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①] 나나이(Nanay)와 함께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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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①] 나나이(Nanay)와 함께하기까지
개발협력의 이상과 현실 사이
  • 2019.12.26 18:55
  • by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버스를 타고 남동쪽으로 약 12시간을 이동하면 '나가(Naga City)'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곳에는 한국 대학생들이 현지 취약계층 여성들과 함께 운영하는 한식당 '카이나'가 있다. 카이나의 직원들은 대부분 나가의 도심 개발 사업으로 쫓겨난 철거민으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공동묘지 인근의 변두리 마을 '마오그마'에 살고 있다.

올해 1월 이곳에 한양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단기 봉사단이 방문했다. 봉사단은 마오그마 마을의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보건‧교육활동 및 시설보수작업에 참여했다. 봉사활동의 경험은 구성원이었던 김민지(관광학), 공민영(영문학)학생이 각각 카이나 2기와 3기로 장기 현장파견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두 청년의 터닝포인트가 된 카이나프로젝트는 한양대학교 사회혁신센터에서 주관한 '소셜벤처 청년교류 프로그램(Social Venture Youth Exchange, 이하 SVYE)'에서 처음 구상됐다. SVYE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고려하여 사회적 기업을 설립, 사회적 가치와 함께 경제적 이익을 확산시켜 사회혁신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아시아태평양을 배경으로 하나의 지역을 선정하여 그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았다.

▲김민지,공민영 학생은 카이나 프로젝트와 연계한 한양대학교 필리핀 단기 해외봉사활동에 참가하면서 개발협력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이나 인스타그램 공식계정(www.instagram.com/kaina_naga)

2017년도 SVYE에서 선정한 활동지역은 필리핀의 나가로 최종 5개 팀이 적합성과 현실성 등을 보완하는 단계를 거쳐 나가에서 적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모델을 개발했다. 그중 창업까지 이어진 곳은 카이나 뿐이었다. 최근 경쟁하듯 늘어난 해외지원사업과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있지만, 실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을 실행하고 성과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논의를 구체화하고 현장에 적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카이나는 큰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어려운 개발협력과 더 어려운 사회적 경제가 만났다

카이나 1기는 나가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1기가 떠나고 학부생 5명으로 구성된 2기가 파견되었다.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카이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카이나 2기로 활동한 전 륭(파이낸스경영학)학생은 "무엇보다 한 학기(4개월)라는 파견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업무를 파악하고 현지에 적응하니 한 달이 훌쩍 흘렀다."고 이야기했다.

단기 해외봉사활동과는 달리 장기 파견활동은 현장에서 A부터 Z까지 전부 직접 만들어가한다. 학생들은 짧은 시간동안 성과를 내야 했고, 이에 내부적으로 쌓여가고 있는 운영상의 문제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대학원, 학부 학생들로 구성된 3기가 파견되기까지 카이나는 약 두 달간 한국 학생들 없이 나나이(Nanay, 어머니)들이 직접 운영했다. 이 기간에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사업자등록 및 보험 등과 관련된 행정적인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개발협력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일의 경험도, 배움의 경험도 없는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이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카이나 식당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카이나를 창업했던 학생들의 이상이었을까? 수동적으로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과 일방적인 기여가 아닌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지속가능함을 추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문화와 관습, 환경을 가진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무언가를 시도할 땐 특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지의 행정은 보통 느리고 복잡하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 절차들을 따라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단기 해외봉사활동이 지역주민의 삶에 활기를 더하는 잠깐의 이벤트라면 현지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나 장기 프로젝트는 그들의 삶 그 자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또 실제로 삶이 나아지는 것을 그들 스스로 체득하는 과정이 충분히 누적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발협력은 드러나지 않는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이다. ⓒThe Fundraising Whisperer

한 걸음씩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카이나팀 3기는 사실 파견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심으로 목표를 설정했었다. 가장 큰 목표는 카이나 3호점을 오픈하는 것. 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 보니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점포의 확장보다는 운영체계를 정비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비즈니스로서의 법적‧행정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매출을 정상화하는 노력도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지출을 기록하는 시스템이 없어 데이터를 정리하기위해 노트에 정신없이 메모해놓은 장부를 하나하나 입력하여 엑셀파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사실 그 전에 현지어로 기록된 장부 읽는 방법부터 배워야 했다.

▲카이나 프로젝트 3기 파견학생이 행정업무를 도와주는 필리핀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사업자등록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DTI(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 Philippines) 사무실을 찾았다. 현지 대학생에게도 파견학생에게도 필리핀의 행정절차는 낯선 일이다. ⓒ카이나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책임감의 무게가 점점 늘어나면서 카이나 프로젝트가 금방 한국으로 돌아갈 한국의 대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의지와는 다르게 일은 더뎠고 매출향상을 위해 고안해낸 대안들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매번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달간의 노력 후 뚝 떨어졌던 매출이 다시 기대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카이나에서 일하는 어머니들과 한국 학생들 사이에 신뢰가 두터워졌다.

카이나에 고용된 취약계층 여성들을 카이나를 함께 운영하는 주체로 인식하기 위해 직원 또는 근무자라는 표현 대신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3기로 파견된 학생들과 만난 첫 날, 어머니들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카이나 덕분에 아이들의 학비를 해결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카이나가 첫 일터이기도 하다. 어머니들은 "카이나로 인해 삶이 나아졌다.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어머니들은 매출을 정상화 시키는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월급을 3분의1만 가져갔다. 이미 적립해놓은 수익금으로 얼마든지 눈앞의 이익을 쫓을 수 있었지만 당장의 월급이 줄어들더라도 좀 더 나중을 위해 적립금을 일절 손대지 않았다. 회의 때마다 "우리는 카이나를 잃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반복하는 어머니들은 어느덧 학생들을 '좋은 파트너'라고 표현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그들의 진정성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느리지만, 카이나에는 희망이 보인다.

▲카이나 운영의 기본 원칙은 끊임없는 대화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학생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그 배경과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해 가능한 상세히 설명한다. 어머니들은 대안을 꼼꼼히 고민하여 선택하거나 제3의 대안을 다시 내놓기도 한다. 카이나에서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카이나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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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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