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결손 사회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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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결손 사회를 넘어서
  • 2023.01.02 09:00
  • by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
05:37

병원의 응급실은 늘 긴박함이 흐르는 공간이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실려온 사람부터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에 이르기까지 일분일초가 다급한 환자들이 연달아 밀려들 때도 있다. 의료진이 아무리 열심히 대응해도 일손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덜 위급한 환자들은 뒷순위로 밀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진다. 자신이 먼저 병원에 도착했는데 외면당하고 있다고 원성을 높인다. 그런 환자들을 적절하게 상대하는 것도 응급실 의료진이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이다.

이대목동병원의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는 그런 상황에 대응하는 비법을 갖고 있다. 화를 내는 환자의 이마에 가만히 손을 올리는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열을 재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말로 달래는 대신 눈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이마에 손을 얹으면, 거의 모두 분노가 누그러진다고 한다. 그는 <지독한 하루>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방금 체온을 나누어가진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온기를 나누어 받고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까. 나는 대화를 이어가며 그들의 표정이 안온해지는 광경을 본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장면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고립'이 중대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적 관계가 빠르게 단절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는 거기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비대면 세계가 팽창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줄어들어 외로움이 깊어졌다. 그리고 타인을 마주하며 소통하는 역량이 감퇴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사회적 지능이 심각하게 지체되어 있음을 교사들은 절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2년쯤 어린 나이의 행동을 보이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따돌림과 폭력을 행한다고 한다. 스스로 그리고 서로 마음을 보살피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결손 가정'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응용해서 우리가 지금 '결손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부모가 온전히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사회적인 돌봄의 결여도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저출생, 정신 질환과 자살, 가정 해체, 노인 빈곤 등 한국 사회의 음울한 자화상도 모두 사회의 부실함과 직결되어 있다. 온전한 삶이 영위될 수 있는 조건이 흔들리고 인간다움이 존립할 수 있는 토대에 균열이 심해진 것이다. 사회의 복원은 가능한가.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사회적경제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를 꾀하고 공익을 추구하면서 이윤을 획득하는 활동이다. 무한경쟁으로 치달으며 관계를 파괴하는 시장을 극복하고 경제 행위 속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오로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끝없는 결핍감 속에서 상승 이동에 대한 강박이 만연한다. 이제 다른 욕구를 자각하고 그것으로 삶의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존재 욕구, 관계 욕구, 성장 욕구 같은 것이다.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승인하고, 서로 충실하게 연결되고, 더 나은 모습으로 향상되고 싶은 열망을 일깨워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목적은 바로 그러한 공동선을 구현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사회적경제가 출범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난 10년 동안 양적으로 많이 팽창했다. 이제 외형에 걸맞은 내실을 기하면서 질적인 업그레이드를 해나가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렇게 하려면 활동의 의미와 맥락을 짚으면서 지속가능한 실행의 기반을 다져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현장들 사이의 소통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도모해야 한다. 라이프인은 그러한 촉매 역할을 자임하면서 출범했다. 그동안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살피면서도 몇몇 중요한 주제를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천착해왔는데, '건강한 삶'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 본인 제공.
▲ 김찬호 라이프인 이사장. 본인 제공.

금년에는 거기에 더해, 사회적경제의 조직 문화를 성찰해 갈 예정이다. 우리가 내세운 비전과 가치가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구현되고 있는지, 조직 내의 의사소통은 일반 기업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이 이뤄지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효율성도 담보하는지, 구성원들의 동기와 보람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볼 것이다. 모두가 느끼지만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공론장에서 다뤄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우리의 자화상을 정직하게 응시하고 토론함으로써 내부의 이런저런 부정합들이 교정되어 가길 기대한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 자체가 사회적인 메시지로 발신되도록 매력적인 문화를 만들어 가자. 

코로나19의 긴 터널의 끝에서 맞이하는 2023년, 앞으로 대면 접촉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마주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인간은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상대방이 나를 보면서 찡그리거나 비웃는 표정을 짓는다면,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도 견디기 어렵다. 사람의 행복은 상당 부분 타인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런데 존재의 '사회성'이 위협받는 세상이고, 팬데믹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제 서로의 마음을 돌보면서 삶을 지켜주어야 한다. 안전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일상을 빚어내고, 그 기운으로 인간적인 세상의 텃밭을 가꿔야 한다. 사회적경제가 그 실천의 한 고리로 자리매김되고, 라이프인이 적절한 윤활유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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