해결책 마련하기 위한 공제회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2013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을 만들었다.

동행은 공익활동가의 경제·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통해 활동가의 품위를 지키고,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활동가 스스로 서로 돕고 지원하며 연대하는 조직으로 어려울 때를 대비해 함께 돈을 모은다. 

▲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저임과 과로에 시달리는 공익활동가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은 저임과 과로에 시달리는 공익활동가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동행에 매달 회비를 낸다면 어디선가 활동하는 공익활동가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활동가들이 스스로 조성한 기금은 목돈이 없는 공익활동가들이 갑작스러운 병이나 경조사 등으로 긴급생활자금이 필요할 때, 고강도 업무로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도록 자기 계발과 휴식을 위한 경비로 지원된다. 그리고 활동가란 이유만으로 대출해준다. 매달 상환하는 돈은 다른 활동가에게 재대출해 서로를 지원하는 상생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2017년에는 상호부조 사업도 시작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활동가에게 3천만 원의 상호부조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공익활동가의 비빌 언덕을 만들어온 동행은 2021년 현재 2,1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가입하고, 의료, 교육, 생활안전 등에 약 800명의 활동가에게 22억 원을 지원했다.

▲ '힘내라 활동가 응원사업'의 영화티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 '힘내라 활동가 응원사업'의 영화티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노동자의 좋은 삶을 위해 연대 ‘노동공제연합 풀빵(Poolbbang)’

우리나라 노동자 2,000만 명 중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500만 명이다. 큰 사업장의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단체협약, 고용보장, 노동조건 개선, 사내 복지 개선을 위해 투쟁하지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투쟁하더라도 개선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30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1,100만 명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0.1% 정도이다. 최근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등 불안정고용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노동공제연합 풀빵(Poolbbang Workers Mutual)은 노동시장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모델로 연대를 바탕으로 사각지대 노동자의 필요를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특히, 산발적이고 소규모로 진행되어 시도되어 온 노동공제를 뛰어넘어 실효성 있는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목표로 현재 노동자를 위해 공제사업을 운영하는 곳 등 15개 기관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풀빵은 회원기관 조합원들의 부금 적립을 지원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풀장 1호 적립형 공제'는 휴직·퇴직·질병·사고 등으로 소득이 단절되는 시기에 대비하는 '목돈 마련' 공제로 소득의 일정액을 꾸준히 적립하면, 만기 시 누적 적립액에 더해 약간의 응원금을 지원한다. 풀빵의 '풀장'은 모든 노동자의 좋은 삶을 위해 연대로 만들어 가는 '사회안전망'이다. 풀빵은 '풀장 2호 상호부조공제' '풀장 3호 건강공제' 등을 준비 중이며, 회원기관들은 협력하여 '풀장'을 넓게 펼쳐갈 계획이다.

▲ 2021년 5월 진행된 노동공제연합 풀빵의 창립보고대회 장면. ⓒ노동공제연합 풀빵
▲ 2021년 5월 진행된 노동공제연합 풀빵의 창립보고대회 장면. ⓒ노동공제연합 풀빵

공제의 특별한 점은 스스로를 돕는다는 것 '재단법인 밴드'

2015년 발족한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공제사업단은 사업 자금을 마련하느라 발을 동동 구른 경험이 있었던 1세대 사회적기업가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기업과 종사자들은 스스로 부금을 납부해 재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기금은 사회적기업과 종사자의 튼튼한 생활 안전망이 되어 주고, 소규모 사회적 기업이 외부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이후 공제사업단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2019년 재단법인 밴드로 설립되었으며, 사회적 경제 생태계에 필요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동두천금강택시협동조합은 동두천시에서 운영하던 택시회사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자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생 회사라 기존 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막막한 상황에서 사회적경제공제기금이 있다는 것 알게 되었고, 대출을 신청했다. 다행히 대출이 승인되어 초기 운영비로 쓸 수 있었고, 금강택시쿱을 있게 한 중요한 초석이 됐다. 

해빗투게더 협동조합의 경우 3년 넘는 끈질긴 노력 끝에 2020년 11월 말 마포구 성산동에 '모두의 놀이터'물건 매입과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했다. 206명 21단체 조합원, 시민건물주가 함께 지역자산화, 시민자산화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당시 자금을 융통하는 과정에서 재단법인 밴드의 사회적경제공제기금은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밴드는 코로나 19로 인해 매출 하락으로 운영이 어려운 사회적기업에 긴급운영 안전 자금을 저리로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종사자 대출의 경우 SNS 대안신용평가 솔루션인 '아스터(ASTER)'를 적용해 기존 심사 방식을 보완해 심사한다. 현재 밴드에 약 340개 사회적경제기업이 공제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141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며, 회원사에 246억 원의 대출을 진행했다. 

▲ 숫자로 보는 사회적경제공제기금. ⓒ재단법인 밴드
▲ 숫자로 보는 사회적경제공제기금. ⓒ재단법인 밴드

동행, 풀빵, 밴드의 조직 형태는 각각 사회적협동조합, 노동공제연합, 재단법인으로 다르다. 이는 한국에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기본법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경제가 공제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제도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나마 2010년 생협법 개정으로 생협에서 공제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담당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제 시행을 위한 감독기준, 시행령 및 시행규칙 등 추가 제도정비를 완결하지 않고 있다.

초기 협동조합, 사회적경제와 함께 성장해 온 공제사업은 상호부조, 공동유대에 기초한 협동의 산물이다. 사회적경제 공제사업은 조합원을 위한 공동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의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면서 시민사회의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가 점점 커지고 있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직접 메우지 못한다면, 사각지대 안에 사람들이 스스로 안전망을 만들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공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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