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⑦]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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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⑦]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 2020.03.19 17:39
  • by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어린 시절, 2020년은 아주 먼 미래였다. 주말 아침마다 필자를 비롯한 전국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준 국민애니메이션 '2020 원더키디' 때문인지 2020년에는 고도의 기술발전과 함께 세상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SNS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한 누리꾼의 말처럼 '현실의 2020년은 역병이 창궐하고, 트로트가 유행하고, 커피를 400여번이나 저어 만드는 일명 달고나 커피가 유행'한다. 흔히 상상할 수 있었던 미래보다는 과거에 가깝다.

▲ KBS Archive는 2020년을 맞아 유튜브 '옛날티비' 채널을 통해 1990년대 방영되었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스트리밍 했다. 그 당시 상상하던 2020년의 모습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는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 KBS
▲ KBS Archive는 2020년을 맞아 유튜브 '옛날티비' 채널을 통해 1990년대 방영되었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스트리밍 했다. 그 당시 상상하던 2020년의 모습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는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 KBS

코로나19의 영향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항공편이 축소되고 여행자제 권고가 확산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 간의 교류와 협력이 화두였다면, 이젠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기 위해 먼저 철저한 분리가 시급해졌다. 필리핀도 예외는 없다.

금주 월요일(3월16일)부터는 휴교령이 떨어졌다. 아예 방학을 당겨 시작한 학교도 있고 (필리핀의 방학은 보통 4월~6월이다.) 일부 학교는 추후 재공지가 있을 때까지 학교 문을 닫는다. 학교 카페테리아에 입점한 매장들은 자동으로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수입이 끊겼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다. 식당 운영은커녕 통행까지 제한할 정도로 강력한 통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바깥출입이 허락되는 시간은 하루에 단 2시간뿐이다. 그나마 대중교통은 없다.

▲온라인으로 나나이 '셜리'와 나눈 대화 중 일부. 최근 일주일 사이 필리핀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시작되었다. ⓒ 카이나
▲온라인으로 나나이 '셜리'와 나눈 대화 중 일부. 최근 일주일 사이 필리핀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시작되었다. ⓒ 카이나

카이나에서 일한 약 6개월 동안 그저 손 놓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위기를 벌써 두 번이나 겼었다. 첫 번째 위기는 필리핀의 강력한 태풍이었다. 태풍은 소문으로 들었던 것 보다 그 위력이 훨씬 강했다. 마을의 모든 전기와 인터넷이 끊기고 거리에는 인적이 사라졌다. 대신 쓰레기와 간판들이 날아다녔다.

카이나의 나나이(Nanay, 어머니)들은 지붕이 날아가고 침수된 집을 수리하느라 태풍으로 인한 휴교가 끝난 뒤에도 며칠간 출근을 하지 못했다. 나나이들이 수해를 복구하는 동안에는 임시로 한국 학생들끼리 매장을 운영했다.

그리고 매년 한 번 이상 겪는 초강력 태풍을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 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파견학생들과 나나이들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공제회였다. 비록 적은 금액일지라도 평소 급여에서 일부를 적립하여 태풍 피해를 입었을 경우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발전기를 구입하고, 태풍 피해가 잦은 시즌 전에 집을 수리하거나 수해를 심하게 입을 경우 빠른 복구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위기는 눈앞의 작은 성과에 성급히 만족하던 분위기를 전환하여 지속가능함을 고민하게 하는 불씨가 되었다.

두 번째 위기가 너무 빨리 찾아온 탓에 공제회가 아직은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 필요성만큼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리고 한국의 활동가와 개발도상국 수혜자의 대면(對面)활동이 기본이었던 개발협력에서 국경폐쇄라는 초유의 사태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현지인 활동가 양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인지하게 되었다. 카이나는 현지 협력파트너인 아테네오대학교와 온라인 소통을 통해 현지 청년 활동가 양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딛은 카이나에서 다음단계에 대한 고민을 심도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위기 덕분이다. 2020년, 상상하던 원더키디의 우주정거장 만큼은 아니더라도 코로나19라는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 더 미래지향적인 운영시스템으로 단단해진 카이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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