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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 지배당한 세계, 금융에 스며든 사회성[굿, 파이낸스 ①] 금융을 논할 때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들
  •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 승인 2019.09.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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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혈맥에 비유되곤 합니다. 돈이 오가는 행위를 통해 기업을 비롯해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돕습니다. 금융은 따라서 사회 유지와 발전의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특히 순환은 금융의 중요한 작동원리입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이 죽듯이 돈이 돌지 않으면 사회가 작동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흐르게 하는 것이 금융의 기본 역할입니다.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핵심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것이 사회적금융입니다. 순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산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조직해나가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금융이 기존 금융 관행의 구심력을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사회적경제도 단번에 도약할 것입니다. 라이프인과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이 사회적금융에 대한 인식 확산과 접근성 향상을 돕기 위해 [굿, 파이낸스]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식의 폭을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요술 항아리>라는 동화가 있다. 상투적이지만 옛날 옛적 한 왕국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요술 항아리가 있었다. 무엇이든 하나를 안에 넣으면 두 개로 나오는 항아리였다. 천만다행하게도 왕이 현명해서 항아리를 잘 활용했다. 가뭄으로 기근이 들 것 같으면 곡식을 넣어 굶주림을 막았다. 한파가 닥치면 솜을 부풀려 백성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게 했다. 하지만 항아리 존재는 왕만 알았다. 왕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됐다. 왕자에게 유언을 남겼다. “다른 모든 것은 항아리에 넣어도 좋으나 단 하나, 돈을 절대 넣어선 안 된다.” 신신당부했지만 새 왕은 현명하지 않았다. 유언을 내팽개치고 돈을 항아리에 넣었다. 돈이 마구마구 나왔다. 새 왕은 그 돈으로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돈은 시중에도 풀렸다. 물가가 폭등하고 백성들은 돈놀이에 빠졌다. 돈 때문에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다. 국력 쇠퇴는 당연지사. 이 틈을 타 이웃 왕국이 냉큼 쳐들어왔다. 왕국은 망했다.

이 동화는 기실 정치경제 우화다. 왕(리더)이 현명해야 한다는 빤한 교훈을 얻었다면, 실망이다. 요술항아리는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별 영향력이 없는 장치)이다. 돈은 금융을 뜻한다. 즉 실물경제를 교란하고 능가하는 금융이 불러올 파국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넘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교란할 때 야기한 파국을 경험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11년 전, 9월 15일, 1850년 만들어진 세계 4위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이하 리먼)가 파산했다. 리먼 부채액은 당시 한국 돈으로 700조 원(6190억 달러).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과 이를 바탕에 둔 파생상품 연쇄 부실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리먼의 파산은 전 지구적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보아라, 파국이다.

 

금융화가 지른 파국, 금융위기

세계 금융위기는 자기증식 메커니즘을 장착한 금융의 비행(非行)에 대한 파열음이자 경고였다. 특히 비대해진 ‘경제의 금융화’가 빚은 참사였다.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쉽게 말하면 ‘돈놀이’다. 실물과 무관하게 돈이 돈을 낳는 현상이다. 실물에 기반해 경제를 뒷받침하던 금융이 울타리(규제)가 허술해지자 몸을 불렸다. 실물경제 조력자 역할을 했던 금융이 되레 그것을 지배하고, 순환 수단에서 목적의 자리로 탈바꿈했다. 기업도 제품과 서비스보다 금융에 더 몰두했다. 기업이익의 원천에 금융이 더 크게 자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주자본주의에 지배당하면서 비용 절감과 배당금 등을 통한 주가 부양에 목을 맸다. 금융화는 금융을 만신전에 올려놨다.

“미국경제에서 금융은 7퍼센트 정도를 차지하지만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약 25퍼센트를 가져간다. 반면 전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몫은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라나 포루하는 저서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금융은 최종 포식자 자리에 올라 사회의 몫까지 뺏었다. 세금과 임금 형태로 사회로 돌아가야 할 부가가치가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소수 이익을 불리는 데 활용됐다. 포루하는 덧붙였다. “금융은 지금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이 성장하자 기업은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 전체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경제에서 금융은 7퍼센트 정도를 차지하지만 전체 기업 수익 가운데 약 25퍼센트를 가져간다. 반면 전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몫은 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 Crown Business


부가가치 생산 기여도가 거의 없는 금융이 세계를 지배하자, 투자와 제품 개발, 혁신 등에 애썼던 기업가정신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금융’위기라는 머리표를 달고 있지만, 금융에 국한된 위기 이상이었다. 금융화의 재앙은 위기를 부른 자들이 아닌 전 인류에게 뿌려졌다. 위기유발자들은 천문학적인 퇴직금을 받거나 다른 자리를 꿰찼다. 단적으로 리먼 파산 당시 CEO였던 딕 풀드는 한 강연에서 금융위기 원인을 정부에게 돌리며 이런 말로 강연을 맺었다. “나도, 여러분도, 우리 모두 괜찮다. 인생을 즐겨라.” 700조 원 부채 책임을 전 인류에게 떠넘긴 자의 희희낙락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금융위기가 남긴 유산 중 하나는 질문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시스템을 그냥 놔둬도 좋은가? 이익은 소수가 갖고 위험과 책임은 왜 사회 전체가 져야 하는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위기 상황에서 제기된다.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때가 온다. 위기가 닥치거나 징조가 보일 때다. 이때 우리는 피를 흘릴지라도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질문이 왔을 때가 기회다.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금융(돈)에 대한 정체성을 묻게 됐다는 건 세계를 더 낫게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금융이란 무엇인가?

 

금융 안에 스며있었던 사회성

금융은 애초 사회성을 갖고 있었다. 화폐(돈)는 사회적 신뢰를 부여받은 산물이었다. 그 신뢰 덕분에 종잇조각을 모든 사람이 화폐라고 믿고 그 숫자가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화폐가 가진 공신력은 법이나 공권력이 보장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의 ‘믿음’에 근거할 뿐이다. 금융회사도 신용 창출이라는 매우 중요한 공적 기능을 위임받은 곳이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금융산업이나 조직의 이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가치)을 늘 고려해야 한다.

금융은 경제를 지원하는 수단 이전에 사회라는 우산 안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흔히 듣고 자란 말에 그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지 않았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사회 나고 금융 났지, 금융 나고 사회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는 사회성(공공성)과 이윤 사이에서 이윤을 택했다. 이수일이 외친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리도 좋더냐.” 금융에 내재된 사회성을 배반한 행위는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증명했다.

많은 이들이 세계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망가진 금융시스템을 제대로 수리한 것일까? 자본주의는 고쳐 쓸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금융위기 이후 ‘금융 불균형’이 누적돼 커지고 있다. 불균형 확대가 생산-소비-재생산이라는 자본 순환 생태계를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커지자 사회적 가치, 지속가능발전 등의 의제가 떠올랐다. 사회적금융도 그런 흐름 속에 있다. 사회적 가치와 관계를 지향하고 금융의 순환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금융은 사회적경제를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금융의 기본 역할은 돈과 권력(집단)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금융에 ‘사회적’이라는 레떼르를 붙일 필요 없이 금융 자체가 사회적금융이었어야 했다. 금융에게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장한몽》에서 심순애가 사랑하는 이수일을 버리고 장안갑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를 따라갔다가 이수일에게 돌아왔듯이. 다시 묻는다. 우리는 고장 난 금융을 수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가?

영국 경제학자로 빚에 기댄 은행신용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회신용론 창시자인 클리포드 더글러스의 말을 되새겨보자. “대안이 없는 곳일수록 근원적인 사유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금융은 가능하다. 국가보다 큰 개념이 사회라는 점도 상기하자. 소수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추구를 위한 사적 수단으로 전락한 금융을 공공재로 되돌려야 한다. 리먼 파산 등을 통해 우리는 ‘이익은 소수가 갖고 손실은 사회에 미루는’ 금융자본주의의 민낯을 목격했다. ‘사적’ 금융으로 전락한 금융을 심폐 소생하는 방안을 ‘사회적’ 금융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을 다룬 《붕괴》 저자이자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상품에는 분명히 정치가 개입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투즈는 물론 금융 구조를 만들어내는 정치력과 사회적 관습, 법률은 운동화나 스마트폰, 휘발유와 관련된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덧붙였다. 어떤 금융 구조와 시스템을 선택할 것인지도 본질적으로 정치적 선택이다. 그에 앞서 사회 구상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가?” 금융시스템은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산물이다. 우리 손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화폐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가치를 가지듯, 금융도 마찬가지다. 다시 묻는다.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기를 원하는가?

 

김이준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webmaster@lifei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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