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천에 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찾은 '취향', 취향 따라 만든 아지트 '아워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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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천에 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찾은 '취향', 취향 따라 만든 아지트 '아워테이스트'
아워테이스트 김성미 대표 인터뷰
  • 2021.05.12 08:00
  • by 노윤정 기자

유안진 시인의 표현처럼 '가을도 봄'인 듯 느낄 정도로 봄 정취가 가득한 지역, 춘천. 춘천은 호수와 강, 산을 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다. 동시에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 활발한 강원도에 속하며, 사회혁신센터가 설립되어 민간에서 지역성을 띤 사업들이 일어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리고 수도권 GRDP(지역 내 총생산)가 전국 대비 52%에 달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역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춘천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계절 봄, 춘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며 지역에서 다양한 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세 곳(책방마실·아워테이스트·아뜰리에포노마드)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역시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편집자 주]

 

▲ 김성미 아워테이스트 대표. ⓒ라이프인
▲ 김성미 아워테이스트 대표. ⓒ라이프인

바쁘고 팍팍한 일상에 지칠 때면 문득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또 어느 날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일상을 잠시 멈춘 채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고 하여 과감히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워테이스트의 김성미 대표는 과감하게 새로운 여정,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김 대표의 이전 직업은 기자. 언론사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퇴직금을 털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신의 미래를 다시 고민해보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김 대표는 농부들과 만나며 지역 식자재의 가치에 눈을 떴고, 무엇보다 먹는 즐거움,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좋은 식자재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한번 마음먹으면 돌진하는 편"이라고 설명한 김 대표는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식(食)공간을 차리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요리와 식자재에 대해 배울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곳이 춘천의 '어쩌다 농부'다. 어쩌다 농부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여 지역색을 살린 음식을 선보이는 로컬크리에이터 식당이다. 김 대표가 나고 자란 고향은 충청남도 부여이고 직장 생활을 한 곳은 서울이다. 춘천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어쩌다 농부의 구인 공고 하나 보고 바로 춘천으로 향했다. 어쩌다 농부에서 3개월가량 일하며 요식업의 기본기를 익혔고, 숍인숍(Shop in Shop, 가게 안의 가게) 제안을 받아서 직접 만든 스페인 요리를 선보이며 창업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때 운영했던 숍이 아워테이스트 시즌1인 셈. 이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청년 창업 지원사업에 참여하여 지금의 옥천동 주택가 자리에 식당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빼곡히 진열된 와인과 낭만적 선율의 음악이 반겨주고, 눈길이 닿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빛 식물들과 이국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림들이 놓여 있는 곳. 김성미 대표가 주인장의 취향이 곳곳에 묻어있는 공간 아워테이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아워테이스트 내부 모습. 테이블 옆에 피아노가 놓여 있고, 곳곳에 김성미 대표의 취향을 반영한 그림들이 자리해 있다. ⓒ라이프인
▲ 아워테이스트 내부 모습. 테이블 옆에 피아노가 놓여 있고, 곳곳에 김성미 대표의 취향을 반영한 그림들이 자리해 있다. ⓒ라이프인

아워테이스트 소개 중 '결이 비슷한 사람들의 취향 아지트'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어떤 의미인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맛의 기준이 비슷한 사람들은 취향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비슷한 음식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음식 취향뿐만 아니라 다른 취향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아워테이스트를 차렸다. 아워테이스트라는 이름도 단순히 식사하는 공간이 아니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비정기적으로 '취향살롱' 같은 모임도 진행했었다.

취향살롱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된 모임인가?

가장 최근에 진행한 모임은 와인 시음회였는데, 그냥 와인을 맛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을 매개로 떠오르는 책이나 음악, 미술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또, 춘천시문화재단과 함께 '월요일 큐레이터'라는 타이틀로 매주 모여 다양한 주제로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었다. 또한, SNS에 각자 다룰 수 있는 악기를 가져와서 함께 연주해보자는 공지를 올리는 식으로 비공식적인 모임을 연 적도 있다.

진행한 모임에서 다룬 분야도 예술 계통이고, 아워테이스트 SNS에도 카테고리가 '예술'로 분류되어 있다. 원래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많았는지?

그렇다. 전문가처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 쪽에 관심도 많고, 아워테이스트를 문화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래서 피아노도 가져다 놓았다. 피아노를 두면, 피아노에 관심 있는 손님들이 피아노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혹은 내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있는데 잘 치지는 못한다.(웃음) 미술의 경우 관심이 많은 분야다. 그래서 최근에 그림 전시에 조금 더 신경 썼다. 특히 피카소나 호안 미로처럼 스페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서, 손님들이 식사하는 동안 문화적인 경험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영화 쪽에도 관심이 있나? 영화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 방송 코너에 출연 중이라고 들었다.

맞다. '노지현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지역방송의 한 코너에 출연하고 있다. 영화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 쪽에 관심이 많고 방송 분야 경험이 조금 있다 보니까 우연하고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2년 넘게 프로그램과 함께하면서 지역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고 있다.

▲ 아워테이스트에서 여름 시즌에 선보이는 하몽 바질페스토 파스타. ⓒ아워테이스트
▲ 아워테이스트에서 여름 시즌에 선보이는 하몽 바질페스토 파스타. ⓒ아워테이스트

연고가 없는 춘천에서 일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식(食)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고 요리를 배우기 위해 찾아보다가 '어쩌다 농부'를 알게 됐다. 그래서 춘천에 왔다. 그렇게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이후 다른 곳으로 다시 이주하지 않고 춘천에 정착한 이유는 분명하다. 춘천이라는 지역이 나에게는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춘천 사람들은 여유롭고 저녁을 즐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처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분들 중 결이 잘 맞는 분들이 많았다. 사람이 어떤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의지할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나. 느슨한 연대를 할 수 있는 지역인 것 같아서 이렇게 마음 붙이고 정착했다. 더불어 28만 명 정도 되는 인구수와 대학교가 들어와 있어 젊은 소비층이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고려했다.

지역에서 창업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내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창업가의 지향점, 자신의 가치관이 지역과 잘 맞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춘천으로 왔던 시기에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아워테이스트를 기획할 때 수익적인 측면에 기준을 두진 않았다. 식공간이 중심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지향은 스페인 문화가 생소한 춘천 지역 분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경험한 스페인 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페인 요리, 스페인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매개로 또 다른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그렇게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매일매일 삶이 풍성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역색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계획이 있다면 먼저 한두 달 살아보면서 지역색을 파악하고,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지역인지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운 좋게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정착을 수월하게 한 편이다.

아워테이스트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한다는 느낌이다.

강제성이나 강한 목적성이 부여된 연대를 지향하는 성향이 아니다. 나는 느슨한 연대를 바란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동체 안에 있되,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을 때는 모였다가 다시 느슨하게 흩어질 수 있는 연대 말이다. 한 발 떨어져서 응원하다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때는 뭉치기도 하는 방식의 연대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아워테이스트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취향이 비슷한 손님들이 이 안에서 만난 뒤, 그 인연을 바탕으로 다른 공간에서도 모이는 모습을 봤을 때다. 예를 들자면, 춘천에 새로 이주해온 뮤지션 커플 손님과 노을집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는 또 다른 손님이 아워테이스트에서 인연을 맺어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연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아워테이스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다른 공간에서 모여 활동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바란 모습이 이런 것이었지'라고 생각했다. 모인 사람들의 관심사를 연결하고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 매개의 역할을 아워테이스트가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라이프인
ⓒ라이프인

그렇다면 대표님에게 아워테이스트는 어떤 공간인가?

나, 내가 하는 요리, 공간이 일체화된 장소인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요리에서도 드러나고 공간의 모든 부분에서 느껴지는 공간, 나를 구현하는 공간이라고 할까? 식(食)으로 시작해서 의(衣)와 주(住), 생활 양식 전반을 다루는 공간으로 아워테이스트를 확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부분들이 있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처럼 아워테이스트도 서서히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워테이스트에서 선보인 앤초비 피퀴요 페퍼 빠에야. ⓒ아워테이스트
▲아워테이스트에서 선보인 앤초비 피퀴요 페퍼 빠에야. ⓒ아워테이스트

'춘천살이'는 어떤지 궁금하다. 실제로 지역에 살아보니 어떠한가?

2018년도에 춘천에 왔으니까 춘천살이 4년 차다. 그런데 해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처음 아워테이스트를 냈을 때는 춘천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모든 순간들이 선물 같고 꿈처럼 느껴졌다. 여행하는 것처럼 내 일상을 꾸릴 수 있다는 건 외지에서 사업하면서 느끼는 큰 장점 중 하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여행이 아닌 생활이 되다 보니까 현실적인 조건들도 중요해지더라. 낭만적인 시선도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도전하고자 마음먹으면 무작정 달려드는 스타일이라서 일단 이 길로 돌진하고 봤는데, 현실과 부딪히면서 배워가는 부분들이 있다.

추진력과 용기가 대단하다. 순례길로 떠나는 것이나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것이나 창업이나, 사실 나도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웃음) 그래도 무작정 뛰어들었던 걸 후회하진 않는다. 시기를 놓치면 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지 않나. 그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남의 시선이나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일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가는 길의 방향에 의문이 든다면 잠시 멈춰봐도 좋다. 사잇길로 빠져도 괜찮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방향을 다시 잡아보는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 갈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김성미 대표. ⓒ라이프인
▲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김성미 대표. ⓒ라이프인

향후 계획이 있다면?

코로나19 때문에 자영업을 하기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한다. 일단은 스페인 요리나 문화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맞추어 운영하고, 상황이 안정되면 의와 주,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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