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NA, 함께 밥 먹자⑥] 코로나로 깊어지는 개발협력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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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A, 함께 밥 먹자⑥] 코로나로 깊어지는 개발협력의 고민
'코로나19' 조치로 인한 파견 잠정 보류...카이나의 위기 혹은 기회
  • 2020.03.05 19:37
  • by 공정희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석사과정)
따갈로그어로 카이나(KAINA)는 '함께 밥 먹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족을 식구(食口), 함께 밥 먹는 사람이라고 부르듯 필리핀에서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일상적인 친밀감의 표현이다. 필리핀 소도시 나가(Naga City)에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필리핀의 취약계층 여성들을 나나이(Nanay, 어머니)라고 부르며 함께 한식당 '카이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인 필리핀에서 한식 보급을 수단으로 취약계층 여성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카이나프로젝트>와 필리핀 개발협력분야의 현장 소식을 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으로 조정됐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출발 항공편에 대한 제재 조치가 강화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19 감염자의 대다수가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 거주자에 대한 입국 거부 사례가 급격히 많아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출발 여행객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3월 5일 기준 총 96개국에 이른다. (출처 : 외교부) 이런 분위기에서 해외여행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나오고 해외출장 또한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국제개발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카이나(KAINA)가 운영되고 있는 필리핀에서도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대학생 또는 청년들이 주를 이루는 봉사자, 인턴(실습생)들의 특성상 공교롭게도 매년 1분기, 특히 2~3월은 주로 학사일정과 채용 시즌에 맞춰 기존 파견자들이 귀국하고 신규 파견자들의 출국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카이나에서도 3월을 한 주 남겨둔 지난달 22일, 현지에서 일하던 학생들이 모두 철수했다. 그리고 다음 학기를 책임질 학생들은 기존 학생들에 이어 3월 첫째 주부터 바로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모두 한국에서 대기 중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활동 국가로의 파견을 잠정 보류한다는 코이카의 방침 때문에 출국이 기약 없이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개발협력 활동에 있어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하는 것은 기본 전제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파견국에 입국하여 감염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단순히 파견기관만의 책임소재가 아니라 외교적인 문제로 발전될 수도 있으니 방어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KCOC(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에서는 봉사자 파견 보류에 대한 지침을 매주 업데이트 하고 있다. 모든 기관에서 봉사자 파견을 잠정 보류한다는 조치는 현재(3월5일 기준) 변함이 없다. ⓒ KCOC

개발협력은 일부 행정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들이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이루어진다. 사업지에 늘 상주하는 인력들이 현지인들과 시너지를 내어 하루하루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가 쌓여 큰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확보되는 인프라들도 결국은 사람이 운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할 현지인들을 조직하는 것, 역량개발과 가치 확산을 위한 교육 활동 등 인적자원의 노력으로 실현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발협력의 시작과 끝은 바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이나 또한 창업 후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두 달여간의 한국 지원인력의 부재로 나나이들이 경제적 자립의 기반을 갖추기는커녕 가게를 겨우 유지할 정도의 수익조차 내지 못하며 사업 자체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라는 자원은 외부 변수에 의해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은 가장 취약한 존재이다. 카이나는 아직 초기 단계의 사업이며 필리핀 현지의 나나이(nanay, 어머니)들은 한국 학생들 없이 스스로 식당을 운영할 만큼 충분히 트레이닝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장기간 부재가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을 무너트리지는 않을까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나나이들과 할 수 있는 대응이라고는 인터넷 메신저로 매일같이 연락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대화 패턴은 늘 비슷하다. "오늘 일은 어땠어요? 별일 없었나요?"라고 물으면 나나이들은 "힘들어.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우리를 도와줄 한국 파트너들이 빨리 오면 좋겠어."라고 대답하곤 한다. (나나이들은 평소 한국 학생들을 그들의 업무 '파트너'라고 지칭하며 봉사자 이상으로 신뢰를 표현해왔다.)

그들은 실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나이들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리법을 익힌 한국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뿐이다. 이미 출국이 지연되고 있는 일주일 남짓 한 시간 동안 현지 협력학교 매니저로부터 학교 행사로 인한 협조 요청을 받는다든지, 그로 인해 근무일수가 변경되고 예상 월 수익과 지출이 변경되는 등의 회계 변수가 생긴다든지, 임대료 문제로 인한 논의가 필요하다든지 하는 연락을 받았다. 경험이 부족한 나나이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데 있어 늘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 특히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거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 파견학생들은 귀국 전 매장 집기들을 모두 들어내고 대청소를 했다. 덥고 습한 기후로 인해 벌레가 많고 청결유지가 어려운 동남아시아 국가의 특성상 위생에 대한 부분은 한국 학생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 카이나

어쩌면 예상치 못했던 이 부재가 나나이들의 업무역량을 향상시키거나 자립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냐는 위로와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수많은 시민단체와 비영리 기관에서 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이 이렇게 땀 흘려 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카이나 파견학생들의 부재가 불가피하게 길어질 것을 예상했다면, 출구전략까지는 어렵더라도 마지막 학생들이 철수하기 전에 무언가 장기 플랜을 세워놨어야 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상황이 금세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지난 2월14일. valentine’s day를 기념하여 파견학생들이 선물한 장미꽃 모양의 초콜릿을 들고 행복해하는 나나이들. 세상일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는 격언을 이런 식으로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 카이나

한국에서는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나나이들은 갑자기 파트너들이 사라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린 최선을 다하여 이 상황이 나아지는 것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없다는 현실에 무기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개발협력 현장이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외부요인으로 인해 언제 어떻게 위협을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크게 배웠다.

카이나는 나나이들의 삶의 대안이다. 이제 우리는 이 대안이 또 다른 위협으로 그들의 삶을 흔들지 않도록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하는 시기에 닿았다. 일상적인 운영 시스템의 확립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외부 도움의 부재나 위기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나이들이 스스로 그들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위기관리'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고 연습해야 할 것이다. 하루빨리 코로나19의 전염이 종결되어 이 위기 상황을 기회로 만들어 카이나의 다음 단계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안전하게 필리핀으로 출국할 날을 기대해본다.


공정희
몽골 파견을 시작으로 2013년부터 쭉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일했다. 주로 봉사자들과 현장 사이의 다리가 되어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변화와 성장에 감동하여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 '카이나'프로젝트에서 한양대학교 파견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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