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라, 당신의 세계는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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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라, 당신의 세계는 공정한가?
[사회적경제 ‘쨈’있는 인터뷰(8)]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코디네이터 임영신씨
  • 2017.11.27 15:30
  • by 강찬호 기자
임영신씨는 화성시 봉담읍에 거주하면서 공정한 마을을 만드는 일에 힘쓰고 있다. 동시에 그가 가진 활동의 연결망을 통해 세상이 공정해지도록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코디네이터’라는 직책을 만나다

경기도가 지난 9월26일 개최된 경기도공정무역포럼에서 공정무역도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현장에는 임영신씨도 있었고,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 ‘코디네이터’로 소개되었다. 국내 1호라는 ‘소개’와 함께. 궁금했다. 코디네이터 역할에 대해. 통화와 문자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동의는 받았지만 일정은 바로 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매우 바쁜 일정을 살고 있다고 짐작했다. 11월24일 문자가 왔다. 마침 여의도에 왔고, 오후에 시간이 가능하다고. 가칭 ‘사회적참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이었고, 통과의 현장을 지켜보느라 에너지를 쓴 상황, 인터뷰 준비에는 여력이 없었다. 연말로 향하는 11월 후반, 인터뷰를 붙들어야 했다. 문자로 시간을 조정하고, 이날 오후 3시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나기로 했다. 바쁜 걸음을 했지만, 10여분 늦게 도착했고 혁신파크 내 카페에서 만났다.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 그곳에는 ‘페어라이프센터’가 있다

임영신씨 부부에 대한 기사가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소개됐다. 부부는 화성시 봉담읍 동화리에 살고 있다. 남편은 목사이고 작은 교회인 더불어숲동산교회를 이끌고 있다. 교회는 ‘페어라이프센터’(Fair Life Center)와 이웃하고 있다. 페어라이프센터는 마을서재, 마을카페, 어린이도서관으로 구성돼 있다. 교회나, 페이라이프센터는 마을 커뮤니티센터, 공간이었다. 교회는 1003호, 페어라이프센터는 1002호. 건물 10층에 있다. 임씨 부부가 이곳에 머문 지는 올해로 8년째이다. 3층에는 미용실이 있다. 미용실은 마을 비공식 소통 공간이고, 스피커다. 10층은 미용실로부터 ‘인정’받은 공간이다. “마을의 어떤 문제가 발생이 되면 10층에 가봐라” 한다. 미용실로부터 인정 받는다는 것, 그것은 마을 주민으로, 이웃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증거다. 낯선 이로 만나, 이웃이 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역사가 이 말속에 담겨 있고, 숨겨 있다. 임씨는 페어라이프센터를 거점 삼아서 공정한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프로젝트라고 표현해도 되고, 어떤 꿈을 이야기하며 실현해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지역 활동, 공정무역마을운동이나 활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임씨는 ‘뭐라고’ 지정하는 것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교회, 센터에서 맺은 인연으로 자라고 성장하는 청소년들이 임씨를 부르는 호칭은 ‘강물샘’이다. 흘러가면 그 뿐이지, 가두고 제한하는 어떤 ‘울타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페어라이프센터는 마을커뮤니티센터, 사랑방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계공정무역마을위원회 루이스 헬러 대표가 방문했다.

이곳의 청소년들이 ‘드디어’ 봉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오는 12월10일이다. 세월호가족들로 이뤄진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과 함께 한다. 이곳 청소년들은 안산에 방문해 공연한 경험도 있고, 청계천에 열린 세월호 국민대회 무대에서 가족극단 공연의 앤딩곡 ‘기억할게 0416’을 부른 경험도 있다. 아이들이 만든 노래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봉담에 공연을 유치하고, 도전하게 됐다. 주도는 아이들이 하고 있다. 240석 규모의 공연이고, 현재 140만원의 티켓 판매금을 모았다. 이 속도면 티켓은 곧 매진되지 않을까. 이날 공연장소는 교회 예배당이 공연장으로 열린다. 근사한 개방이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인생에서 찾아오는 질문들은 변화와 성장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임씨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임씨의 주무대는 봉담읍이다. 인구 6만5천, 곧 7만의 도시이다. 남편이 목사로서 교회 사역을 하고 있어 그 인연으로 화성시에 정착했다. 어느덧 시간은 8년. 임씨는 초기에 낯선 이곳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봉담읍도 위성도시 주변부의 어느 택지개발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화 등 기반시설은 약하고 아파트만 덩그러니 놓인 특색 없는 황량한 주거 풍광. 초기 정착 단계에서는 ‘이매진피스’ 동료들이 먼 길을 달려와 종종 곁을 지켜주었고, 힘이 되었다. 이매진피스는 임씨가 관계를 맺고 있는 네트워크로, 평화 활동을 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결망이다.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갔다. 삶과 생활에서 오는 질문들이었으리라.

임씨는 ‘공정여행’ 활동가이다. 공정여행 불모지에서 공정여행을 개척해 온 이다. 임씨는 94년부터 2002년까지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 한 참 우리사회에서 소위, 잘 나가는 NGO영역이었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미친듯이 일하면서 사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봉착했다. 인생의 여정에서 찾아오는 어떤 전환점을 묻는 질문이었다. 회피하지 않았고, 그 질문의 답을 쫓은 결과는 ‘1인 활동가’였다.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에서 온 전환이었으리라. 그리고 2003년 이라크 분쟁지역으로 떠났다. 분쟁지역 평화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현장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됐다. 조직에 속하지 않더라도 개인활동가로서 아젠더를 만들고, 팀을 이뤄가며 네트워크로 활동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기존에 일하던 조직, 사회로부터 탈출하고 도망쳐 오는 자유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현장과 맺어지는 삶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며 흘러가는 삶, 그 여정이 임씨의 삶의 스타일 아니었을까.

분쟁지역 평화 활동을 하면서, ‘여행’과 새롭게 마주하고, ‘공정여행’을 상상하다

그 여정은 곧 여행과 만났고, 여행 그 자체였다.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분쟁지역을 찾아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엔지오를 보면서, 기존에 갖고 있었던 엔지오 활동가의 역할에 대해서 질문해 볼 수 있었다. 분쟁지역 국제활동을 하면서 만난 성숙한 여행자들과의 동행, 교류의 경험은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여행을 관광으로 소비하며 온갖 추태를 부리는 국내 여행의 방식에 대해 “왜 우리는 질문하지 않으며, 문제제기와 시정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의문을 품었다. 우리의 여행은 너무 폭력적이고 소비적인 것은 아닐까. 여행사에 문제제기도 해보며 어떤 시정의 노력을 기울여봤지만, 통할리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야 하듯 질문의 답이 도달한 곳은 ‘공정여행’이었다.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2002년 공정무역이 시작되었다. 5년 뒤인 2007년 ‘공정한 여행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함께, 공정여행 축제가 시작됐다. 공정여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공정여행포럼’을 만들었고, 이들이 주체가 되어 축제를 열었다. 포럼, 축제 등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면서 여행의 크기는 커져갔다. “다른 여행은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여행자들의 잠자는 정보, 경험들이 소개되고 공유”되면서, 공정여행의 그림들이 그려졌고, 그 크기도 커져갔다. 현지에서 성매매 하지 않기, 1회 용품 사용하지 않기, 로컬 버스 이용하기, 숙박 등 여행지의 현지에 맞게 여행하는 방식을 추천하고 소개하며 개인 여행자들의 공정여행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또한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공정여행을 통해 여행지의 인권, 생명, 일상의 삶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며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통해 여행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공정한 삶(페어 라이프)를 살아가는 삶의 변화를 일궈 가는 것”, 그것이 공정여행의 궁극적인 목적 아닐까.

경기도가 지난 9월26일 경기도공정무역포럼에서 공정무역도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정여행은 봉담읍 공정무역마을운동으로 연결돼 ‘지역화’되고 있다

이러한 공정여행에 대한 질문과 운동은 다시 봉담읍으로 연결된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공정한 삶을 도입하고 실현해가는 것. 공정한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곧 ‘공정무역마을운동’이고, 공정여행과 맞닿아 있다. 평균연령 37세의 젊은 부부들이 모여 사는 젊음의 도시, 아이들이 많은 이곳에서 새로운 도시의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페어라이프센터를 거점으로 시작되고 있다. “마을은 사는 곳이 아니라 상상하는 곳이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원하는 모든 것이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동의한다. 시민운동이 말하는 주장들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희망의 거리를 좁히는 운동이 공정한 마을이다.” 임씨는 봉담읍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공정함 삶’을 심고 가꾸는 일의 한 복판에 서있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 관계가 함께 온다는 말이 있다.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어떻게 저마다 삶을 가치 있게 여기고 스스로 존엄을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2010년부터 지방의제와 함께 공정무역마을운동도 펼치고 있다. 공정무역 아카데미 ‘공정무역교실’을 6개월 과정으로 운영하며, 마을 공정무역 활동가를 배출해왔다. 현재 이들은 지역의 10여곳 학교에서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 창의지성교육 과정과 연계해 공정무역을 알리고 있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하는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공정무역교실 활동가들의 역할과 기회도 확대되고 있다. 화성시는 올해 12월22일 공정무역도시 추진 협약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화성시를 4개 권역으로 나눠 공정무역도시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티투어도 공정여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씨의 보폭은 봉담읍 동화리 마을활동에서 화성시, 경기도, 그리고 서울시 등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정무역도시운동을 연결하는 일에 관여하고 지원하고 참여하고 있다. 봉담읍 마을활동에 집중하고, 그곳에서 주민으로 이웃으로 사는 일이 우선이지만, 그동안 살아 온 삶의 다방면에서 연결된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그 연결망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정함’, ‘평화’이다. 그 흐름을 존중하면서 따라가는 자연스런 ‘강물’의 흐름.

세계 최초 공정무역 마을 창시자 브루스 크라우더(Bruce Crowder, 우측)와 함께

유럽에서 활성화된 공정무역마을운동에 아시아도 눈 뜨기 시작하다

다시 본론으로. 라이프인이 임영신씨를 주목한 포인트는 ‘국내1호 공정무역마을위원회 코디네이터’라는 점이었다. 어떤 타이틀, 소속을 따지는 한국사회 문화와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임씨이지만, 라이프인은 이 점을 간과할 수 없음이다.

독자들의 사전 이해를 위한 팁. ‘공정무역’을 저개발국가에서 공정한 방식으로 생산된 상품의 거래 관계로서만 파악하지 않고 생산지 마을,지역의 ‘공정한’ 변화와 함께 거래관계에 있는 소비자 등 관계망에 놓인 다방면의 영역(세계)의 변화를 꾀하는 ‘공정무역마을운동’이 있다. 이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과제를 제시하며, 추진과정을 이끌어 가는 민간국제기구인 ‘세계공정무역기구(WFTO)’가 있고, 공정무역마을 인증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IFTT)’가 있다. 국내에서도 공정무역단체들이 가입해 있는 한국공정무역협의회(이사장 송경용, 이하 한공협)가 있고, 별도로 사단법인 공정무역마을위원회(위원장 이충재)가 있다. 한공협은 세계공정무역기구 회원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위원회도 국제마을위원회에 등재되어 있다. 마을위는 1국, 1개가 원칙이다. 공정무역마을운동은 영국에서 출발한 운동이고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2,011개 공정무역 인증마을이 존재하고 있다. 독일도 활발하다. 500여개 공정무역마을이 있는 독일의 경우 올해 ‘독일공정무역수도어워드’ 행사에서 독일 내 900여개 도시들이 응모했고, 그 중 5개 마을이 우수 마을에 선정될 정도로 참여열기가 높다. 반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아직은 초보적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인증도시가 3곳이다. 한국의 경우 올해 첫 신청과 인증이 이뤄졌다. 아시아 두 번째 국가이다.

인천시와 부천시를 국내 공정무역마을도시로 인증하다

임씨는 2기 마을위원회에서 선정한 1호 코디네이터이다. 올해 4월경 2기 마을위원회 코디네이터로 선출되어,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에 등재됐다. 마을위원회와 코디네이터는 공정무역마을 인증 신청을 관리하고, 심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공정무역마을 인증을 신청한 곳은 올해 두 곳이다. 부천시와 인천시. 부천시는 5월에 신청해서 6월에 인증이 나왔다. 인천시는 9월에 신청해서 10월에 인증이 됐다. 그런데 두 곳의 인증을 놓고 공정무역 진영에서는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인증기관이 달랐고, 이에 대해 해석과 입장의 차이가 존재했다.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는 갈등의 요인이기도 했다. <라이프인>은 이 부분에 대해서 별도로 취재해 다룰 예정이다. 부천시의 경우는 국제공정무역인증기구(FLO)와 공정무역마케팅기구((FMO Korea)를 통해 인증 받은 경우이다. FLO는 공정무역 상표를 중심으로 상표 인증과 관리에 중점을 두는 민간기구이고, 공정무역마케팅기구(FMO korea)가 지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인천시의 경우는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와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를 통해 인증을 받았다. 인증시점을 기준으로 부천시는 6월 인증, 인천시는 10월 인증으로 차이가 발생한다. 인증시점과 어느 기관을 통해 인증을 받았는지를 두고 ‘누가 국내 1호 공정무역도시인지, 누가 진짜인지’ 논쟁이나 갈등이 발생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실제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존재했다. 지금도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다.

지난 7월19일 20대 국회공정무역 포럼이 국회에서 열렸다. 루디 달바이 세계공정무역기구 대표(죄측에서 세번째), 루이스 헬러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 위원(죄측에서 일곱번째)이 참석해 강연과 발표를 진행했다.

1호 코디네이터로서 임영신씨는 갈등의 소지가 많은 이 사안을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서, 인증작업에 참여했다. “공정무역운동하면서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몰랐다.” 임씨의 ‘일성(一聲)’이었다. 해법은 둘 다 등재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인천시의 경우는 마을위원회 인증 경우로서, 국제공정무역마을위원회에 등재했다. 부천시의 경우는 ‘셀프 인증’으로 등재했다.

“’빅 텐트 모델’을 선택했다. 방법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넓게, 포용하면서 가자는 것이다. 다만,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합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우리 세상을 더욱 공정한 방향으로 만들어 간다라는 가치와 운동에 대한 본질을 지키고, 궁극적으로 마을, 지역, 도시의 변화에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보를 떠나 국가, 정부 주도의 ‘탑 다운’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첫 번째, 두 번째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공정무역 마을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공감하고 확산하며, 보람을 느끼고 성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천시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진행해왔다. 열심히 해 온 지난 5년의 경험은 소중하다."

임씨는 공정무역마을운동을 확산시켜 감에 있는 본질과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더 넓게 가능성의 영역에서 만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 모델을 적극적인 참고 모델로 제안했다.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공정무역과 공정무역마을운동을 펼치고 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마을 인증을 서두르지는 않고 있다. 내년에 인증을 신청할 예정이다. 결과보다도 과정에 더욱 충실한 사례이고,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임씨의 설명이다.

여행을 통해 질문의 자리가 바뀌는 경험을 하다

임씨와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1인 활동가’라는 말과 ‘질문하기’였다. 삶과 활동에서 오는 질문을 간과하지 않고 대면하기. 그 결과가 시민단체 활동가인 그녀를 ‘1인 활동가’로 서게 했다. 1인 활동가로서 분쟁지역, 공정여행, 공정무역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고 교류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질문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함을 배웠다. “여행을 통해 질문의 자리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 활동가로 살아 오면서 당위적인 질문을 해왔다는 것을 돌아보게 됐다. 그간 사용해왔던 언어가 달라져야 함을 경험했다. 8년 전 봉담읍에 정착하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뭐하는 분이냐’하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임씨의 말은 동네 말투와 달랐다.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면서, 해오던 강의도 중단했다. 이제는 ‘이일 저일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됐다. 8년의 시간이 준 힘이다. “동네사람, 이웃이 되었다.” 봉담읍 동화리에서의 생활이 1인 활동가로 살아 온 임씨의 공정한 삶(페어 라이프) 항목(리스트)에 더해졌다. 더 커지고 넓은 세상으로.

“스스로 지탱하는 힘이 있는가? 이 힘은 ‘스스로 질문하기’로부터 나온다. 개인이 주체로, 자기활동으로서 생각하며 성장하는 것, 이를 위해 다양한 활동과 경험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 임영신씨가 가지는 생각이고 확신이다. 봉담읍 동화리 ‘페어라이프센터’의 생각이다. ‘질문하라. 당신의 삶은, 당신의 세계는 공정한지.’

덧붙이는 말. 임영신씨는 정말 말을 잘 했다. 언어 그 자체가 평화였고 달변이었다. 공정함과 평화를 담은 말을 글로 옮기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듯 싶다. 인터뷰 전에 이런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독자들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부족한 부분은 임씨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공정여행을 소개한 책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 20090>와, 한겨레신문 ‘교회인 듯 아닌 듯 마을과 지역을 품은 사랑방(2017.11.14자)‘ 기사를 참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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