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가습기살균제 참사 ‘함께 짐 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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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가습기살균제 참사 ‘함께 짐 지겠다’
[강찬호의 위험사회 아웃(20)]8월8일 피해자대표단들과 청와대 면담 진행...정부 첫 공식사과와 함께 정부 책임 밝혀...우원식 원내대표와 홍영표 환노위원장 참석 등 정부여당 협력 의지 밝혀
  • 2017.08.09 18:42
  • by 강찬호
문재인 대통령이 임성준(15) 군의 사인 요구에 성의껏 응하고 있다. 임 군은 본인 것 외에, 동생 것, 반 여자친구 것을 연달아 요구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문 대통령은 모두 응대해주었다.

2017년 8월 8일 오후 2시, 문재인 대통령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가슴 깊이 사과한다.”고 발언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역사에서 큰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 문제가 종료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 말만큼 피해자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 있을까.

그동안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통사고처럼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사건으로, 두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되는 문제로 간주했다.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 외면했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상황이었다. 이어, 19대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래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다만 ‘조력자’역할로 한정했다. 박근혜 정부 상황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에 문제라는 프레임이 지속됐다. 이러한 정부의 대응은 무능 또는 소극성이었다.

정부 책임이 빠진 피해자 대책은 반쪽짜리 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 사안에 대해 가해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우습게보고 조롱했다. 대표적인 것이 옥시레킷벤키저가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워 피해자들과 소송 과정에서 원인을 부정하고, 헐값에 조기 합의를 이끌어 내는 몰염치한 짓을 했다. 이러한 사실은 2016년 검찰 수사로 드러나,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피해자들은 가해기업의 처사에 분노했다.

정부가 조력자로 머무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진상규명이나 피해대책이 마련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2011년 8월말 이후 우리사회의 대응 모습이 그랬다. 판정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더뎠고, 그나마 마련된 판정기준은 피해자들을 단계(등급)으로 나눠 또 다시 고통스럽게 했다. 정부는 아직도 판정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판정기준에 따른 판정 대기자도 수도 상당하다. 정부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안으로 규정하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을 전제로 피해자 인정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 사과로 문제해결의 첫 단추 다시 끼워져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방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다시 제대로 끼우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정부의 사과와 책임 인정이었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진정성과 의지를 보였다. 구상권을 전제로 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6년 만에 피해자들은 피 끓는 울분과 걱정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위로가 갖는 힘이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과의 면담은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면담에는 11개 피해자모임의 대표단 15명이 참석했다.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임성준 군도 엄마와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2시에 행사장에 입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한 피해자를 찾아가며 일일이 악수하고 위로를 건넸다. 환경부 장관은 그 옆에서 각각의 피해자들을 소개했다. 맨 먼저 인사를 나눈 임성준 군은 대통령의 사인을 받고 싶다며 사인지를 꺼내 웃음을 자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사인에 응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를 대신해 깊이 사과 한다’고 밝혔고, ‘환경부를 중심으로 해서 정부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최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문제해결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임할 것’이라고 밝혔고,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계정에 정부도 부담하겠다. 법률 재개정에 대해서도 협조해 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졌다. 피해자 대표단들은 준비해 온 요구사항과 심경을 충분하게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발언을 메모해가며 경청했고, 중간 중간에 의문점을 질문했다. 대통령의 입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이 사안을 챙기고 갈 것이라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고, 문제해결 의지를 밝혔다. 진상규명이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하라고 점검했다. 의학적인 조사 판정에 대해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원점에서 새롭게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환경부가 주관부처를 맡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면서도, 범 부처 간에 대응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 차원에서 방안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피해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가는 소통채널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발언을 모두 경청하고 필요한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나라다운 나라, 그에 걸 맞는 정부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함께 짐을 지겠다. 힘 내어달라. 이겨내자. 해낼 것이다.”라며 희망과 용기를 불러냈다.

우원식 대표, 가슴 벅차다...홍영표 위원장, 온전한 첫 출발

이날 면담에는 장하성 정책실장, 전병헌 정무수석, 김수현 사회수석, 박수현 대변인이 참석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홍영표 환경노동위원회위원장도 참석했다. 무게감, 책임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가습기살균제구제특별법을 대표발의하며 법안 통과에도 역할을 했다. 홍영표 위원장도 19대 국회에서부터 이 문제를 다뤄왔고, 법안을 발의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힘썼다. 정부와 여당이 최대한 협력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의사표시로 읽혔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지난해 국정조사를 이끌면서 영국에 찾아가서 옥시레킷벤키저의 사과를 이끌어 냈다.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국가책임 부분에서는 답답함을 느꼈다. 역대정부를 대신해서 사과를 한다는 것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 문제 해결이 본격화되었고, 근본적인 출발을 시작했다는 의미다. 가슴이 벅차다.”고 소회를 밝혔다. 우 대표는 또 일 발효되는 가습기살균제특별법에 대해 반쪽짜리라는 피해자들의 비판이 있는 만큼 며칠 후에 개정안을 낼 것이다. 정부의 태도는 달라졌지만 아직 국회는 그렇지 못하다”며, 국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위원장도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지켜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이번 대통령의 사과가 문제해결의 온전한 첫 출발이 되었다. 그동안은 국가의 완전무결을 전제로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뤄왔지만,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새로운 접근의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우선, 시행령에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 만큼 충실하게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긴급의료지원 폭넓게 지원할 수 있어야....김은경 장관, 피해자 단계 나누지 않겠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과 면담 과정에서 유해물질 노출로 인한 건강피해가 폐 손상 등 특정장기로 국한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고엽제 피해 사례를 언급하며 증세가 다 달랐다고 언급했다. 원진레이온 사건과 엘지 유기용제 사건도 언급하며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거론했다. 진단과 판정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모두 다 구제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화하는 노력”을 주문했다. 또한 고엽제 사례를 거론하며 확진 판정이 안 된 경우라도 의료혜택을 적용했다며, 긴급의료지원에 대해 폭 넓게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을 주문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그동안 정부의 역할이 부족했다면서도 없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 정부의 입장도 고려해달라며 참석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현 정부는 기존 정부와 다르게 갈 것이라며, 피해자들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범위를 확대해갈 것이고, 향후 판정작업에서는 피해자 단계를 나누지 않고 구제계정위에 포함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 과정에서 일부 피해자 대표들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지난 시간의 울분과 회한을 토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먹먹하게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김은경 장관도 피해자들의 울음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면담자료(20170808)]

신속한 피해구제와 대책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주십시오.

                                                 강찬호(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셰푸 가습기살균제로 2011년 당시 5세 아이가 피해를 입은 생존 피해자 가족으로, 지난 5년 동안 피해자모임 대표로 활동해왔습니다.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진 2011년, 그해 9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1년11월30일, 광화문에서 처음으로 피해자추모대회를 진행하고, 정부종합청사를 찾아가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했지만, 거부됐습니다. 일반 민원인으로 치부되고 말았습니다.

저희들은 처음부터 정부책임과 가해기업의 책임을 동시에 요구해왔습니다. 매년 피해자대회를 열고 문제해결을 촉구해왔습니다.

참사가 발생한지 지 6년이 지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판정기준을 마련하고 있고, 4천명이 넘는 피해자가 판정대기 상태입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참으로 무능했고, 나쁜 정부였다고 저희들은 생각합니다. 가족을 사랑했고,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을 신뢰했던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습니다. 정부는 교통사고로 치부하며 외면했습니다. 부처 간에는 핑퐁게임을 하며 떠넘겼습니다. 컨트롤타워는 없었고, 뒤늦게 환경부로 소관부처를 정했지만 늦었고, 힘이 없었습니다.

광화문 촛불시민들은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를 만들어냈습니다. 저도 광화문 촛불광장 무대에 서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해결해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광화문1번가를 찾아, 또 외쳤습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보호받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소비자는 국내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돈벌이 대상에 지나지 않는 ‘호갱’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를 수습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안방의 세월호 사건인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해 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1.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대책과 재발방지대책, 가해기업 처벌에 대해서 정부가 주도해서 처리해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주무부처로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더라도, 대통령님께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챙길 수 있도록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역할을 마련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2. 내일 발효되는 구제법은 반쪽짜립니다. 법안을 보완하기 위해 그동안 국회, 환경부와 법 개정안을 논의해서 마련했습니다. 향후 국회에서 발의되는 우원식 대표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신속하게 피해구제가 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협력을 요청드립니다.

3.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생 후, 정부는 우와좌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화학물질에 노출된 건강피해의 원인을 규명하거나, 건강피해 대책을 세우는데 무능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화학물질, 환경물질에 노출되어 시름하고 있습니다. 국가차원에서 <화학물질중독센터>를 설립해 피해를 감시하고 예방하고, 규명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주십시오.

4. 국민과 소비자의 안전이 최우선인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헌법에 못 박아 주십시오. 국민안전기본법을 제정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주십시오.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징벌제 강화,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주십시오.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주십시오. 영국처럼 살인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 주십시오.

5.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해주십시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제2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추모사업을 진행해 주십시오. 피해자의 피해입증 책임을 완화해주십시오. 피해입증을 피해자가 하는 것은 부당하며, 이는 유엔 인권조사관도 권고를 한 사안입니다. 개별피해 구제와 관련해 3단계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해 신속하게 구제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그동안 나쁜 정부 하에서는 정부의 피해 구상권을 전제로 피해자를 인정했고, 구제범위를 정해왔습니다. 이는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전제로 피해대책을 수립해왔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구제의 주체로 나서야 합니다. 피해구제와 가해기업 구상권은 별개로 다뤄져야 할 사안으로, 구상권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문제를 수습해가시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드립니다. 

2017년8월8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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