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금융인의 일 : 지구가 목적, 금융은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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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금융인의 일 : 지구가 목적, 금융은 수단
[굿, 파이낸스⑩] 사회적금융인은 어떤 태도와 자세로 일하는가
  • 2020.05.04 09:00
  • by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1년여 전이다. 2019년 3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 업적을 굳이 나열하지 않겠다. 그는 한마디로, 위대한 야구선수였다. 한일전에서 입을 거칠게 놀렸다가 '입치료'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지만. 그가 이런 은퇴 소회를 남겼다. "10년 연속 200안타나 MVP는 야구 인생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떤 기록보다 야구에 대한 내 사랑과 자부심이 중요하다. 야구를 정말 사랑했다." 

▲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 ⓒ wikipedia
▲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 ⓒ wikipedia

짧은 소회 속, 이치로가 어떤 태도로 야구에 임했는지 엿볼 수 있다. 직업윤리로 볼 수도 있지만, 그에게 야구는 직업 이상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혹은 자주)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직업이 주는 선입견이 있다. 다만 한 사람을 읽기에 직업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인간의 가치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업적을 냈는가에 있지 않다. 대신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지기도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적금융인'을 생각하다

사회적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이를 편의상 '사회적금융인'이라고 일컬어보자.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사회적금융인을 다룬 적이 있다(Forbes, 2007.06.12 <Do You Want To Be A Social Financier?>). 첫 일성은 이랬다. "금융을 단순하게 이윤 이상으로 (세상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설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사회적금융에 도전해도 좋다."(If you believe that finance can be used to engineer more than just profits, then a career in social finance may be right for you.) 포브스는 사회적금융이 "금융과 철학·사회학·인류학·정치학 등을 연결하는 일"이라며 "세계에 대한 큰 그림을 보고자 한다면 금융과 다른 영역을 연결하는 일에 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 맥락을 보면 사회적금융인의 중요한 덕목은 세계에 관한 관심이다. 그리고 플러스. 금전적 이익으로 경력을 쌓고 싶은 사람은 꿈도 꾸지 마시라. 정부나 기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풀고자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선구자가 되고 싶다면, 옳거니 도전하시라. 기사가 말하는 사회적금융인을 떠올리자면, '세계화' 혹은 '금융화'라는 주화입마(走火入魔)를 입은 세계를 심폐소생 하면서 방역체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세계는 해결해야 할 문제투성이다. 코로나19는 '세계화'라는 탈을 쓰고 경제의 금융화, 주주 자본주의 등이 빚은 온갖 문제를 까발리고 있다. 사회적금융인은 이런 온갖 문제 앞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회적금융인은 우선 단순한 금융기술(공학)자 아니다. 문제 해결에 금융공학이 한몫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관점과 안목이 필요하다. 과학·인문학·사회학·인류학·정치학 등을 버무려 새로운 줄기를 잡는, 즉 통섭적 사고가 요구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중요하게 언급하는 덕목이 있다. '포용'(Inclusion)과 '다양성'(Diversity)이다. 규제가 없어서, 자원과 자본이 풍부해서, 창의교육이 잘돼서 발전했다기보다 포용과 다양성이 실리콘밸리를 이끌었다. 덕분에 "다양한 이들이 오지 않는 회사는 곧 죽은 회사"라거나 "다양한 사람을 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

세계가 품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고 능력이 뒷받침한다면 다양한 배경을 품어야 한다. 이는 실리콘밸리에만 통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사회적금융인이나 사회적금융기관도 마찬가지. 재무가치와 사회적가치가 동반하려면 금융기술(공학)과 사회를 읽는 다양한 관점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때론 기존 금융기술을 뛰어넘는 모험이 사회적금융을 살찌울 수 있다. 포용과 다양성은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접근법이다. 물론 그전에 사람이든 조직이든 마음 깊은 곳에 ‘사회문제 해결’이 똬리를 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회문제를 감지하는 감수성 장착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사회적 행동으로 쌓는 협력과 연대  

"밥은 잘 먹을까, 잠은 잘 잘까. 곁에 누가 돌봐주고 들어줄 사람은 있을까. 그래서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고,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전북 남원 여성글쓰기 모임 '빛날'이 디지털 성착취 범죄 'n번방'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쓴 글 일부다. 잘못이 없음에도 세상에 외면받고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마음일 피해자들에게 빛날의 연대는 인상 깊었다.

사회문제 해결은 단독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한 사람, 한 사회를 비롯해 국제 차원 협력이 얼마나 절실한지 겪었다. 지금 우리에겐 더 많고 깊은 '사회적 행동'이 필요하다. 이기적 개인은 이타적 개인을 이기지만 집단 차원에서는 이타적 집단이 유리하다. 사람은 손가락 하나를 다쳐도 온 신경이 그쪽으로 간다. 하물며 사회의 아픈 부분이 있으면 온 사회가 신경을 써야 한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고 쿠바 독립(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세 마르티(José Martí)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히 잠잘 권리를 누릴 수 없다."

'n번방'피해자들과 연대한 빛날을 보면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모든 일의 전부"라는 SHAKE SHACK(일명 쉑쉑) 창업자 대니 마이어(Danny Meyer)의 말이 떠올랐다. 뉴욕 외식업계 스타인 그도 한때 위기에 처했고, 문제 해결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있음을 자각했다.

15년가량 사회적경제·사회적금융 영역에 몸담았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만 있을 거라고 오해했었다. 시간이 많은 오해를 풀었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었고, 좋은 의도로 포장해 남의 등 처먹는 사례도 만났다. 자신만 옳은 양 협력 상대를 무시하고 억지춘향식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사회적경제·사회적금융 영역에 온전히 이타주의적이거나 사회적가치만을 지향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조직 우선주의에 골몰하거나 자기 영달을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회적경제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편해졌다. 

다만 사회적 행동이 필요할 때, 협력과 연대를 위해 어떤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만날 것인지 사회적경제·사회적금융은 좀 더 달랐으면 좋겠다.

인간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되새김질해보자. 나는 인간의 가치가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이 사례를 보자. 1962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NASA를 찾았다. 복도에서 청소노동자를 마주친 케네디가 물었다. "어떤 일을 하세요?" 노동자가 답했다. "인류를 달로 보내는 일을 돕고 있어요." 그가 어떤 태도로 노동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삐뚤어진 금융이 세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금융은 여전히 힘이 세다.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 이에게 금융이라는 힘이 주어질 때 이를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하나,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단박에 바꿀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도, 체 게바라가 아니다(심지어, 체 게바라도 완벽하지 않았다). 내가 믿는 건 불완전한 실천이 차곡차곡 쌓아가는 가치다. 완벽하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면 좋겠다. 불완전한 실천의 가치를 믿는 태도. 아주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면서 세계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 그렇게 뚜벅뚜벅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사회적금융인에게 요구되는 자세일 수도 있겠다.

여전한, 봄이다. 코로나19에 꺾일 수도 없는 봄밤이 스치는 나날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된 만큼 술 한 잔과 함께 ‘사회적금융인의 봄밤’이라도 가꾸고 싶은 날이다. 시인 김수영을 읊조리면서.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_ 김수영, 「봄밤」 중에서

마지막 회다.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좋은 농담 하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고, '말'들의 잔치도 사그라들었다. 말이 좋아, 잔치지, 오염된 말들이 난무했다. 각 후보는 평등, 공정, 소통, 민주, 기회, 경제, 국민, 통합, 개혁 등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발했다. 공동체와 미래를 향한 비전과 철학은 드물었다. 코로나19 극복 구호는 당연하지만, 그와 직간접 관련된 기후위기도 어떻게 해결하자고 말 못 하는 정치가 정치인가.(녹색당, 정의당 등 소수당만 이를 내세웠다.)

▲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시위 중인 시민들 ⓒ unsplash
▲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시위 중인 시민들 ⓒ unsplash

거의 모든 사회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는 것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연재 첫 회(<금융에 지배당한 세계, 금융에 스며든 사회성>), 나는 이렇게 물었었다.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가?' 제대로 된 정치를 작동하고 싶다면 자신이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알고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시민 저마다 방역 주체가 되어야 하듯, 살고 싶은 사회를 위해 저마다 정치 주체로서 삶과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요구해야 한다. 1997년 IMF사태, 그저 국가가 망하지 않기를 바랐던 수동적 태도는 구조조정(이라고 쓰고 해고라고 읽는)을 받아들였다. 해고가 난무했고,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으며, 불안정-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았다. 참담했다. 협력이나 동반 등 사회적 행동은 없었고, 사회적 책임과 가치를 내팽개친 '(대)기업의 시간'은 지속됐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세상을 원한다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자발적 방역과 협력적 방역을 통해 원상복구가 아닌 다른 미래를 향한 대전환을 설계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전환의 주체가 돼야 한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는 사회적금융인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지구가 목적이고, 금융은 수단이죠.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을 돕고 있어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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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띄엄띄엄 연재하던 칼럼. 행여 읽었다면 고맙습니다. 최근 영화 <시네마천국>을 다시 만났습니다.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 장면을 보면서 회한에 젖는 엔딩신,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습니다. 알프레도가 건넨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 '제도 밖의 사랑이 불륜이라면 사랑 없는 제도 또한 불륜'(김규항)입니다. 사회적금융이라는 제도에도 사랑이 깃들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당신이 사랑하면서 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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