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쿱스쿨 ⑧] 푸른 동네 안에 그림 같은 한옥 짓고 '구림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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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쿱스쿨 ⑧] 푸른 동네 안에 그림 같은 한옥 짓고 '구림공고'
구림공업고등학교 김재열·장승기·임상수 교사, 함맑은샘·문정민 학생 인터뷰
  • 2021.07.25 12:10
  • by 노윤정 기자
10:17

2012년 생겨나기 시작한 학교협동조합이 어느덧 전국에 약 13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주로 매점을 중심으로 진행된 활동들은 이제 방과후학교, 창업, 기본소득, 기후위기 대응 등 다양한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예전과 조금은 다른 풍경의 새 학년 새 학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참여로 나눔의 교육을 실천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해 교육경제공동체로서 성장하고 있는 학교협동조합을 라이프인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왼쪽부터) 구림공업고등학교 장승기 교사, 함맑은샘 학생, 문정민 학생, 김재열 교사. 학교 정문 옆에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진 협문은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제작했다. ⓒ라이프인
▲ (왼쪽부터) 구림공업고등학교 장승기 교사, 함맑은샘 학생, 문정민 학생, 김재열 교사. 학교 정문 옆에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진 협문은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제작했다. ⓒ라이프인

월출산을 품고 있으며 영산강이 흐르고 크고 작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빼어난 자연경관이 감탄을 자아내는 곳. 또한, 도일(渡日)하여 찬란한 백제 문화를 전파했다고 알려진 왕인 박사의 자취를 복원한 왕인박사유적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도갑사와 같은 사적지가 고즈넉한 정취를 더하는 곳. 바로 전라남도 영암이다. 이곳에는 여름이라 갈맷빛 짙은 나무가 무성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학교가 있다. 전국 최초로 한옥건축과를 신설한 특성화고등학교이자 전라남도에서 처음으로 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한 구림공업고등학교(이하 구림공고)다.

농촌 지역의 한 특성화고에서 처음으로 한옥건축과를 신설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구림공고는 농촌 지역의 대다수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역 인구 감소, 직접적으로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문제를 고민하던 구림공고에 영암군청은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노후화된 한옥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심하던 군청이 한옥 건축과 수리를 배우고 시행할 수 있는 관련 학과 신설을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구림공고는 지역과 상생하며 문제를 돌파할 방안으로 한옥건축이라는 특화된 과목을 신설했다. 유적지와 한옥마을이 있는 지역적 특성은 한옥건축을 배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됐다. 그리고 지난 2018년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을 설립해 학생들에게 교과과정만으로는 부족한 한옥건축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수익사업을 통해 학생들을 위한 재료비와 장학금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말하자면, 학생들이 수업 과정에서 만든 제품을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보다 투명하고 공동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든 배움터지킴이실. ⓒ라이프인
▲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든 배움터지킴이실. ⓒ라이프인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시행하는 주 사업은 '구림휴(休)'라는 협동조합 브랜드로 목가구를 제작·판매하는 가구 제작 사업, 한옥형 쉼터 제작과 같은 학교 환경 개선 사업이다. 질 좋은 목재와 한옥기능장에게 배운 학생들의 솜씨가 더해져 조합에서 제작한 제품은 질적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학생들의 솜씨는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낄 수 있다. 정문을 지나면 기와지붕이 멋스럽게 올려진 전통 한옥양식의 협문이 보이고, 협문 맞은편에는 마찬가지로 한옥양식으로 지어진 배움터지킴이실이 자리해 있다. 모두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학생들의 작품이다. 교정을 감상하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나무그네나 나무의자들도 모두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옥건축과 건물에 들어서자 실습실에서 학생들이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소리가 들린다. 복도 계단에는 학생들이 만든 나무 선반이 설치되어 화분들이 놓여 있다. 학생들이 하나하나 자르고 붙였을 목제품들이 학교 분위기를 조금 더 따스하게 만드는 듯하다. "학생들이 참 열심히 한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교사들의 손에는 학생들을 지도하며 생겼을 상처가 하나씩 있다.

학교를 둘러보다 보니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어떤 활동들을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을까? 이를 듣기 위해 구림공고 협동조합과의 김재열 교사와 장승기 교사, 임상수 교사(이하 호칭 생략), 2학년 재학생이자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조합원인 문정민 학생과 함맑은샘 학생(이하 호칭 생략)을 만났다.

 

▲ 한옥건축과 학생들이 학교 실습실에서 목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 한옥건축과 학생들이 학교 실습실에서 목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임상수: 내가 발령받아 온 전년도에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시골 학교이다 보니까 학생들이 여건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목공수업 때 만든 물건들을 공익적인 목적으로 판매해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재투자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가 돼서 실습에 대한 열의를 가질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학교에 관심을 갖고 오려는 학생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했다.

조합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 조합 특성상 한옥건축과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임상수: 출발은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는 조합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과마다 실습 내용이 다르다 보니까 그렇게 구성하기는 힘들었고, 한옥건축과 학생들이 주축 조합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사장님은 학교운영위원회의 지역위원인 분이다. 영리형 협동조합이다 보니까 교직원은 조합원으로 참여하지는 않고, 학생들의 실기 지도를 담당하고 있다.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학생들이 직접 제작과 시공에 참여하는 구조인데, 조합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임상수: 판매 자체는 주문을 받아서 물건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조합 활동은 학교 수업과 연계하여 이루어진다. 사실상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운영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문이 들어온다고 다 소화할 수가 없다. 우리는 수업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왕인박사유적지 버스정류장이나 영암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실은 군청과 교육청 지원을 받아서 학생들이 현장 실습에 투입된 경우다. 영리형이기는 하지만 조합 활동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린다기보다 학생들이 실기 능력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이익금을 학생들을 위해 재투자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교협동조합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의 연계일 텐데, 어떤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있나.

임상수: 주로 기부활동이다. 학생들에게 실습 기회도 주고 봉사의식도 길러주기 위해 학생들과 만든 물건을 중학교 등 관내 시설 몇 곳에 기부하기도 했다. 올해도 피크닉 테이블을 만들어서 복지시설에 기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중학교나 필요한 곳에 진로체험 지원 활동을 하려고 한다. 학생들 대상으로 직접 목제품 만드는 것을 보여주면서, 한옥건축과에 오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장승기: 지난해에 내가 학생들과 만든 피크닉 테이블이 9개가량이다. 그중에 실제로 판 것은 2개 정도다. 나머지는 기증했다.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것도 좋겠지만,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구림공업고등학교 한옥건축과 인장을 새겨서 기증하는 것도 뿌듯하고 괜찮지 않나.

김재열: 관내 시설물을 만드는 것도 지역사회 공헌이지 않을까. 왕림박사유적지 정류장이 지금 한쪽만 만들어져 있다. 올해 영암구청 지원을 받아서 맞은편에도 똑같이 정류장을 만들 계획이다.

학교와 조합의 활동이 지역 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도 보인다. 혹시 조합을 운영하면서 느낀 변화가 있다면?

임상수: 사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건 지역의 변화보다 학교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왕인박사유적지 정류장 같은 곳의 준공판에 학생들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걸 보면서 학생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이런 일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 그래서 학생들도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승기: 전남 특성화고 중에서 신입생 수로 대박 터트린 곳은 우리밖에 없다.(웃음)

▲ 문정민 학생과 함맑은샘 학생이 교내 나무그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그네 역시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들었다. ⓒ라이프인
▲ 문정민 학생과 함맑은샘 학생이 교내 나무그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그네 역시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만들었다. ⓒ라이프인

학생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조합에 들어올 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나?

문정민: 우리가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직접 만들게 될지 기대했다. 조합 활동을 하면서 피크닉 테이블을 만들었는데, 나무를 자르는 것부터 조립까지 직접 했다. 우리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들었다.

함맑은샘: 마찬가지다. 무엇을 만들지 궁금했다. 그리고 자격증과 장학금을 바라고 오기도 했다.

장승기: 솔직하다.(웃음) 학교에서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기도 하고, 조합에서 판매 수익금이 발생하면 연말결산 때 학생복지위원회에서 선정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돌려준다.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

학교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임상수: 협업이다.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본인들이 무엇인가를 만들 때 그 안에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 식으로 협업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적인 경험을 쌓고, 문제해결력도 키워간다. 우리 조합이 기술 실습 기회를 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학교협동조합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협업, 자주성 등을 배우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고 본다.

장승기: 학생들에게 자신감과 배려가 생기는 것 같다. 성향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 친구들이 있고, 실습할 때도 쭈뼛쭈뼛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럴 때 '이번에는 네가 한번 해볼래?'라는 말이 선생이 아니라 학생들 입에서 나온다. 하다 보면 재미있어서 서로 하고 싶어 하는 작업이 있다. 그래도 서로 배려하면서 '이번에는 얘 한번 해보라고 하자'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신감이 없던 친구들도 작업에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앞에 나와서 적극적으로 하더라. 이런 것도 협업의 모습이다. 서로 배려하고 위해주는 모습이 보이니까 참 좋다.

함맑은샘: 실습 기회가 많아져서 기계, 공구에 익숙해지고, 물건을 계속 만들다 보니 이제 다음 단계에는 어떤 게 필요하겠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어떤 걸 해야 할지 알고 먼저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과 손발을 맞추는 방법도 배웠다.

조합에서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임상수: 교육적인 가치를 가장 우선하고 있다. 기술을 배우는 것뿐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보면서 뿌듯함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참여 동기가 무엇이었든, 와서 친구들과 함께 직접 만들고 내가 만든 게 지역에 기증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 생기는 것 같다. 작년에는 이 친구들(함맑은샘, 문정민) 모교에 학생들이 만든 피크닉 테이블을 기증했다. 나중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내가 만든 물건이 모교, 지역 복지시설에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 않겠나.

장승기: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영리형이라고 해도 수익이 많이 나진 않는다. 우리는 굉장히 좋은 나무를 사용하여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한다. 집 짓는 나무로 그네를 만들고 테이블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걸 보고 가는 분들은 바로 주문한다. 워낙 질이 좋으니까. 우리는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 수익금으로 재료비를 충당하면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 실습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협동조합이라는 방식 안에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고 아이들에게 실습할 수 있는 재료,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협동조합 방식이 참 괜찮다고 본다. 공익적인 목적의식이 있지 않나. 학생들도 다들 굉장히 열심히 활동한다.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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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계획이 있다면.

임상수: 학교협동조합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큰 목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잘 운영되어 학생들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은 피크닉 테이블, 원목그네를 위주로 만들고 있는데, 학생들이 조금 더 빨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게 되면 가구도 직접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 선까지 기술을 키워보려고, 실제로 2학년 학생들은 수업할 때 본인들이 필요한 소목 가구들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우리 조합의 장점은 기성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디자인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목공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더 세밀한 목제품을 만들 수 있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제작한 왕인박사유적지 버스정류장. ⓒ라이프인
▲ 구림공고학교협동조합에서 제작한 왕인박사유적지 버스정류장. ⓒ라이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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