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in 한국] 가난 극복의 두 축: 동자동 이야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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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in 한국] 가난 극복의 두 축: 동자동 이야기②
  • 2024.04.29 10:01
  • by 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1회에서 이어집니다.

▲ 동자동 재개발 과정을 설명하는 故김정호 이사장.
▲ 동자동 재개발 과정을 설명하는 故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

5. 가난 극복의 한 축: 자활의 힘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 빈곤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 자존감 등 인간 삶을 지탱하는 모든 힘의 상실을 의미한다. 애덤 스미스(1723~1790)는 『도덕감정론』에서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욕구는 인간 감정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말했다. 남에게 동감하고 남의 동감을 기대한 것은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무시당하며 외로움 속에 산다.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오두막에 갇힌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국가 정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단순히 물질의 증가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사람이 정당하게 부자가 되는 사회. 노동을 통해 개개인의 덕성이 증진되는 사회. 그가 『국부론』에서 설명하고 싶었던 과제였다. 동자동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오기까지 그들은 수없이 무시당해 왔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연결망도 거의 무너졌다. 그 속에서 자존감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그런 이들이 '사랑방' 활동을 통해 사회관계를 회복한다. 삶의 보람도 찾고 자부심도 생겨난다. 

이런 모든 성과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2007년 9월 염병천이라는 한 활동가가 쪽방으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그는 이전 '성공회용산나눔의집'의 상근활동가였다. 동자동을 들락거리다가 아예 들어앉아 버렸다. 사무실 겸 주거 공간으로 쪽방을 이용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동자동사랑방'이다.

공원문화제를 개최하고 주말농장도 운영했다. 2008년에는 조그마한 사무실(동자동 11-22)도 마련했다.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도 등록(1078호)했다. 그가 관두고 난 후에도 상근활동가는 이어졌다. 주민(빈민)운동을 선도해왔던 '한국주민운동교육원'이 상근자를 파견했다. 그들도 박봉에 뼈를 갈며 열심히 일했다. 2011년에는 몇몇 주민이 중심이 되어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이 창립되었다. 주민들의 자체 지도력도 확대되었다. 주민협동회의 역대 이사장들, 이태헌, 우건일, 유영기, 김정호 모두 쪽방 주민이지만 헌신적인 지역 활동가로 변신했다.

2023년 작고한 김정호 이사장에 대해 말해보자. 그는 1960년생으로 통영 사람이다. 아버지는 2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 너무 가난해 남의 집에서 일하며 빌어먹었다.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 여덟아홉 살 때부터 주인집 아주머니와 매일 40리 산길을 걸어 농작물을 팔러 다녔다. 밥 얻어먹고 어쩌다 면티 하나 받는 게 다였다. 그 집을 나와 14살 때부터 오랫동안 고기배를 탔다. 동남아, 스페인, 미국의 앞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제법 돈도 모았고 그 돈을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 맡겨두었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그 여자는 어느 무당하고 살고 있었다. 남은 돈도 없었다. 실의에 빠져 그는 매일 술독에 빠졌다. 몇 번의 사건을 거치면서 사람을 믿을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중증 심장병이 발견되고 폐결핵에도 걸렸다. 천안, 인천을 전전하며 폐지를 주어 연명했다. 돈이 생기면 또다시 술을 퍼마셨다. 2000년부터는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자로 지냈다. 

그러던 그가 몇몇 노숙자 갱생 프로그램에 노크했고, 2012년 말에는 동자동에 들어오게 된다. 2013년 가을, 추석 노래자랑 대회가 있었다. '사랑방' 행사다. 우연히 지나가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고 3등에 입상했다. 칭찬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그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 뒤 출자금 5만 원을 마련해 주민협동회를 찾아왔다. 이후 열심히 활동했다. 쪽방을 돌며 짐 넣는 선반을 만들어 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느새 주민들을 그를 '선반지기'라고 불렀다. 홍보위원, 교육이사, 사업이사로 활동 반경도 넓혀갔다. 그리고 주민협동회 제7대~9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3년 6월 10일 오랜 암 투명 끝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6월 26일 동자동 성민교회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 비를 뚫고 아주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추모영상, 추모사, 추모곡이 이어졌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지혜란 도서관의 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진솔한 마음과 간절한 열망, 그 열망을 함께 실현하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실천 과정에서 얻어지는 삶의 지혜는 학력과는 무관하다. 오랜 노숙자 생활에서 벗어나 불과 10년. 김정호 이사장은 쪽방 마을의 큰 어른으로 거듭났다. '사랑방' 활동이 그에게 준 선물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대의정부론』에서 시민 개개인이 공적인 활동을 하면 능력만이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공적 참여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서는 개인의 도덕도 황폐해진다고 염려했다. 『공리주의』라는 책에서는 인간 삶을 풍요롭지 못하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는 이기심과 지적 교양의 부족이라고 역설했다. 김정호 이사장을 생각하면 이 말은 맞다. 그는 '사랑방' 실천을 통해 지혜를 습득하고 삶의 의욕을 북돋웠다. 만년이 삶 10년은 이전의 '지옥'과는 다른 그런대로 좋은 삶이었으리라. 가난 극복의 가장 커다란 힘은 자활의 의욕과 그 실천의 경험에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고자 하는 자만 돕는다. 우리는 '사랑방'의 사례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 가난 극복의 다른 축: 국가의 의무

ⓒ동자동사랑방
ⓒ동자동사랑방

이제 국가 이야기를 해보자.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해야 한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불행의 위협에 직면한다. 운명의 여신은 공정하지도 않고 불행과 함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불행의 편차를 없애고 그 정도를 낮추는 것.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생각해 보면 동자동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내 형제, 내 아들,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주민이 될 수 있다. 주민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 모두 반짝이던 '한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에 산다. 한 평에서 탈출하게 하는 것. 그것이 국가의 정의이며 의무다. '선진국' 대한민국에는 더욱 그렇다. 

재개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유권 보장을 주장하는 건물주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소규모 빌라 소유자라면 처지는 서민과 다르지 않다. 과도한 도덕률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말자. 어렵게 잡은 재산 증식의 열망도 그들 삶에서는 가장 귀중한 욕구다. 그렇다고 쪽방 주민을 쫓아내는 것도 무리다. 동자동을 떠나는 순간 이들은 다시 과거의 고독한 섬 속에 갇히게 된다.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는 공공개발의 대가로 소유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법 개정으로 이미 충분한 혜택은 주어졌다. 그런데도 반대운동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더 이상의 설득이 불가능하다면 남은 대안은 장기임대주택을 주변에 새로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땅은 찾아보면 없을 리 없다. 주변 용산 미군기지 부지도 아직은 많이 남아있다. 자금도 부족하지 않다.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자금이 '주택도시기금'이다. 국민주택채권, 청약저축 등으로 조성해 임대주택 건설, 주택구입, 전세자금 대출의 용도로 쓰인다. 2023년의 기금액은 105조 원. 사용예산 중 저소득층에 대한 임대주택 지원(국민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의 융자+출자)은 불과 8,200억 원에 불과했다. 공급물량 중 80% 이상을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에 우선 공급하는 행복주택(1조 6천억 원)보다 턱없이 작다. 운영수익을 위한 여유자금도 방대하다. 2022년 6월 현재 40조 원의 규모였다. 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다. 2020년 2.29%, 2021년 1.37%, 그리고 2022년 6월 마이너스 1.43%였다.

2024년 4월 17일 '수요세미나'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 주민 모임'의 백광헌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한 평은 너무 힘듭니다. 거기서 밥 해 먹고 잠자고 이불 깔고 물건 있고 진짜 잘 데가 없습니다. 바퀴 발레는 우리의 친구입니다. 빈대와 쥐도 우글거립니다. 지난해 100여 명 주민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노량진 원희룡 국토부 장관 집까지 행진했습니다. 병자인 저희에게는 너무나 덥고 멀었습니다. 아파트 앞에서 만나달라고 간청했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욕했습니다. 쟤들 또 시작한다고 비웃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참 괴롭습니다. 관두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요구한 적이 있었나요? 나라가 공공개발을 해 준다고 먼저 말했기에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진전도 없습니다. 상황에 대한 설명도 질문에 대한 대답도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국가는 공공개발이라는 공수표를 날렸다. 그리고 갈등이 심해지자 무책임의 장벽 뒤로 숨어버렸다. 삶의 골짜기에서 간신히 희망의 끈을 부여잡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폭력이다. 거짓된 희망을 주지 마라. 희망을 약속했다면 확실히 지켜라. 정부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한국의 복지는 사방이 난맥상이다. 그 전체적인 개혁에 대해 여기서 논의할 지면은 없다. 관심 있는 사람은 필자의 라이프인 2024년 4월 16일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관련 기사: '도우누리'에서 상상하는 한국 복지의 개혁) 여기서는 두 가지만 강조해둔다. 

첫째, 뭐든지 국가가 개입하려 하지 마라. 정책의 최종 목적은 국민 개개인의 역량증진에 있다. 오로지 그 한도 내에서 정부의 개입은 의미가 있다. 공유식당 식도락의 사례로 말해보자. 이곳은 매일 주민이 자원봉사로 음식을 준비하고, 주변 시민들도 도와주고, 많은 쪽방민의즐거운 밥상이었다. 그런데 급속히 사람이 줄었다. 식도락 바로 앞에서 서울시가 무료로 도시락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 다시 어두컴컴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벌이는가? 10년 넘게 열심히 만들어 온 주민활동력은 크게 타격받는다. 식도락과 같은 조직에 식자재를 대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우리 공무원들은 뭐든지 좋은 것은 자신들이 가려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경계할 일이다. 

주민협동회의 선동수 간사는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여기저기서 쏟아붓는 물량 공세를 통해 닦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가난한 주민들이 함께 협동하여 스스로 돕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아닌 물품을 앞세운 외부의 선의는 오히려 주민을 비인간화, 대상화해 힘든 여건에서도 주민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습니다." 서울시 담당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둘째, 주거, 교육, 의료, 생계 등의 적정수준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자원배분의 기본원칙은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도와주는 것이다. 존 롤스(1921~2002)가 말한 '최소수혜자의 최우선 배분의 원칙'이다. 그가 동자동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먼저 쪽방부터 해결해라. 청년주택, 신혼부부 주택, 다자녀 주택 등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후순위다. 한 평 남짓한 공간. 바퀴벌레와 쥐들이 득실거리는 쪽방을 방치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 국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 주거 면적, 4.24평은 누구나 확보해야 할 권리이며 정의로운 국가의 의무다. 내가 이해한 존 롤스 『정의론』의 내용이다.

마지막 한마디. '사랑방'에서 수고하는 박승민, 선동수 간사의 봉급은 차마 밝히기도 민망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헌신적으로 일한다. 주민보다 먼저 말하는 법도 없다 주민의 입이 트이도록 기다린다. 주민 스스로 서는 것이 이들 활동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쪽방촌에는 험한 사람도 산다. 가끔은 범죄에 연루된 사람도 있다. 이들의 탄원서, 반성문 작성도 간사들의 역할이다.

위급환자가 발생하면 그를 업고 뛰어야 한다. 쪽방의 계단은 좁고 가파르고 어둡다.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언제가 선동수 간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생활을 버티십니까?" 그의 대답은 짠했다. "내적인 힘은 다 고갈된 것 같은데 주민들로부터 커다란 힘을 얻습니다." 문득 한 선배의 신문칼럼 문구가 생각났다.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되물어 보자". 그들의 수고가 언제나 고맙고 별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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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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