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닥터 아니 낭만투자자 김사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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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아니 낭만투자자 김사부의 탄생
[굿, 파이낸스 ⑦] 임팩트 투자가 만드는 낭만 혹은 사회적가치에 대하여
  • 2020.02.10 16:09
  • by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낭만닥터 김사부2' 포스터 ⓒSBS

최근 시청률 20%를 돌파한 <낭만닥터 김사부2>는 의학 드라마의 외피를 쓴 사회(혁신)드라마다. 내가 의학보다 '사회'에 방점을 찍은 이유가 있다. 어느 소도시의 허름한 돌담병원을 무대로 김사부(한석규 분)와 스태프들이 분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와 삶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안다. 생명을 살리고 치료하는 일이 당연한 의료기관에도 자본과 권력은 깊이 스며들었다. 돈과 권력이 우선하고 차별과 혐오가 횡행한다. 켜켜이 쌓인 적폐가 의료기관이라고 다르겠냐는 자조를 마냥 탓할 순 없다. 의료 행위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나는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진정한 가치를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은 생명 살리는 가치보다 돈, 권력, 출세 등에 치중한다. 이익이 나지 않거나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생명을 소홀하게 대하는 현실, 이 드라마에 의하면 '낭만 없는 현실'이다. '보편적 가치조차 이해타산에 맞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상한 세상'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뒤로 한 채 상대를 뭉개버려야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 말이다. 돈과 이익을 중심에 놓고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에서 김사부는 '낭만(이라는 가치)'을 끌어들였다. 모든 것을 돈에 귀결한 현실적 계산 혹은 선택이 아닌, 의사에겐 생명 살리는 일이 진짜 낭만 아니겠냐고 껄껄 웃어버리는 '개멋', 김사부의 전매특허다.

임팩트 투자, 새로운 자본주의를 향한 시그널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ing)는 기존 자본주의가 보자면, 낭만적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시카고학파)"인데, 이윤 외에 사회적·환경적 가치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말이다. 사실 '임팩트 투자'는 오래된 용어가 아니다. 2007년 록펠러재단 매니징디렉터였던 안토니 버그 레빈(Antony Bugg-Levine, 현재 'Nonprofit Finance Fund' CEO)이 처음 꺼냈다. 록펠러재단이 만든 글로벌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에 의하면, 임팩트 투자는 "기업, 조직, 펀드가 재무 이익 외에 측정 가능한 사회적, 환경적 임팩트를 내려는 의도를 가진 투자"다.

자본 회수와 이익 창출을 넘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목적에 둔 임팩트 투자의 등장은 자본주의의 ‘신념’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다. 이윤 창출을 최고선(善)으로 둔 그 신념에 한때 경도됐던 세계가 불평등, 차별, 기후위기 등 숱한 부작용을 낳은 데 대한 반성과 반작용이 임팩트 투자다. 새로운 자본주의를 원하는 흐름이 투자의 물줄기도 바꾸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임팩트 투자도 '투자'다. 즉, 재무 이익을 기대하는 행위라는 점에선 일반 투자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돈을 벌면서 부수적으로 사회공헌에 나서는 행위와 적극적·능동적으로 사회적 임팩트를 내기 위한 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건 다르다. 돈을 목적에 두느냐와 돈이 수단으로 작동하느냐가 다르듯 말이다. 임팩트 투자는 '돈 나고 사람(사회)가 난 것'이 아니라 '사람(사회)가 나고 돈이 났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임팩트 설계자를 주목하자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향한 요구는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도 확인했다. 이번 포럼 화두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였다. 'shareholder(주주)'가 아닌 'stakeholder'가 중심이었다. 이해관계자 앞에 '응집력 있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for a cohesive and sustainable world)'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주주만을 위해 작동했던 자본주의는 틀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이번 포럼은 비즈니스 전 과정에 얽힌 노동자, 협력자, 소비자, 그리고 이들이 모인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할 때 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함을 확인했다. 시장, 경제, 자본주의 모두 사회와 지구의 자장 안에 있다는 뒤늦은 깨달음이다.

▲ 스위스 다보스에서 1월 21일부터 4일간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2020 연차총회에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위협이 화두었다. ⓒQUARTZ

임팩트 투자가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환경적 가치 창출에 목적을 둔 방향이 옳았다는 증명도 있다. 구글에서 '소셜임팩트'를 검색하면 17억여 건이 나온다. 지난해 7월 입소스코리아가 실시한 '소셜임팩트 국민의식 및 사회적 신뢰 브랜드'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7%가 비재무적 평가(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평가)를 지지했다. 제품 구매 시 기업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받는다는 응답도 82.8%였다. 소비자는 이제 단순 소비자에 머무는 것을 거부한다.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업과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회적 소비자로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기업을 발굴·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자의 밝은 눈과 넓은 시야도 요구되고 있다.

임팩트 투자자는 '임팩트 설계자'라고 불러도 좋겠다. 임팩트 투자자는 사회문제 해결과 성장 가능성을 보고 스타트업을 발굴, 마중물을 넣고 자신의 네트워크, 전문성 등을 활용해 기업의 성장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돕는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임팩트 투자자는 투자 기업이 깨닫지 못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벤처캐피털이 한 사회의 벤처 생태계를 드러내듯, 임팩트 투자자도 임팩트 생태계 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가늠자이다. 우리나라에도 D3쥬빌리파트너스, sopoong, mysc, 블루포인트파트너스, 아크임팩트자산운용, IFK임팩트금융 등 다양한 임팩트 설계자들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정부와 국책은행, 대기업도 대규모 임팩트펀드 조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성장금융은 올해 사회적기업과 로컬기업 등을 위해 340억 원 출자를 토대로 800억 원 규모의 포용적금융 펀드를 만드는 등 총 1.6조 원을 출자해 5.4조 원 자(子)펀드 조성 등 역대급 출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도 다양한 임팩트 설계자들과 손을 맞잡고 사회혁신기술 펀드, 로컬 펀드 등에 출자할 계획이다.

임팩트 투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식으로

다시 <낭만닥터 김사부2>. 한 에피소드에서 국방장관이 교통사고로 긴급한 상황에 놓였다. 김사부는 이른바 '근본 없는' 수술로 환자를 진정 국면에 놓는다. 일부 동료들이 수술을 놓고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와 같이 안전과 확률 등을 따져 묻자, 김사부는 일갈한다. "살릴 수 있겠습니까? 먼저 그렇게 물었어야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도 돈이나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시골 병원에 있냐는 물음에 김사부는 답한다. "환자한테 필요하니까. 의사에게 필요한 게 환자 말고 더 있냐." 김사부의 낭만 혹은 개멋은 직업윤리는 물론 무엇이 진정한 가치인지 새삼 일깨운다.

임팩트 투자가 직접 사람 살리는 일은 아니지만, 투자를 포함한 금융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사회를 살리는 데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수익과 사회적가치를 동시에 이뤄내는 기업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 할 일도 아니다. 이익을 내는 일도 사회 안에 있기에 가능하다.

ⓒunsplash

영국 임팩트 투자 도매기금 빅소사이어티캐피탈(BSC) CEO 클리프 프라이어(Cliff Prior)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팩트 투자는 투자의 규모나 위험, 투자 기술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투자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기존 방식을 빌려 쓰는 건 한계가 있었다. BSC는 상품 개발, 대상 발굴 등 모든 과정에 자신만의 시각과 철학으로 접근한 덕에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방식의 투자를 폭넓게 진행했다. 누군가는 '근본 없는' 방식이라며 비판했겠지만, 자금 회수와 이익이 아닌 사회적가치와 임팩트 생태계에 대한 영향력을 핵심에 둔 판단이 옳았음은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다. BSC 평균 수익률은 약 4~6%대로 시중 금융상품에 견줘 떨어지지 않고 숱한 사회문제 해결에 마중물이 되고 있다. 김사부의 낭만에 '환자'와 '살림'이 핵심인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시장)에 낭만이 어딨느냐고? 적폐를 쌓은 것도 사람이듯, 적폐를 빼고 낭만을 심어 '사회적가치'를 꽃 피우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임팩트 투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나는 임팩트 투자를 때론 '낭만 투자'라고 부르고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때, 생명보다 돈벌이에 눈먼 투자가 횡행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우리 사회가 '권력을 권리라 착각하고 이권을 정의라 주장하는 사람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뒤로한 채 상대를 뭉개버려야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이것이 정녕 당신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낭만닥터 김사부2>에 대한 숱한 열광은 우리가 그동안 잃어버린 진짜 가치와 낭만을 필요로 하고 요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임팩트의 시대 혹은 낭만의 시대, 오기만 기다릴 게 아니고 우리가 만들면 된다. 개멋 좀 부리면서 만들자. 이렇게 말하는 낭만투자자 김사부도 나올 것이다.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 그러지. 좀 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그러고. 낭만 빼면 시체지. 또 내가." 그리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 임팩트 투자에 대한 좀 더 세밀하고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제현주 옐로우독 대표가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굿 비즈니스, 굿 머니]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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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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