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지역을 담다] '무등산 브루어리', 맥주에서 시작한 상상과 지역에서 가능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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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지역을 담다] '무등산 브루어리', 맥주에서 시작한 상상과 지역에서 가능한 일들
윤현석 컬쳐네트워크 대표 인터뷰
  • 2021.09.06 10:00
  • by 노윤정 기자

흔히 기업의 브랜드가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빗대어 보면 지역 브랜드는 지역의 경쟁력이 된다. 그중 지역성을 담은 지역맥주는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을 두게 하고 지역에 사람과 자본이 유입되게 하면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역의 경제·문화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맥주 양조장은 단순히 맥주를 양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컬쳐네트워크가 지역맥주 양조에 주목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컬쳐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무등산 브루어리는 광주라는 지역의 문화와 이야기를 맥주에 담았다. 지역맥주가 불러올 수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윤현석 대표를 만나 맥주에서 시작한 즐거운 상상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 무등산 브루어리 전경. ⓒ라이프인
▲ 무등산 브루어리 전경. ⓒ라이프인

동명동은 한때 광주에서 고급주택들이 들어선 부촌으로 잘 알려져 있던 지역이다. 그러나 인근에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많은 인구가 빠져나가 원도심화됐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古)주택들에 매력을 느낀 창업가들이 하나둘 다시 동명동으로 모여들고 개성 있는 카페, 식당 등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동명동의 한 주택가, 그곳 골목골목을 지나 걸어가다 보면 "여기에 정말 양조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쯤 목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귀여운 수달 그림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물, 컬쳐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무등산 브루어리다.

2013년 설립된 컬쳐네트워크는 유무형의 지역 자원을 활용하여 침체된 지역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제안하는 회사다. 문화경영과 도시공학을 전공한 윤현석 대표는 문화기획을 통해 지역 자원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여 지역에 활기를 더하는 일에 일조해왔다. 윤 대표는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소개되는 '1913송정역시장 리모델링 사업'에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단장을 맡아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지역 콘텐츠를 '제조'하고자 나섰다.

무등산 브루어리는 로컬에서 문화기획을 해온 윤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그만큼 지역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일단 양조장 위치만 보더라도, 주택가에 자리하여 지역주민들의 접근성과 주민들과의 연결성을 높였다. 또한 브루어리 이름뿐 아니라 양조한 맥주에도 지역색이 잘 드러난 이름을 붙였다. 광주의 특산물인 무등산 수박이 들어간 '워매IPA'는 수박을 뜻하는 영단어 '워터멜론'(Watermelon)과 전라도 사투리 '워매', 이 두 가지 의미를 중의적으로 활용한 이름이다. 그 외에도 '무등산 필스너', '광산 바이젠' 등의 맥주 이름도 지역명을 따왔으며 '평화페일에일'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광주에서 난 재료뿐 아니라 광주의 이야기까지 맥주에 더했다. 브루어리의 상징인 수달은 무등산 국립공원의 깃대종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지역적인 요소들을 담아내는 작업 전반을 지역예술가, 창작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2017년 개업 이후 지역을 '사람들이 찾는 마을'로 만들어온 무등산 브루어리. 현재 무등산 브루어리는 첫 번째 장(章)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지역에서 펼칠 두 번째 장을 준비 중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윤 대표를 만나 지역맥주와 로컬 비즈니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윤현석 컬쳐네트워크 대표. ⓒ라이프인
▲ 윤현석 컬쳐네트워크 대표. ⓒ라이프인

로컬 콘텐츠 사업으로 지역맥주 양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일단 수제맥주는 가장 로컬성을 가진 콘텐츠 중 하나다. 본래 양조산업은 철저하게 로컬 중심이다. 또, 예전에 연구소에서 광주라는 도시를 마케팅하는 과업을 수행할 때, 광주가 전국에서 가장 밀 생산량이 많은 곡창지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도 우리 밀로 만든 술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그게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국내에서 수제맥주 인기가 올라가고 소규모 양조장의 외부 유통이 가능하도록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수제맥주 시장이 커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중 하나이지 않나.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대중적으로 즐기는 술인 만큼, 맛있는 맥주가 있다고 하면 일부러 그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무등산 브루어리 맥주가 광주를 찾아오는 이유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앵커 스토어의 역할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동네로 찾아오고, 그렇게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지역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이다.

워매IPA, 무등산 필스너와 같은 상품 이름만 봐도 맥주에 지역색을 담기 위해 고심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무등산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에 어떤 지역 문화를 담고자 했는가.

무등산 브루어리의 맥주는 광주라는 지역에서 난 자원들을 연결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문화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우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광주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물인 무등산 수박을 재료로 사용하여 맥주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에 관심이 없으면 로컬에 대한 이해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로컬 비즈니스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그 지역 땅에서 나는 것들, 그리고 지역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역의 토지, 사람에게서 난 것들을 맥주에 담고자 했다.

지역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지역창작자, 지역창업가,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에서 각자 자기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굉장한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브루어리 옆에 식품을 기획하는 장소를 만들고, 또 그 옆에 디자인 상품을 만드는 아트워크숍이 들어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을에 하나의 거리(Street)가 생기고, 그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비즈니스를 수행하면서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이게 산업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클러스터다.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문화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서울로 많이 간다. 아니, 그냥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향한다. 광주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지역 안에서 여러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고, 굳이 서울로 떠나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주고 싶다.
우리 사업은 미국의 포틀랜드라는 도시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포틀랜드는 인구 60만 명 규모의 소도시인데, 도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1960년대 미국이 고속도로와 자동차 산업 중심으로 성장할 때, 포틀랜드는 시민들의 힘으로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중단시키고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 투자했다(1976년 포틀랜드 시민들은 시장선거에서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던 닐 골드 슈미츠에게 표를 주었다. -편집자 주-). 그런데 그렇게 개발이 아닌 다른 가치에 투자한 지역에 나이키 본사, 아디다스 북미 지사, 인텔 본사, 컬럼비아 본사가 모여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 대너도 포틀랜드에서 시작했다. 로컬 커뮤니티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따라 작은 지역에서도 충분히 그 나름대로의 스토리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시인 것이다. 수제맥주의 경우에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제맥주 신(Scene)이 포틀랜드 신이다. 자기들만의 맥주를 만들고 맥아도 직접 개발하면서 철저하게 로컬을 지향한다. 역설적이게도 로컬을 지향하다 보니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씬이 됐다.

▲ 무등산 브루어리의 워매IPA. ⓒ컬쳐네트워크
▲ 무등산 브루어리의 워매IPA. ⓒ컬쳐네트워크

많은 사람들이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시도는 하고 있는데 사실 성공 사례가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고 느껴진다. 지역 콘텐츠를 개발할 때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까.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의 자서전에 "나는 작고 조용한 도시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자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구절이 있다. 자신이 자란 곳, 자기 뿌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그 영감을 자기 손으로 구현해내는 장인정신(Craftsmanship)이 중요하다. 자신만의 독창성(Originality)을 만드는 것이다. 로컬 비즈니스는 결국 장인정신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실험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한 실험과 도전의 지향점이 개인이나 개별 기업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소통하며 같이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20년쯤 지난 후에 도시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않나.

광주를 떠나 새로운 지역에 양조장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무등산 브루어리 시즌2'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인가.

컬쳐네트워크는 계속 광주에 있고 브루어리만 이전을 준비 중이다. 이곳은 주택을 개조한 곳이다 보니 설비를 갖출 공간이 넓지는 않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했듯이 식품 기획 등 다른 도심 제조도 함께하기 위해, 조금 더 확장된 공장 형성이 가능한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기존 맥주 라인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새로운 지역의 지역색을 담은 맥주 라인과 시즈널 메뉴를 만들 예정이다. 그 지역에서 나는 로컬푸드로 맥주와 어울리는 안주를 만들거나, 반대로 유명한 지역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를 개발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지역맥주를 만들면서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맥주를 마시고, 우리가 만든 옷을 입고, 우리가 제안하는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지향하는 유니버스(Universe, 세계관)가 구현될 수 있는 지역을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지역에서 독창성을 바탕으로 하여 장인정신을 통해서 다양한 것들을 만들고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등산 브루어리를 오픈해서 운영한 기간이 3년 정도 되었다. 기획 기간까지 따지면 5~6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방향성을 잡아 온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놓치는 부분이 더 많았을 것이다. 정해진 패턴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일에 계속 도전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로컬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일단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계속 도전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지 않도록 해줄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커뮤니티다. 포틀랜드에서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을 커뮤니티라는 말보다 네이버후드(Neighbourhood), 이웃이라고 한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도 공동체 회복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진 만큼 공동체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조금 더 유연하고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로컬 크리에이터 신을 보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더라도 어떤 일이 있으면 모여서 서로의 일을 지지해주고,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않더라도 SNS를 통해서 활발하게 교류한다. 나는 이런 것도 공동체 문화라고 생각한다.

컬쳐네트워크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구현된 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제주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담은 '아일랜드 리서치'라는 의류 브랜드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섬이라는 지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지역소멸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섬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고 있다. 아일랜드 리서치가 그렇게 활기를 잃은 섬 지역에 들어가서 맥주 양조도 하고, 지역에서 수십 년의 경력을 쌓아온 어르신들과 협업하여 옷이나 음식도 만들고,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패션과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오래된 빈집이나 빈 창고를 활용해서 로컬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다 보면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은 젊은 친구들도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그 친구들이 지역에 유입될 수도 있고. 그런 다양한 상상들을 해보면서 우리가 구현하고 싶은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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