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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②] 카페테리아에서 '한국'을 만나다카이나(KAINA)에 가면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 승인 2020.01.0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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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너 거기서 뭐해? 요리 해?" 정도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봉사자들은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이겠다고 태평양을 건너 이 먼 곳까지 온 것이 아니다. 한식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천가지 방법 중 한국에서 파견된 학생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미 자녀를 서넛씩 키우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나나이(Nanay, 필리핀 현지어로 ‘어머니’라는 뜻)들에게 요리를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 봉사자들이 알려주는 한식 레시피를 단번에 익히곤 하는 능력자이다. 요리는 함께 일하는 나나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이 요리한 한식을 팔아 넉넉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리 파견자들의 역할이다.

▲Saint Joseph School 카이나 매장에서 나나이들이 김밥과 계란말이를 준비하고 있다. ⓒ카이나

필리핀의 한류열풍

그런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바로 가게의 ‘얼굴마담’이다. 봉사자들이 이곳에 도착한 첫 날, 나나이들은 한국 학생들이 왔으니 매출이 오를 것이라며 한껏 기대를 비췄다. 필리핀의 엄청난 한류열풍을 반영하듯 한국식당에 '진짜' 한국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톡톡히 홍보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 데이터를 파일로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하느라 매출향상을 위해 별다른 시도를 하지 못했던 파견 초기, 한국 학생들이 가게에 매일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으니 나나이들의 기대는 실제로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카이나를 찾는 고객들은 (특히 청소년들은) 대놓고 한국에 열광했다. 연예인도 아닌 우리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는 일도 흔했다. 처음에는 괜히 부끄럽고 어색했던 이런 반응들도 시간이 지나니 차차 익숙해진 것 같다. 종종 팀원들끼리 서로 '연예인병' 조심하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화장도 하지 않고 출근한 날,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카이나의 현지파트너인 Ateneo de Naga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Eddie’(우측 두 번째)는 카이나의 단골손님이다. 한국에서 6년 동안 일했다는 그는 한국 봉사자들에게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냐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카이나

카이나가 소재한 필리핀 나가(Naga)의 한국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K-pop과 K-drama를 중심으로 한류가 폭발적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국에 열광했고 한국과 관련된 것은 무조건 특별하다 여긴다. 유명한 고급 음식점에는 'K-pop'이라는 이름을 붙인 메뉴를 판매하고, 대형마트에는 오히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한국제품들을 판매한다. 그러나 거센 한류열풍에 비해 도시의 규모가 작아 한국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되어 있다.

▲나가에서 가장 큰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미백비누 ⓒ카이나

그래서인지 특히 '한국사람'에 대해 얼마나 호의적인지는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우리는 늘 주목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학생들이 지나가면 곁눈질로 흘끔거리는 것이 아니라 구경을 하듯 대놓고 시선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고개가 꺾어져라 쳐다보기도 한다. 어디에서든 사진을 찍을 때면 배경에는 늘 우리와 함께 브이(V) 포즈를 취해주는 현지인들이 함께 찍힌다. 커피숍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길에서도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외치거나 다짜고짜 유명한 한류스타의 이름을 대며 자신을 팬(Fan)이라고 소개하는 이들도 있다. 그 호의는 자주 직접적인 친절로 연결된다. 한류스타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저 '한국사람'일 뿐인 우리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카이나의 현지 파트너인 Ateneo de Naga University에서 원데이(One-day) 한국어교실을 제안했다. 한국어교실에는 두 학급, 총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다. 장작 4시간여의 수업이었음에도 학생들은 우리가 준비한 모든 과정에 열심히 집중했고, 열렬한 반응 덕분에 수업을 진행하는 우리도 정말 신이 났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이든 수준급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학생이든 모두가 K-pop과 K-drama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들에게 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지를 물었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나 배우들에게 한글로 댓글을 쓰고 싶다는 귀여운 대답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K-pop의 가사나 K-drama의 내용을 자막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해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 또한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대답까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 모든 대답의 공통점은 '한국이 좋아서'였다.

▲급히 결정하고 준비하느라 홍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이날 한국어교실에는 기대보다 많은 학생들이 몰렸다. 교보재로 야심차게 준비한 한국드라마 영상은 매우 최신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시청을 마쳤을 정도로 필리핀에서 한국드라마의 인기가 뜨겁다. ⓒ카이나

한국문화를 전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기쁨

한때 개발협력현장에서 지금의 카이나처럼 '한국문화'를 수단으로 기여하는 것에 대해 철없는 의문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현지인들의 생활에 물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보다 가벼워 보이기도 했고, 한국문화를 개발도상국에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심하게는 일종의 문화제국주의가 아닐까라는 비약도 했었다.

필자가 몽골에 있을 때였다. 수도인 울란바타르 외곽 빈민촌에서 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선배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아동센터에서 느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센터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빈곤가정의 자녀들이며,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가 알콜중독자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센터에서는 학습지도, 미술, 방과 후 돌봄 등을 제공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교실'이었다. 센터에서 개최한 연말발표회에서 한국어교실 아이들은 한국노래를 연습하여 불렀고, 관객석에서 발표회를 지켜보던 한 학부모가 옆에 있던 선배에게 정말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두 언어를 할 수 있어요."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한국어'가 아니라 그저 '외국어'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아이였다. 그동안의 편협했던 사고를 벗어나게 된 계기였다.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문화를 접하는 것은 곧, 가난으로 인해 제한되었던 ‘기회의 확장’이었다.

카이나를 찾는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음식들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고 한다. 물론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식당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식은 학생들이 쉽게 접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럽고 비싼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한국 봉사자들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네며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나이들은 한국인들과 함께 직접 한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한식을 조리하는 것도 자랑할 만한 기술이 된다.

▲Saint Joseph School에서는 쉬는시간마다 카이나 앞에 긴 줄이 생긴다. 한산한 옆 가게와는 상반되는 풍경이다. ⓒ카이나

이 작은 도시에서도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누구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청소년‧청년들에게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었거나 동경해왔던 것들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보다 큰 정서적 배부름을 전할 것이라 믿는다. 카이나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가 단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음식을 통해 난생 처음 일자리를 갖게 된 나나이들이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은 한국을 사랑하는 학생들이다. 카이나를 운영하며 보람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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