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⑧] 4차 산업혁명과 국제개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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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⑧] 4차 산업혁명과 국제개발협력
태평양 건너에서 전하는 온기(1)
  • 2020.04.16 18:21
  • by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국제개발협력의 매력은 '현장'이다. 많은 활동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의 접점에서 직접 그들과 함께 변화를 도모한다. '현장 전문가'의 필요를 강조할 정도로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정확히 아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과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세상이지만, 이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 곳곳의 오지로 들어가 현지 주민들을 만나고 부대끼다보면 고됨은 사라지고 사람냄새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늘 국제개발협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일은 많고 보상은 적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해마다 수많은 청년들이 현장으로 떠나는 데에는 수혜자들의 삶이 변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행복감이라든지 스스로의 자아실현 욕구 같이 보이지 않는 가치가 크게 작용한다.

'현장'은 곧 수단이자 목표였고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지가 성과로 측정되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가와 봉사단원들이 현장으로 파견되는지 또한 성과로 여겨졌다. 기업, 학교, 청소년 기관 등에서 주관하는 단기봉사활동이 늘어났고,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몇 달에서부터 1년 이상 현지에 머무르면서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관련 업무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코이카 인턴, NGO봉사단, 대학생 중기 봉사단 등 다양한 파견 경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개인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 외에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적 거리두기 뿐인 상황에서 수혜국의 사람들과 '만나서' 일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는 국가가 급격히 증가했고, 혹시라도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감염이 되었을 경우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을 수 없을 것을 우려하여 전세기를 띄우면서까지 사업지에 파견된 직원과 봉사단원들의 귀국을 도왔다.

▲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와 광장은 인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허가를 받은 인원만 (가정마다 1명) 식료품 구입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외출을 할 수는 있지만, 대중교통 또한 운행을 중단하여 시장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 ⓒ 카이나
▲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와 광장은 인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허가를 받은 인원만 (가정마다 1명) 식료품 구입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외출을 할 수는 있지만, 대중교통 또한 운행을 중단하여 시장에 가는 것이 쉽지 않다. ⓒ 카이나

필리핀 나가(Naga City) 소재 학교의 카페테리아에 입점한 카이나(KAINA)도 COVID19 사태 초기에는 한국 학생들의 도움 없이 나나이(Nanay, 어머니)들끼리 일하며 한국과는 매일 온라인 메신저로 소통했다. 겨우 운영을 이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이르지만 자립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자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휴교령과 더불어 강력한 봉쇄조치가 내려졌고, 나나이들은 식당 운영은커녕 통행 제한으로 인해 식료품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 필리핀에서는 강한 격리정책이 시행디고 있다.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마다 통행증 검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 카이나
▲ 필리핀에서는 강한 격리정책이 시행디고 있다.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마다 통행증 검사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 카이나

카이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다양한 사회혁신 인재양성프로그램을 통해 훈련받고, 그 결과로 개발도상국의 취약계층 여성들과 협업하여 온전히 이루어낸 성과로 작년 한 해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금년에는 더 많은 수혜자들과 혜택을 나누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에서 기존의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3,000㎞의 거리를 두고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아주 적은 수입마저 모두 끊긴 나나이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호소하는 것은 오히려 거부감을 갖게 하는 역효과를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방식이 바로 '십시일반'이다. 2호선 한양대역 2번 출구에는 카이나와 마찬가지로 사회혁신인재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친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개발한 모금 플랫폼 '대트리스'가 있다. 대트리스는 도움이 필요한 수요처를 실시간․시각적으로 알릴 수 있는 시설로, 누구든지 '대트리스'에 설치되어 있는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태그하면 1회 500원씩 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 금액은 카이나의 필리핀 현지 협력파트너인 아테네오대학교를 통해 식료품과 생필품 등을 구입하여 나나이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 2호선 한양대역에는 ‘대트리스’를 통해 카이나 나나이들의 어려운 상황이 알려지고 있다.
▲ 2호선 한양대역에는 ‘대트리스’를 통해 카이나 나나이들의 어려운 상황이 알려지고 있다. ⓒ 카이나
▲ 적은 기부금액으로도 누구나 쉽게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대트리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 대트리스 페이스북
▲ 적은 기부금액으로도 누구나 쉽게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대트리스’의 가장 큰 장점이다. ⓒ 대트리스 페이스북

언젠가부터 모금의 방법 또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모금함에 직접 현금을 넣지 않아도 가상의 계좌를 통해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온라인 기부플랫폼을 비롯하여 전화 한 통 문자 한 번이면 간단히 일정금액을 기부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입력하거나 웹사이트에 접속해야 하는 번거로움 마저 사라졌다. 그저 지나는 길에 교통카드만 찍으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가 된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아무리 인간성을 저해한다고 해도 그 덕분에 누군가를 돕는 것까지 간편해졌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긍정적인 면이다.

불가피하게 부분적 대면수업이 시작되며 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난 월요일부터 대트리스를 통한 모금을 개시했다. 2호선 한양대역을 찾는 학생들과 교직원, 그리고 그 외 모든 시민들이 오며가며 지나는 길에 간단히 교통카드만 찍으면 캔커피 한 잔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태평양 건너에 도움의 손길을 전할 수 있다. 적어도 한양대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부는 거창한 결심 없이 잔돈을 보탤 수 있는 가볍고 일상적인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렇게 또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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