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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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과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실험
[아이쿱생협 해외협동조합 연수 - 영국4] 수마협동조합(Suma Wholefoods)
  • 2018.12.10 10:06
  • by 유나미(빛고을iCOOP생협)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은 1844년 28명의 노동자들이 설립한 소비협동조합이다. 로치데일 공정협동조합이 성공해 근대 협동조합의 효시가 된 데는 ▲조합 운영의 공개 ▲1인 1표주의 ▲이용고 배당 ▲출자배당 제한 ▲정치·종교적 중립 ▲시가에 의한 현금거래 ▲교육의 촉진 등 원칙을 만들고 충실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로치데일 조합의 원칙은 협동조합운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 중 상당 부분이 협동조합의 성격을 규정짓는 원칙으로 존중받고 있다.

아이쿱생협 연수단이 지난 10월 27일부터 11월 4일까지 8박 9일간의 일정으로 세계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이 탄생한 영국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맨체스터에는 산업 혁명의 유산을 아직 소중히 품고 있고 협동조합의 첫 성공 모델인 로치데일이 있으며, 영국 최대의 소비자협동조합인 코업그룹 본사를 비롯해 영국협동조합연합회 등 협동조합의 과거와 미래를 만날 수 있다. 영국은 사회적경제에 필요한 기부 문화 등 폭넓은 인프라가 퍼져 있고, 지역공동체가 꾸준히 커나가고 있어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 조직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연수단은 영국협동조합의 캠페인 활동을 통해 선진사례를 학습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공정무역의 확산과 인식증진 위해 영국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한 몇 곳을 방문했다. 이들이 다녀온 △영국협동조합연합회 △스티치업협동조합 △코업그룹 △공정무역 타운 볼튼 △수마노동자협동조합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수마협동조합(Suma Wholefoods)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40년 역사를 지닌 연매출 5,500만파운드 규모의 유기농, 채식인 식품 도매회사이다. 그리고 직원 280명 중 180명이 조합원인 노동자협동조합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수마는 수마만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보통, 회사라면 최대 지분을 가진 오너가 있고, CEO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구조에, 능력별 성과 배분, 고과에 따른 보상을 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업무를 전문화, 분업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수마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동일임금제, 평등한 순환근무제, 집단적 의사결정구조 등. 소위 말하는 흔한 오너의 갑질이 있을 수 없고,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있을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게 실화일까? 이러한 의문을 갖고 연수단은 수마를 찾아갔다.

"과연, 기업을 운영에서  동일 시간 동일 임금, 평등한 위계구조, 수평적 순환근무,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마는 주류와 다른 선택으로 위계구조 없는 협동조합이 과연 사업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는 의심을 보기 좋게 따돌리며 40년째 순항하고 있었다.

#동일 시간 동일 임금  임금모든 직원 임금 동일하다. 수마의 모든 조합원과 직원들은 업무나 책임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한 시간당 임금을 받는다. 유럽 내에서 동일임금을 지급하는 회사들 중 최대 회사로 꼽힌다. 즉, 40여 년 전 창업 때부터 재직 중인 직원이 신입직원과 같은 보수를 받는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억울해하거나 불만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수마 직원들은 이 제도를 받아들이고, 즐겁게 일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평적 순환근무  전 직원이 최소한 주당 2, 3가지 업무를 교대로 수행한다. 예를 들면 월요일에 물류창고에서 주문물품 피킹을 했다면,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배달트럭을 운전한다. 그 다음 목요일에는 물품 포장 디자인작업을 수행하는 식이다. 얼핏 몹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 직원들이 업무를 전체로서 큰 그림으로 이해하고, 협력하여 과제를 해결하고, 문제에 대해 모두가 책임감을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보신주의나 게으름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평등한 위계구조,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중요한 결정은 전 조합원이 총회에서 결정한다. 회사의 정책과 방향을 정할 때 전체가 거수식으로 결정을 한다. 오너의 고독한 결단이나 CEO의 판단에 따르지 않는다. 수마에는 CEO나 임원 자체가 없다. 모든 직원이 평등하다. 우리가 방문한 수마 본사의 로비에는 전 직원의 얼굴 사진이 똑같은 크기로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또한, 수마는 수마만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공정무역, 동물복지, 유기농, 채식을 지향하며, 현대판 노예노동을 반대한다. 또한 자체브랜드에서 팜유를 최소화(1300개가 넘는 수마브랜드 제품 중 30가지 제품군만 팜유 함유)하고, BPA 포장재도 최소화 원칙을 추구한다.

우리가 만난 수마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편안하고 미소띤 모습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연수단 일행은 수마 본사를 한바퀴 돌며 안내를 받고 난 뒤에 “수마에 취업하고 싶다”, “현존하는 유토피아다”, “뉴라나크가 여기에 있었네” 등등 감탄을 연발했다. 하지만 동일 임금제란 사실상 임금의 하향평준화 아닐까? 평등한 순환근무제는 무임승차자를 걸러낼 수 있을까? 이 회사가 이런 식으로 오래 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넣어 두라는 듯, 수마는 40년간 꾸준히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크게 투자하고 있다. 임금이 지역 평균보다 훨씬 높은 편이고, 유급 휴가는 연간 38일에 이르며, 유기농 식단이 제공되는 식당도 무료다. 수익은 상여금으로 고루 분배하며, 지난 1년간 직원들이 유급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심은 나무가 5천 그루가 넘는다. 직원들의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마에게 아무 고민이 없을까? 우리를 안내해준 직원에 따르면, 수마가 성장할수록 무임승차자 등 개인의 탈선이 늘어나고 있다. 개개인의 성과 관리 역시 고민이다. 하지만 수마는 나름의 문제들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간 4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직원을 해고할 이유가 없었지만, 앞으로 경영이 악화될 경우라도 이 역시 협동조합적으로 유연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는 거수식 직접 민주주의로 의사결정을 하지만 규모가 더 커지면 간접 민주주의 방식도 고민할 수 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조합원의 참여를 담보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수마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의 가치 간에 균형을 추구하려 한다.

순환근무제를 위해 업무 인수인계시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매주 업무분장에 이틀 반이 소요되는 등의 비효율성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과제다. 또한 장애인은 물류센터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 고용에 어려움이 있다. 다양한 계층을 고용하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연수단은 수마에게 받는 영감과 도전을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나누었다.

#부럽다 "직원 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좋아 보였다. 현존하는 유토피아로 보였다. 순환하는 업무 환경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도 해볼까? "가능하면 수마를 모델로 한 직원 협동조합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직원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참여하고 같이 만들 수 있는, 좋은 복지 여건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동체를 우리 사정에 맞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현재 사업체 운영방식의 주류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형태이다. 어려움을 인정한다면 수마의 경영방식을 확산해 가는데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국내에서 사회적 경제 모델이 많이 시도되고 있는데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되네! "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비즈니스 모델, 내부 규약, 사람 이 3가지가 관건이다. 노동자 협동조합으로서 큰 갈등은 없게 보이지만 규모가 더 커질 경우 어렵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직접 보니 지속 가능할 여지가 많게 보인다.",  "순환근무제로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업무의 다양성이 오히려 장기근속의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문제는 있다 "무임승차자의 문제는 어디에나 존재함을 확인했다. 업무 인수인계가 어렵고, 근무표 짜는데 2일 반이 걸리는 등 단점도 있었다."

수마에게 조심스럽게 바람해 본다. 수마가 현존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노동자협동조합으로서, 영국에서 가장 큰 윤리적 도매업체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공정성과 투명성, 지속가능성이 사업적 성공과 함께 갈 수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연수단처럼 협동조합의 이상향을 찾아서 순례하는 활동가들에게 영감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오래오래 존속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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