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뉴노멀⑨] 도시청년의 시골살이, 약일까 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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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뉴노멀⑨] 도시청년의 시골살이, 약일까 독일까
  • 2021.12.14 08:00
  • by 전영수 교수(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전 국토에서 수도권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다. 이 좁은 지역에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는 주택난 등 각종 도시문제로 과밀화 해소를 이야기할 때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로 인한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맞닥뜨리고 있다. 이러한 지역 격차는 인구문제만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다. 수도권에 자원과 인프라가 쏠리니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이 몰리니 또 자원이 쏠린다. 이 과정에서 경제는 물론 복지, 의료,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격차가 생긴다. 이와 같은 지역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균형발전을 논의하고 정책화해왔지만 여전히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의 삶은 불균형하다. 이제는 지역활성화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지역활성화의 '뉴노멀'이 필요하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가 지역활성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제언을 전한다. [편집자 주]

 

▲ 서천군의 청년 시골정착 프로젝트 '삶기술학교'.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작은 시골마을 한산면에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며 나만의 삶기술로 더불어 살아가는 자립공동체로, 삶기술학교를 통해 도시청년 60명이 한산지역 마을에 정착했으며 이 가운데 15개 팀이 창업하고 빈집 20곳 이상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2021년 1월 기준). ⓒ서천군
▲ 서천군의 청년 시골정착 프로젝트 '삶기술학교'.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작은 시골마을 한산면에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며 나만의 삶기술로 더불어 살아가는 자립공동체로, 삶기술학교를 통해 도시청년 60명이 한산지역 마을에 정착했으며 이 가운데 15개 팀이 창업하고 빈집 20곳 이상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2021년 1월 기준). ⓒ서천군

농촌 청년이 사라진다. 경향성은 심화된다. 고령화 비율(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도 청년 인구의 농촌정주가 줄어든 영향이 지배적이다. 분자 증가가 일차적이나 그보단 추세적인 분모 감소가 고령화 비율을 끌어올린다. 청년을 중심으로 한 자연감소(출생률 감소)와 사회감소(전출 인구 증가)가 복합적으로 인구 감소를 견인한 결과다. 실제로 2019년 농림어가의 고령화 비율은 2017년 42.5%에서 46.6%까지 뛰었다(통계청). 전체 평균(14.9%)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농촌권역의 청년 유출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육, 취업 등을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도시로 향한다. 반면 들어오는 이삿짐은 기대하기 어렵다. 귀농, 귀향 등 귀촌 행렬이 고무적이기는 하나, 일반적이진 않다. 가속화된 청년 유출 현상을 벌충하기에는 턱없이 적고 뜸하다. 하여, 농촌은 청년인구에 목마르다.  

방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유출은 저지하고 유입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대개는 동시다발로 추진된다. 우선순위를 둘 만큼의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참고할 만한 선행 경험도 없어서다. 그럼에도 현실은 사뭇 다르다. 도시로 청년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동시다발 추진을 계속 노력하되 당장은 지역으로의 청년 전입에 더 공을 들인다. 청년 위주의 '시골→도시'로의 사회전출은 교육, 취업 등 불가피하며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로서, 이를 되돌리기란 어려울뿐더러 수많은 선제조건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고 살도록 만들자면 그들이 원하는 정주환경을 도시만큼 제공하는 것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가장 힘든 부분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다. 이는 지역도 정책도 아닌 시장, 기업의 역할인 탓에 읍소는 해도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시골살이의 의지와 희망이 확인된 도시청년을 유입하는 쪽이 더 즉각적이고 현실적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며 빡빡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을 원하는 청년이 늘어난 현상도 고무적이다. 잘만 유도하면 지역활력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 고령공화국 농촌의 냉엄한 현실, '청년증발 딜레마'

▲ 경상북도 상주 호음정산지구 주민들이 죽리마을을 방문해 새뜰마을사업을 둘러봤다. ⓒ증평군
▲ 경상북도 상주 호음정산지구 주민들이 죽리마을을 방문해 새뜰마을사업을 둘러봤다. ⓒ증평군

모범적인 선행사례는 속속 발굴된다. 한 사례를 보자. 충북 증평군의 죽리마을 이야기다. 빈집 활용을 위한 활성화 사업인 '새뜰마을사업'(2014년 선정)과 '귀농인의 집'(2015년 선정)이 계기가 되어 지역활성화가 본격화됐다. 최대 성과는 인구 유입이다. 마을주민은 2012년 125명에서 2021년 4월 150명으로 늘었다. 덕분에 인근에 있는 초등학생은 2020년 84명에서 2021년 100명을 넘겼다. 분반을 할 정도로 학교가 활기를 되찾았다. 15채였던 빈집도 사라졌다. 개성적인 공원과 새롭게 정주한 이웃이 생겨났다. 변신에 성공하며 관광객도 늘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 연 2,000여 명이 찾아왔다. 2019년에는 방문객 숫자가 약 4,000명까지 증가했다. 빈집 주인을 찾아 설득하며 유휴공간에 숨길을 불어넣은 덕이다.

도시청년 지역정착 프로젝트는 다양해지고 있다. 뚜렷한 조류는 도시청년의 시골살이가 일종의 정책 단위 메뉴로 제도화됐다는 점이다. 정책지원을 통한 양적 기반의 결과 유도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사실 취약공간에의 청년 파견은 역사가 길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때 지식인, 간부, 청년을 농촌지역에 파견한 하방(下方) 정책이 대표적이다. 시진핑 주석이 청년 시절 7년간 토굴생활을 한 배경에도 하방 정책이 있다. 결은 다르나 미국의 아메리코(AmeriCorps)도 비슷한 맥락이다. 연방차원의 자원봉사단체로 연인원 8만여 명의 도시청년(대졸자 중심)이 전국의 빈민·농촌지역에 파견돼 일하며, 학비와 생활비 등을 장학금으로 제공받는 구조다. 일본에서는 지역부흥협력대(地域おこし協力隊)라는 중앙정책이 '도시청년 시골파견'을 도맡는다. 노인과 청년, 농촌과 도시의 공생해법을 찾는 지역 살리기 프로그램이다. 2009년 시작된 이 정책은 2040세대 도시청년을 대상으로 최장 3년간 준공무원 신분을 부여하며 연봉 200만~300만 엔을 지급한다. 특이한 점은 임기 종료 후에도 약 60%는 해당 지역에 정착한다는 통계 결과다(총무성, 2015년). 지역부흥협력대원으로서 열도 곳곳에 파견되는 인원은 연간 5,000명 이상이다.

한국도 본격적이다. 도시청년의 지역 파견이라는 유사한 취지를 갖는 사업이 급증했다. 중앙부처, 지자체, 기업 등의 참여 확대로 비슷한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다만, 이름뿐인 사업도 적지 않다. 한때의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그라질, 그저 그런 정책으로 전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청년 시골살이가 애초의 지향성과를 담보하도록 섬세한 제도·정책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균형발전론을 그토록 부르짖었건만 그 결과가 역대 최대의 도농불균형이라는 점이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사업 초기라 평가는 섣부르나, 많은 지역에서 여전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삐거덕거리는 경우가 보인다. 이왕 시작했고 방향도 긍정적이면, 최대한 그 흐름과 분위기를 농익혀 성과를 내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엇박자 속 사업실패 우려, '청년×행정×지역'의 대안셈법

▲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교수. 본인 제공.

정리하면 '도시청년 시골살이'를 향한 염려는 단순한 기우(杞憂)일 수 없다. 약(藥)인줄 알았더니 자칫 독(毒)일 수 있어 우려된다. 정주실패가 야기할 새로운 지역문제가 그렇다. 전통시장의 청년몰처럼 재차 슬럼화되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만 해도 총론호평 속 각론갈등이 적지 않다. 먼저, 청년 문제다. 면밀한 준비 없이 상황 논리로 시골살이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호기롭게 덤볐으나 목적이 '정주'가 아닌 '스펙'이라면 시골살이는 징역살이와 마찬가지다. 사업 기간을 못 채우는 중도포기, 중간이탈은 의외로 많다. 어정쩡한 기대와 변화는 냉엄한 지역환경과 만나 자포자기를 낳는다. 지역으로서는 떠나버린 빈자리의 황망함과 박탈감이 커진다. 이러한 경험이 늘어나면 지역사회가 느끼는 배신감과 박탈감이 새로운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지역도 문제가 많다. 도시청년이 온다고 지역재생이 저절로 일궈지는 것은 아니다. 빡빡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살이로 새로운 삶을 꿈꾸는 도시청년의 도전을 응원하기보다 악용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 도시청년을 이용만 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하고 부리려는 불량지역에 대한 원성이 높다. 자율권과 선택권을 주지 않고 지자체가 하향식(Top-down)으로 모든 걸 결정하려고 하는 케케묵은 관성도 지적된다. 방임과 무시도 도시청년의 에너지와 혁신력을 훼손한다. 때문에 도시청년이 어느 지역에 파견되느냐에 따라 사업 성과가 현격하게 갈린다는 것이 중론이다. 귀중한 시간을 허투루 썼다는 후기도 많다. 사람을 불렀으면 상응하는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먼저인데 예산사업이니 무조건 따고 보는 지역이라면 희망은 없다. 또, 부업 금지로 인해 임기 종료 후 호구지책이 단절되는 문제도 현실이다. 대부분 사업의 목적성을 잃어버린 경우다. 도시청년은 행정조역이 아닌 잠재주민임을 자주 잊는다.

힌트는 현장에 있다. 이해당사자인 청년과 주민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원하는 현장 목소리를 담아내 끝없이 재조정하는 수뿐이다. 청년 인구를 유치하려는 고육지책에 청년과 지역이 빠지면 무의미하다. 도시청년의 필요와 지역사회의 요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정책이라면 곤란하다. 일례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는데 농업창업자금 혹은 농지대출을 해주는 식이다. 취업지원도 마찬가지로 단기계약직, 인턴십 일자리는 도시청년의 니즈와 맞지 않다. 역시 전시·행정적 사고체계가 만들어낸 엇박자다. 달라진 가치관을 지닌 청년 욕구를 책상머리 행정의 판단으로 충족시키기는 힘들다. 도시청년의 자질과 능력, 지역행정의 체제와 본심, 지역주민의 공감 및 협력이 '청년×행정×지역'의 셈법으로 연결되는 것이 관건이다. 아니라면 미스매칭의 갈등만 낳고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골살이는 청년의 배경, 의향, 환경에 맞추어 정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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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교수(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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