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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자산화가 시민과 민주주의 힘을 키운다[굿, 파이낸스 ④] ‘사적’ 소유보다 ‘사회적’ 소유를 추동하는 사회적금융
  •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 승인 2019.11.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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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고향을 떠났던 그가 10년 만에 돌아왔다. 주민들이 함께 운영했던 마을회관 때문에 쫓겨났던 그였다. 보수적인 유지(지주)들과 교회가 그를 몰아냈다. 이른바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그는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작당에 나섰다. 마을(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회관을 열었다.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고, 詩를 낭독했다. 때론 학교가 됐다. 어제의 교사가 오늘 학생이 되고, 오늘의 학생이 내일 교사가 됐다. 모두의 공간이었다. 누구든 자유로이 드나들면서 놀고 토론했다.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커먼즈의 희극’ 같은 것. 사회(마을)가 함께 소유한 자산을 같이 누리면서 일상을 나누는 행복이 이 마을회관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절로,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 마라. _ 괴테 「용기」

이런 詩가 입을 타고 흘러나올 만했다. 명민한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지미스 홀>(2014) 이야기다. 1930년대 아일랜드가 배경이다. 마을회관 공식 이름은 아일랜드 혁명가 패트릭 피어스와 《아일랜드 노동사》 저자인 제임스 코널리에서 딴 ‘Pearse-Connolly Hall’이다. 기득권자들은 마을회관이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불경하게 여겼나 보다. 마을회관은 ‘커먼즈’였는데, (사적)소유에 익숙한 이들은 커먼즈를 국가와 시장에 대한 저항으로 봤다. 참고로 커먼즈를 단순히 공유재나 공동자산 등 소유에 국한된 뜻으로만 해석하는 건 좁다. 한 공동체가 함께 자원을 소유·운영하며 이를 위해 적용하는 규칙(규범), 과정과 시스템도 포함한 개념이다.

▲영화 <지미스 홀>의 스틸컷 ⓒwww.fetch.fm

사회 불평등에 맞서는 시민 불복종

독일 베를린市가 최근 주택 임대료를 5년간 묶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통과·발표했다. 2020년 1월 발효다. 2014년 이전 지어진 주택(약 150만 채)이 대상이다. 2022년부터는 물가를 반영해 인상이 가능하지만 상승 폭은 약 1.3%로 제한된다. 이런 파격적인 조처는 펄떡펄떡 뛰는 집값 때문이다. 유럽 다른 도시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했던 베를린은 2008년 이후 급격하게 변했다. 매맷값은 3배, 임대료는 2배, 개보수 주택은 4배가량 올랐다. 시가 공공주택을 민간 회사에 매각하면서 미쳐가는 집값에 기름을 부었다. 주거 불안이 커졌고 주말마다 세입자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주거 금융화가 만든 격차와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주거 공유화를 외쳤다. “거대 임대기업의 임대용 집들을 몰수하자”라는 시민청원 운동도 일어났다.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고작 인구 1.6%가 전국 토지의 20% 이상 소유한 것에 분노한 시민들은 혁명(1789 프랑스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프랑스혁명 3대 이념에 ‘평등(Egalité)’이 들어간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참고로 지금 한국은 토지 소유 상위 3%가 전체 개인토지의 56%를 차지한다.(2017년 말 기준) 지독한 편중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은 지나치게 현실 적합성을 갖고, 아이들은 공공연히 건물주가 꿈이라고 말한다. 기회는 타고난 행운에 따라 너무 심하게 조건 지어진다. 부든 빈곤이든, 대물림은 생애주기 내내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사회 불평등의 골은 깊어지고 악순환을 부른다.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베들린 전경 ⓒunsplash

시민자산화의 단짝, 사회적금융

한국에서도 골이 깊어지면서 다양한 궁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자산화’도 한 축이다(공동체자산화, 지역자산화 등으로도 불린다). 지역 기반 공동체(조직)가 건물 등 자산을 공동 소유·운영하고 이를 공동체에 재투자해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커먼즈를 만드는 전략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다. 어느 시골 할머니가 당연한 듯 말했다는 전설 같은 한 마디, ‘나만 잘살면 무슨 재민교’의 순환경제·사회적경제 버전이다.

지금, 사회적 권리문제는 가장 시급한 시민적 혹은 시대적 요청이 됐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에 홀렸던 우리는 그에 부합하는 부의 상징들(아파트 브랜드, 명품 등)에 집착했다. 내 것 네 것 따지느라 생각과 감정을 낭비했고 삶을 평가절하하고 자존감도 낮아졌다. 시민자산화는 단순히 공동자산 확보에 국한된 의미가 아니다. 나와 우리의 권리를 자각한 시민은 삶을 주체적으로 꾸릴 힘을 얻는다. 돈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은 더 나은 안전과 안정을 보장한다. 스스로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은 더 좋은 시도와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진짜’ 민영화다. 공공부문과 공유 자산에 대한 경제적 효율과 생산성 증진을 명분으로 내건 민영화의 민낯은 ‘사유화’였다. 신자유주의가 공공 자산을 사적 소유물로 만들면서 소유 구조 개혁으로 포장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다시 시민의 것으로 되돌리는 작업도 소유권을 손대야 한다.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사회적금융이다. 사회적금융은 시민자산화의 단짝이다.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산가치와 금융화에 삶을 담보로 잡히지 않으려면 사회적금융이 필요하다. 이에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도 시민자산화 방식의 사회적부동산 활성화를 중점사업 분야에 넣고 시민사회 자본과 융합을 통한 사회적가치 창출에 나서고 있다. 특히 도시재생과 사회주택 등 다양한 테마에 사회적금융이 스며들고 있다.

사적 소유를 넘어 시민 모두의 것으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진정한 발전을 위해 의사결정에 있어 대중이 폭넓고 깊이 있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권리로서 부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사적 소유 공간에 뺏긴 건 단순히 설 자리와 임대료뿐만이 아니었다. 정당한 권리를 뺏기고 무엇보다 열외의 삶을 살아야 했다. 과거 토지 소유가 귀족을 낳고, 산업적 소유권이 자본가의 힘을 키웠다. 지금, 사회적 소유권은 시민과 민주주의의 힘을 불릴 수 있다.

1997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 되면서 아파트 브랜드가 부상했다. 당시 한 아파트 브랜드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워 물적 자산에 의존한 인정욕구를 부추겼다. 이 나쁜 카피는 사는 곳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울타리 밖 사람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추동했다. 앞서 언급한 지미스 홀은 그것의 대척점이다. 지미스 홀은 공적개방과 사회적 소유 안에서 사적 자유와 공동의 즐거움을 누렸다. 지미스 홀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당신을 말해준다.

▲영화 <지미스 홀>의 스틸컷. 춤, 노래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상을 배울 수 있었던 지미의 회관은 계속 운영될 수 있을까? ⓒwww.fetch.fm

<지미스 홀>을 연출한 명민한 사회파 영화감독 켄 로치의 말로 맺어야겠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경제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시민자산화가 그렇다. 더하자면, 경제뿐 아니라 심리적 자원 확충을 통한 마음의 안정도 가질 수 있다. 내 것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없으니까. 그건 우리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것이니까.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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