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SSE]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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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SSE]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 2023.12.04 12:00
  • by 김형미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학회 회장
김형미 (사)한국협동조합학회장.
▲  김형미 (사)한국협동조합학회 회장.

어느 날 후원회원으로 있는 인터넷신문 「라이프인」에서 사회적경제를 '사회연대경제'로 부르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 문자가 왔다. 응답자에겐 추첨하여 커피 쿠폰도 제공한다는 안내 글에 바로 설문조사에 응했고(^^), 필자는 사회연대경제로 호명하는데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 이왕 설문조사에도 응답한 만큼, 이 글을 통해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부르자는 이유를 밝히고 토론의 계기로 삼아도 좋겠다고 여긴다. 

첫째, 국제사회에서 사회연대경제로 용어가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유엔기구간 사회연대경제 태스크포스(UNTFSSE)가 발족한 이후 유엔은 공식 용어로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를 사용하고 있다. UNTFSSE의 사무국은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인데, 2018년 사회적경제국제포럼(SELF)의 연사로 방한한 폴 래드 소장은, 당시 기조연설에서, 유엔사회개발연구소는 공식적으로 사회연대경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사회연대경제를 "사회적·환경적 목표를 우선으로 하며 협동, 자조, 민주적 자주 관리의 원칙과 실천을 따르는 기업, 지역사회단체, 자발적 단체, 즉, 가치기반의 비국가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산, 교환, 소비의 양식"으로 정의한다고 밝혔다. (포용적 경제성장, '사회적경제'가 답이다, 「라이프인」, 2018.06.18. 기사) 

왜 유엔(UN)에서는 사회연대경제라고 부르는가.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공식 입장을 찾을 수 없지만, 사회적경제가 유럽에서 태동하여 1970년대에 EU의 정책에 도입이 되었다면, '연대경제'라는 용어는 중남미에서 1990년대에 등장하여 2001년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확산되었고 이 두 흐름을 유엔이 하나로 연결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회적경제와 연대경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사회적경제 19세기에 출현하고 근대산업사회와 함께 발전하여 20세기에는 협동조합, 공제회(상호보험, 공제조합), 재단법인, 비영리단체 등 법인격을 지닌 제도화한 조직들이 펼치는 경제활동 
연대경제 시장중심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적 목적을 우선에 두고 활동하는 모든 경제활동을 포괄. 여기에는 제도화하지 않은 풀뿌리경제, 비공식경제활동, 비자본주의적인 경제활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중남미에서 발달함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렸던 제1차 세계사회포럼은 사회, 환경문제와 함께 연대경제, 민주주의를 주요한 의제로 다루었고, 과도한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경제로서 브라질의 연대경제가 주목받았다. 1980년대~90년대 후반은 글로벌시장의 격심한 변동성으로 중남미 경제가 끊임없는 금융위기에 시달렸던 시기였다. 브라질의 연대경제는 포용적이며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지향하며 가족 중심의 소농, 수공업자, 재활용사업자, 봉제 사업장 등, 임노동 계약보다 자주 관리로 운영되는 사업체들로 구성된다. 연대경제의 가치로서 자주관리(self-management), 경제 관계의 민주화, 경쟁 강요가 아닌 협력, 다양성 존중(사람이 이익보다 앞선다), 로컬 지식을 존중하고 학습과 훈련의 일상화, 사회정의와 해방, 환경보호를 강조한다(브라질연대경제포럼). 

이처럼 사회적경제와 연대경제는 지역을 달리하며 전파되어 오다가 유엔이 포스트 새천년개발목표 이후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연대경제로 엮어졌다고 이해하게 된다. 2014년 프랑스가 「사회연대경제법」을 제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법은 사회연대경제기업에 대한 정의와 경영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연대경제 ①토대』, 자크 뒤프르니/마르센 니센, 김신양/엄형식 옮김, 57면을 참조할 것)

이후 국제기구에서는 사회연대경제와 사회적경제가 병렬적으로 사용되다가 2023년 4월 18일 뉴욕에서 열린 제66차 유엔총회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촉진에 관한 결의문 Promoting the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채택함으로써 향후에는 사회연대경제가 더 지배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본 결의문은 사회연대경제에 관하여 유엔이 공식적인 정의를 명시했다는 점에서도 회원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 주는 함의가 있다.(이 정의는 2022년 ILO의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연대경제」의 내용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촉진에 관한 결의문」 중 사회연대경제 정의 

사회연대경제는 집단적 또는 일반적인 이익을 위해 경제, 사회, 환경 활동에 참여하는 기업, 조직 및 기타 단체로, 자발적인 협력과 상호부조, 민주적이거나 참여적인 거버넌스, 자율성 및 독립성, 이익분배 또는 이익〮자산 사용에서 사람 및 사회적 목적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사회연대경제주체는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공식경제 형태로의 전환을 희망하며,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활동하며, 양질의 일자리와 민생 달성이라는 가치, 사람과 지구, 평등과 공정, 상호의존, 자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한 노력과 일치하는 가치, 사회연대경제 주체의 기능에 내재된 본질적 가치를 실천한다.

사회연대경제에는 나라별 상황에 따라 협동조합, 단체, 뮤추얼(상호보험 및 공제회), 재단, 사회적기업, 자조 그룹 및 사회연대경제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여러 주체들을 포함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번역문을 기초로 필자가 부분 수정) 


결의문 채택 직전인 3월 하순에, 유엔경제전문가네트워크는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새로운 경제학: 사회연대경제」라는 발간물을 공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회연대경제는 사회적경제, 연대경제, 또는 제3섹터 조직·기업을 아우르는 우산 개념으로 쓰이며 본질적으로 경제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재언명하고 경제를 사회와 자연에 재연결한다고 표현한다. 또한, 사회연대경제는 커뮤니티를 중심에 두고, 민주적인 자주관리(self-management)를 실천하고  조직·기업 안팎에서 연대하는 특징을 지닌다고 언급하고, 정책 차원에서도 주목받아 왔다고 말한다. 이 발간물의 [그림 3]은 2002년 국제노동기구가 「협동조합 촉진 권고문」을 채택한 이후의 국제사회, 지역에서 사회연대경제에 관한 정책적 위상이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United Nations Economist Network, New Economics for Sustainable Development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2023.3.
ⓒUnited Nations Economist Network, New Economics for Sustainable Development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2023.3.

따라서,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쓰이면서 승인된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를 국내에서도 채용하여 사회적경제를 대체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둘째,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야 할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자활기업·사회적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을 중심에 두고 개별법 협동조합 등을 포괄하는 우산 개념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2014년 당시 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했던 이래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19·20·21대 국회에서 여야 18명의 의원들이 11차례나 발의했으며, 문재인 정부 때는 사회적경제비서관실이 신설되고 17개 관계부처간 협의체가 구성되어 사회적경제 활성화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이 기업, 금융, 공공조달, 지방행정, 교육, 국제개발협력, 환경,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됨으로써 이 용어가 시민에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동네 곳곳에서 '사회적경제'가 적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학교 교육에서도 접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정부의 정책이 사회적경제기업·조직의 출현과 성장을 지원하는 생태계 조성에 크게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양가적인 작용이 있는 법, 그 부작용, 또는 굴절도 만만치 않았다. 가령, 사회적경제를 정부의 정책대상 기업과 조직으로 한정하는 제약과 분단 (농협과 신협, 생협 등의 협동조합, 농어촌의 영어·영농조합을 사회적경제의 주체로 포괄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은 미약한 수준이며 로컬크리에이터, 임팩트 투자기관과 소셜벤처는 사회적경제기업인가 아닌가 등), 정부 지원 정책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영세한 경제활동으로 사회적경제를 폄하하는 인식 유포,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춘 사회적경제기업이 더 주목받고 탄생하기 쉬운 조명효과 등이 그렇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9월 1일 '제4차 사회적기업 기본계획' 발표를 시작으로 2024년 사회적경제 관련 예산을 일방적으로 대폭 삭감하고 관련 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필자는 이 조치가 부당하고 정부가 민관파트너십에 기반한 행정행위를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민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렸다고 생각한다. 아직 국회의 예산안 심의가 마치지 않은 상태이지만 사회적경제에 관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환경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지난 7년 동안 정권이 바뀜에 따라 관련 정책 환경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변동성 높은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보다도 변동성 높은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존력과 회복력이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사회적경제기업과 조직들은, 민간에서 더 연대하고 지역경제에서의 설 자리를 더 찾으면서 제2의 도약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무엇이 문제였는지, 나이브하게 넘겼던 점은 무엇인지를 성찰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유엔의 사회연대경제 결의문을 우리의 상황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다. 보편복지가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사회서비스는 시장과 공공의 협력·연계로 공급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주민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이 공공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왜 유독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해서 정부의존적이라는 이미지가 유포되었을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이유는 한국사회의 언론과 정치인들의 편파성과 선입견, 정쟁화의 산물이고, 또한 우리나라의 공권력과 행정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사회적경제 이미지는 '사회적가치 중심 경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가치와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맥락에서 정책 실행의 수단으로 인식된 측면이 크다.

이제 이러한 이미지를 벗어나서 더 당당하게 개인의 위기·사회의 위기·생태계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의 행보를 다 과감하게 펼치는 실천들이 자리잡고 또 탄생하고 있다. (「라이프인」 기획  '사회적경제기업, 그 생생한 현장을 가다') 이런 동력에 더 주목하려는 욕구가 사회적경제의 현장에서 무르익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러면서 유엔의 결의문 채택 이후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사회연대경제라고 호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성공회대 김창진 교수는 애초부터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사용해 온 연구자인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해당 조직들의 법적·행정적 차이에 따라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사회적(social)'이라는 표현은 그 기업/조직들이 추구하는 가치·목적·성격을 지칭하는 것이지 정책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창진, 사회주의 체제의 개혁과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남북을 잇다』, 65면) 

필자도 이러한 김창진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적경제는 정부의 정책 용어를 넘어서 더 자유로워지고 확장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하고 상호자조와 연대를 통해 경제적 생존능력을 강화하고 민주성에 기반한 의사결정력을 높이고 지역사회와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잠재력을 최대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유엔경제전문가네트워크 발간물에서 언급한, "경제를 사회와 자연에 재연결하는 경제활동", "사람과 커뮤니티의 필요에 부응하는 경제활동", "참여형 민주주의·연대·공정·사람과 지구의 권리·자기결정·상호성과 협력과 같은 가치를 내재한 경제활동"을 펼치는 기업과 이를 지원하는 조직, 또 그러한 정체성을 기업의 사명과 비전으로 추구하는 기업·조직의 경제활동이라면 사회연대경제라고 스스로를 호명해도 좋겠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주요 정책대상 사회적경제기업·조직(자활기업·사회적기업·마을기업·협동조합·지원기관) 뿐 아니라 농협, 신협, 생협과 같은 개별법 협동조합, 비영리사업체, 사회적농장, 상호부조와 공제를 실시하는 유니온, 로컬 비즈니스로서의 지역밀착성을 지닌 소상공인·중소기업, 사회복지법인 등도 사회연대경제를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하여, 민간과 민간이 더, 잘 연대하여 현시대의 위기에 대처하는 창의적인 기업 네트워크와 커먼즈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한국의 사회적경제의 질적 심화와 확장을 위하여 사회연대경제로 호명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용어만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연대경제로 자연스레 이동하면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사회연대경제는 사회적경제와 연대경제의 조직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며, 도리어 사회적경제의 재구성 또는 연대경제의 관점에서 사회적경제를 '재성찰'하는 방식을 뜻한다." (김종걸, 『자유로서의 사회적경제』, 314면)는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어떤 측면을 재구성할 것인지를 차분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주체들의 활발한 토론과 지혜를 나누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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