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버리지마] 내가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정말 '재활용'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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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리지마] 내가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정말 '재활용'되고 있을까?
플라스틱 물질 재활용률 20%대, 플라스틱 재활용이 어려운 이유
탈(脫) 플라스틱, 재활용보다 생산 및 소비 억제가 중요
  • 2023.09.23 13:05
  • by 노윤정 기자

기술과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지구의 자원이 마치 무한하다는 듯이 사용해 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망가진 지구 환경을 목도하고 있으며, 지구의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따라서 선형경제에서 벗어나 순환경제로 나아가고,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소모와 폐기, 폐기물의 환경 영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잘 분해되지 않고 유해 물질을 유출하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라이프인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미세플라스틱, 탄소 절감 효과가 뛰어나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주목 받는 멸균팩 활용 등을 둘러싼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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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음료를 하나 구매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인 뒤, 이제 병을 버릴 차례다. 어디에선가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이라고 설명해 준 내용을 떠올리며, 내용물을 깨끗하게 비우고 겉면에 붙어 있는 라벨을 제거한다. 그런 다음 찌그러트려 부피를 줄이고 뚜껑을 잘 닫아 분리수거함에 버린다. 다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쓰레기를 버리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든다. '분리수거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지구 기온을 높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자원 남용을 막고, 환경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재활용이 필요하다. 특히 플라스틱은 우리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는 만큼 환경 오염 문제 또한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기에, 재활용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분리배출에 열심히 참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분리배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또한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 '분리배출' 강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우선, 확실하게 밝혀 두고자 한다. 분리배출은 중요하다. 플라스틱 오염과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플래스틱 재활용, 그 시작이 바로 분리배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종종 사람들이 분리배출 참여에 회의감을 표하는 이유로는 재활용률을 들 수 있다. 1995년 재활용품 분리수거 제도를 도입한 이후, 시민들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 참여율은 세계 그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재활용률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재활용의 범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재활용 비율은 조금씩 다르게 나오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분리 배출된 폐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54%다(폐기물 처리현황_생활폐기물, 2020).

▲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 자료집 갈무리. 정부 관계부처 합동.
▲ '전 주기 탈(脫)플라스틱 대책' 자료집 갈무리. 정부 관계부처 합동.

그리 낮지 않은 수치라는 생각이 드는가? 다른 통계도 한번 살펴보자.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전 주기 탈(脫) 플라스틱 대책'에 실린 생활플라스틱의 물질 재활용률을 보면 약 18%로 추정된다(2020년 기준). 물질 재활용이란 플라스틱의 화학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다시 사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따지자면 실질적인 재활용이라고 볼 수 있는 물질 재활용률이 고작 2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또한 올해 '플라스틱 대한민국 2.0-코로나19 시대, 플라스틱 소비의 늪에 빠지다'를 발표하면서, 일회용 플라스틱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폐기물의 물질 재활용률이 약 16.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단 9%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재활용만으로 순환경제와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까? 마음 한 구석에 탈력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 생각보다 복잡한 플라스틱 '재활용' 이야기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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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재활용률이 낮은 이유는 명백하다. 복합 재질 플라스틱이나 이물질이 묻은 플라스틱, 크기가 작은 플라스틱 등의 경우에는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결국 크기가 큰 단일 재질 플라스틱과 이물질이 제거된 플라스틱 등만 제대로 재활용된다.

물질 재활용이 어려운 폐플라스틱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서 주목 받는 개념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해중합(고분자 중합체인 플라스틱을 단량체로 분해하는 기술), 열분해 기술 등으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화학적 재활용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기존 방식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도 재활용할 수 있고, 품질 저하가 없으며, 재활용 횟수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플라스틱을 녹여서 다시 재생원료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플라스틱 기계적 물질 재활용 기술의 업그레이드도 필요하지만 열분해 방식 등의 화학적 재활용 등 선진화된 기술의 개발 및 상용화도 필요하다"며 물질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병용할 때 플라스틱 순환경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포스트플라스틱③] 플라스틱 재활용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다만 화학적 재활용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술 발전 초기 단계라 투자 비용과 효과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 플라스틱 폐기물을 화학적으로 분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목적 중 하나가 탄소 중립 달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탄소발자국을 키울 수 있는 화학적 재활용 방식은 목적과 모순되는 지점이 있다. 이에 유럽연합(EU) 국가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물질 재활용만을 재활용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화학적 재활용이 주목 받는 이유는, 현재의 물질 재활용 기술만으로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볼 문서가 하나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해 '화학적 재활용 이행 원칙'(CHEMICAL RECYCLING IMPLEMENTATION PRINCIPLES)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하며, 화학적 재활용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공유했다. 특히 WWF는 첫 번째 원칙으로서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입증된 접근법을 시행하려는 노력에 들이는 자원을 전환해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즉, 기존의 물질 재활용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위에서 화학적 재활용은 보조적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 플라스틱 재활용, 생산과 소비부터 줄여야

▲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자원순환체계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95개 소비자단체가 지난해 10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라이프인
▲ 종이팩 재활용률 제고를 위한 자원순환체계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95개 소비자단체가 지난해 10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라이프인

순환경제의 핵심은 '순환'이라는 말이 나타내듯이 자원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자원을 한 번 쓰고 버리던 기존의 구조를 바꾸자는 선언으로서, 구조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원순환을 개인의 선의와 양심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순환경제 실현을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유인책 및 규제를 담은 법과 정책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자원순환기본법',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이 수립되는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 정책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폐기물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지난 2020년 말부터 투명 페트병은 다른 플라스틱과 구별하여 버려야 하지만, 계도 기간이 끝난 현재까지도 투명 페트병을 따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올해부터 플라스틱 생산업체에 재생원료 3% 이상 사용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연 1만 톤(t) 이상 페트(PET) 원료를 생산하는 업체로 적용 대상이 한정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재생원료 비중은 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또한, 환경부가 2024년부터 종이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적용한다고 고시해('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지침' 개정안), 분리수거할 수 있는 멸균팩을 일반쓰레기로 만든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환경부가 2025년까지 전국에서 의무 시행하기로 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혀, 사실상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순환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더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플라스틱의 생산 및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다. WWF는 '화학적 재활용 이행 원칙'에서 화학적 재활용 효과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 "최악의 경우, 해당 기술은 현재의 재활용 기반 시설을 훼손하고, 플라스틱 생산 감소 및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 감소를 포함한 순환성을 향해 전진하던 것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재활용 시스템 역시 궁극적 지향은 과도한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는 데 있음을 밝힌 것이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으니, 우리는 버려지는 플라스틱 자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해쳐나가고, 지속 가능한 환경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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