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⑨]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리는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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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⑨]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리는 '함께' 이겨낼 것입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전하는 온기 (2)
  • 2020.04.30 09:11
  • by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초기에는 카이나(KAINA) 운영을 지원하던 한국 대학생들이 철수했고, 곧이어 필리핀 정부 차원에서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카이나가 입점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다. 가게 운영 또한 중단해야만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 인간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작년 한 해 카이나에서 희망을 찾기 시작했던 나나이(Nanay,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갑자기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더 컸다.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태평양 건너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나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메신저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정도였다. 마닐라를 비롯한 섬 전체의 이동제한으로 인해 한국에서 기금을 마련한다고 해도 구호품을 보내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나가 소재한 나가(Naga City)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배송이 가능한 쇼핑몰이 드물게 있긴 했으나 물류가 원활히 조달되지 않아 현지에서 직접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는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된 상황에서 나나이들이 직접 시장에 가는 것도, 또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그들의 거주 지역까지 배달을 요청하는 것도 무엇 하나 쉬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길은 있기 마련이다. 먼저 현지 협력파트너인 아테네오대학교(Ateneo de Naga University)에 이러한 상황을 알렸다. 아테네오대학교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가족의 도움 없이 숙소에 갇혀 지내는 학생들을 위해 지역의 유통업체에서 물품을 우선적으로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아테네오대학교를 통해 나나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업체에서도 흔쾌히 도움을 약속했다.

물품이 준비되면 아테네오대학교의 학생처장인 Rodolfo Virtus 교수가 외출이 허가된 시간에 직접 픽업과 배달을 책임지기로 했다. 한양대학교에서는 카이나의 나나이들과 더불어 도움이 필요한 아테네오대학교 학생들까지도 물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재원을 보탰다.

▲ 한양대학교와 아테네오대학교, 지역의 유통업체가 협업하니 시장에 가는 것조차 미션이었던 나나이들에게도 식료품과 생필품이 전해졌다. ⓒ카이나
▲ 한양대학교와 아테네오대학교, 지역의 유통업체가 협업하니 시장에 가는 것조차 미션이었던 나나이들에게도 식료품과 생필품이 전해졌다. ⓒ카이나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친 비대면 협력으로 당장 필요한 식료품과 생필품이 한가득 전해졌다. 한양대역에 설치된 '대트리스' 기부플랫폼을 시작으로 지원물품이 전해지는 과정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퍼즐을 맞추듯 '사회적 거리'를 매웠다.

구호품이 배송되던 날, 나나이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의외였던 것은, 그들이 지원물품을 언급하기보다는 '자신들을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코 대단하지 않은 도움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나나이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카이나 운영이 중단됨에 따라 한국에서의 지원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나이들에게는 지난날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도움의 손길에 대한 경험이 이미 충분했다.

▲ 기숙사 또는 숙소에 발이 묶인 아테네오대학교 학생들에게도 식료품과 생필품이 전해졌다. ⓒ 카이나
▲ 기숙사 또는 숙소에 발이 묶인 아테네오대학교 학생들에게도 식료품과 생필품이 전해졌다. ⓒ 카이나

우리는 종종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저 누군가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로를 받곤 한다. 모두가 똑같이 힘든 시절을 겪고 있다는 동질감과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연대감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결국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동력은 사회적 거리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함께'라는 믿음이다.

▲ 구호품을 전달받은 아테네오대학교 학생들이 SNS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오랫동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갚겠습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 구호품을 전달받은 아테네오대학교 학생들이 SNS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오랫동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갚겠습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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