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 아티스트 '육포공장' 진형준, "레고 조립과정은 인생과 굉장히 닮았어요"
상태바
브릭 아티스트 '육포공장' 진형준, "레고 조립과정은 인생과 굉장히 닮았어요"
골수 이식 후에도 병 재발, 병동에서 레고 조립으로 우울한 시기 견뎌
"작품 표면 아래 내구성 위해 넣은 수많은 레고, 인생을 이루는 경험과 같아"
"재밌는 거 하고 싶다!" 지금의 행복 누리기 위해 '레고 브릭 아트' 활동
  • 2023.09.06 23:57
  • by 이새벽 기자

대한민국 사망원인 1위 암(癌). 암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발병률과 사망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암을 비롯한 건강 불평등은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 이에 라이프인은 암에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사회구성원 모두가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암 환우와 커뮤니티, 암 환우의 사회활동, 암 환우들의 문화·예술, 암을 가까이서 본 전문가들의 조언 등 다양한 관점에서 암과 삶을 바라본다. [편집자주]

 

"24살 때 급성골수성백혈병(AML)을 진단받고 골수를 이식했는데, 6개월 후 재발 판정과 치료를 받으면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제 상황이 안 좋아지다 보니까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기도 애매해지더라고요. 그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종이접기를 하다가 병동에서 레고를 택배로 받아 조립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레고 조립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레고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했는데 그때 쓴 닉네임이 '육포공장'이에요." 
 

▲ 브릭 아티스트 '육포공장' 진형준 씨와 그의 작품 '삶'. ⓒ라이프인
▲ 브릭 아티스트 '육포공장' 진형준 씨와 그의 작품 '삶'. ⓒ라이프인
▲ 그리움에 관한 작품. ⓒ라이프인
▲ 그리움에 관한 작품. ⓒ라이프인

브릭 아티스트(Brick Artist) '육포공장' 진형준 씨가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윤아트갤러리에서 'Breath with brick'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전시를 열었다. 전시장에는 일월오봉도와 안중근 의사의 손 모양부터 자신의 등산화와 어머니의 재봉틀 등을 레고로 재현한 다양한 평면·입체 작품이 들어서 있다.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설명해 준 그와 잠시 앉아 그의 브릭 아트에 대해 묻고 들어봤다.  특이한 예명의 뜻부터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예명을 육포공장으로 쓴 이유는, 투병 당시 레고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 날 알아보지 못하게 기존에 써온 활동명과는 다른 것을 쓰고 싶었고, 제가 육포를 좋아하는데 '생산 공장에 가서 먹으면 제일 맛있겠다'라고 생각해서 이 이름을 쓰게 됐어요. 작가명으로는 투박하고 촌스럽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은 이제 바꾸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육포공장'은 힘든 시간을 탈출하기 위해 썼던 가면이고, 이미 또 다른 자아가 돼 버려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턱과 팔에 큼지막한 반창고를 붙인 그의 모습에 현재 건강 상태를 물었다. 

"암 환자 대부분 치료 후 5년 기간에 집중하는데, 그게 의미가 없더라고요. 2012년도에 진단받고 11년째 생존 중인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골수 이식 후 '치료했으니 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재발하기도 했죠. '5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건강관리하고 있어요."

반창고는 병과 무관했다. 최근 다녀온 산에서 넘어졌다는 진형준 작가. 등산을 꽤 좋아한다고 한다. 등산을 소재로 한 작품도 여럿 보인다. 
 

▲  동틀 때의 산을 묘사한 작품명 '마음의 고향'. ⓒ라이프인
▲  동틀 때의 산을 묘사한 작품명 '마음의 고향'. ⓒ라이프인
▲ 실제 사용한 등산화를 재현한 레고 작품 '나의 오랜 벗'. ⓒ라이프인
▲ 실제 사용한 등산화를 재현한 레고 작품 '나의 오랜 벗'. ⓒ라이프인
▲ 등산하러 갈 때 탔던 3317번 버스를 표현한 작품. ⓒ라이프인 
▲ 등산하러 갈 때 탔던 3317번 버스를 표현한 작품. ⓒ라이프인 

"가장 자주 가는 장소 중에 하나가 산이다 보니 작업할 때 투영하는 것 같아요. 산을 많이 관찰하니까요. 등산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니까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어느 정도 견뎌내는 것 같아요. 산에 가면 생각이 단순해지다 보니 작업하다 막혔을 때 머리를 쉬게 해주는 효과도 있어요. 산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영감이 돼요."

레고 조립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에게 레고를 왜 좋아하는지 물었다.

"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더라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조립할 때마다 항상 조립 과정이 우리 인생과 굉장히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볼 때 표면적으로는 정돈돼 있지만 사실 작품을 구성하기 위해 표면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레고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그중 하나만 없어도 내구성이 결여돼요. 이런 부분이 우리 인생과 비슷해요. 모든 경험이 의미가 있죠. 작업하면서 잘 안되는 부분이 있을 때 '이 또한 나중에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히곤 해요." 
 

▲ 일월오봉도를 주제로 한 작품. ⓒ라이프인
▲ 일월오봉도를 주제로 한 작품. ⓒ라이프인
▲ 직지심체요절과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을 표현한 작품. ⓒ라이프인
▲ 직지심체요절과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을 표현한 작품. ⓒ라이프인

대중에게 레고는 장난감으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훈민정음해례본, 직지심체요절,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 손자국 등을 다뤄 역사적 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 더욱 인상적이다.   

"제가 애국심이 투철하거나 역사적 소양이 깊진 않아요. 이전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소실됐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당시 마침 한글 작업을 하고 있어서 단순하게 시도했어요. 직지심체요절 같은 경우는 작품 재료를 기부해 주신 분이 문화재를 굉장히 소중히 생각하셔서 그 재료로는 문화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중근 의사의 단지(斷指)한 손을 표현한 작품은 독립운동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이 더 오래 기억하면 좋겠기에 만들었습니다."

레고 브릭이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장과 같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건넸다. 

"재밌는 거 하는 사람이요. 사실 제가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행복을 찾아서 살겠다고 하지만 살다 보면 그 다짐이 후순위로 밀리는 일들도 생기잖아요. 그럴 때마다 작업하면서 그 말을 계속 되뇌죠. 멀리 있는 행복을 좇기 위해서 지금 누려야 하는 행복을 등한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 저 자신을 재밌게 하는 소재를 레고 브릭으로 삼은 거죠. 제 작품을 보시는 분들의 다른 의견을 듣는 것도 아주 재밌어요."
 

▲ 어린 시절 사용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재생기를 재현한 작품. ⓒ라이프인
▲ 어린 시절 사용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재생기를 재현한 작품. ⓒ라이프인
▲ 어린 시절 사용한 라디오를 재현한 작품. ⓒ라이프인
▲ 어린 시절 사용한 라디오를 재현한 작품. ⓒ라이프인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오는 10일까지 열리며, 9일에는 전시장에서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 

라이프인 열린인터뷰 독점기사는 후원독자만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분들은 로그인을 하시면 독점기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후원독자가 아닌 분들은 이번 기회에 라이프인에 후원을 해보세요.
독립언론을 함께 만드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새벽 기자
이새벽 기자
기자
중요기사
인기기사
  • (07317)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로62길 1, 1층
  • 제호 : 라이프인
  • 법인명 : 라이프인 사회적협동조합
  • 사업자등록번호 : 544-82-00132
  • 대표자 : 김찬호
  • 대표메일 : lifein7070@gmail.com
  • 대표전화 : 070-4705-7070
  • 팩스 : 070-4705-7077
  • 등록번호 : 서울 아 04445
  • 등록일 : 2017-04-03
  • 발행일 : 2017-04-24
  • 발행인 : 김찬호
  • 편집인 : 이진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소연
  • 라이프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라이프인.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