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서로를 보살피는 삶의 터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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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서로를 보살피는 삶의 터전으로
  • 2024.01.05 11:58
  • by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

기쁨의 정원 

                 조병준
 

중요한 건 
살아서  
기쁨의 정원 하나를 시작하는 일이지 
씨앗은 이웃의 정원에서 훔쳐도 돼 
이웃들은 눈감아줄 거야 
정원을 누려본 사람들은 알고 있지 
그것이 얼마나 떨리는 도둑질인지를 
무엇이 씨앗들을 눈뜨게 하는지를 

중요한 건 

살아서 
기쁨의 정원 하나를 열어두는 일이지 
작은 새보다 더 빠르게 뛰는 가슴으로 숨어들어와 
씨앗 조금을 훔쳐가는 이웃을 볼 때 
눈길 돌려 먼 하늘을 바라봐주어야 해 
잠든 씨앗을 깨워 
기쁨의 정원 하나를 시작하는 길은 그것뿐이니까 

 

중요한 건 
씨앗에서 정원까지 
기쁨 하나를 
흐르게 하는 일이지 
살아서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익에 충실하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모두의 풍요가 빚어진다고 했다. 시장의 탁월함을 신뢰하는 이 관점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토대가 되어왔다. 그런데 그것으로 경제의 전모가 해명될까?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은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책에서, 애덤 스미스는 절반의 답을 찾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그가 수행한 돌봄 노동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 노동의 가치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책으로 낸시 폴브레의 <보이지 않는 가슴>이 있는데,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빗댄 것이다. 

ⓒpixabay

돌봄의 사전적 의미는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다. 그렇게 볼 때 다른 동물들 (엄밀히 말하면 포유류와 조류에 속하는 동물들)도 돌봄 노동을 수행하지만,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 아주 단기간에 그친다. 그에 비해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의존 기간이 매우 길 뿐 아니라, 생식 능력이 사라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연명하면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적인 영역에서 영위되어온 이제 돌봄이 공적 영역의 과제로 확장되고 있다. 돌봄의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기존에 돌봄을 수행하던 노동력이 급속하게 줄어들면서 엄청난 공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고령화에 따른 노인 인구의 급증, 여성들의 사회 진출, 가족 규모의 축소와 유대 약화, 일인 가구의 증가, 이웃관계의 해체 등이 깔려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다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어머니들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과중한 짐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unsplash
ⓒunsplash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복지의 차원에서 많은 예산과 인력 그리고 시설을 꾸준히 확충해왔다. 하지만 행정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는 돌봄은 관료주의의 틀과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정책을 세우고 자원을 공급하면 관련된 업자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여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을 제대로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돌봄은 무엇보다도 질(Quality)이 중요하고, 그 핵심은 정성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심신을 보살펴야 하는데, 행정과 시장이 중심이 되는 돌봄은 그 점을 충분히 구현하기 어렵다. 

점점 늘어나는 복지 재정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업자와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민간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역량이 기존의 행정 복지전달 체계에 긴밀하게 맞물리고 거기에 전문가들이 결합해야 한다. 사회연대경제는 그러한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는 공론장이자 활동의 영역으로서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면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그 핵심은 주민들 사이의 관계망이 다양하게 구축되고 마음이 어우러지는 생태계일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시는 그런 상상을 경쾌하게 북돋아주고 있다. 이 작품은 시인이 어떤 병환을 앓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자신의 집 옥상에 자그마한 정원을 가꾼 경험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시인은 말한다. 씨앗은 이웃들끼리 마구 훔쳐가는 것이라고, 그것을 목격해도 눈길 돌려 먼 하늘을 바라봐주어야 한다고, 기쁨의 정원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중요한 건' '살아서'다. 서로에게 깃들어 있는 생명을 일깨우면서 '지금 이 순간'에 눈을 뜨고 생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되살리는 것, 돌봄의 본질은 그것이 아닐까.

 라이프인은 2024년에 '사회적 돌봄'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왜 '사회'가 새삼스럽게 부각되는가. 인간은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 핵심에 돌봄이 있고, 그것은 가족을 넘어선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수행된다. 나약하고 왜소한 이들이 어깨동무하여 함께 비빌 언덕을 만들어가는 속에서 삶의 안전기지가 하나둘씩 확보되어야 한다. 앞으로 사회연대경제가 추구해온 인간적인 삶과 경제의 흐름이 돌봄의 영역에서 새로운 모델들을 창출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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