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로운 오늘] 달라질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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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로운 오늘] 달라질 여름
  • 2021.05.03 10:54
  • by 박서희 (홍익대학교 미학과)

처음 맞이하는 오늘. '소박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일상 속 'SE로운 실천'은 우리 곁의 경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와 함께 시작할 수 있습니다. 4월 환경을 주제로 라이프인과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제안하는 'SE로운 오늘'은 ▲우리 동네 제로웨이스트 숍 찾아보고, 사회적경제 제품 찾아보기 ▲하루에 얼마나 쓰레기를 버리는지 확인해 보고, 제로웨이스트로 하루 살아보기 ▲지구를 생각하며 일주일에 하루 채식 중심의 식단 먹기 ▲맛있는 비건 레시피 찾아보고 생협에서 장보기였는데요. 박서희 님이 사회적경제 일상 실천기가 담긴 [SE로운 오늘]을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안전함을 자랑하는 모 자동차 회사 광고에서 자동차 안전성 테스트 비디오 뒤로 무너져 내리는 빙하를 보았다. 이제 북극곰이 아니라 인간의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기후 위기에 관한 이야기를 각종 칼럼과 글, 사람들을 통해 자주 듣고 경험한다. 얼마 전 생일에는 친환경 재생 포장지로 포장된 비건 핸드크림과 유기농 물비누를 선물 받았고,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비건 식당에서 직접 가져간 용기에 음식을 포장해 오기도 했다. 텀블러를 인증하는 캠페인이 SNS에서 유행하는 것을 보며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과 위기감이 일종의 유행처럼 일상에 스며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잎채소와 아보카도 그리고 두부 ⓒ박서희
▲ 잎채소와 아보카도 그리고 두부 ⓒ박서희

기후 위기에 상당히 일조하고 있기에, 그나마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인의 노력이 육식을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공장식으로 대량 도축되는 고기 섭취를 줄여야 한다. 일상 식단 속 육식을 강조하는 것이 각종 축산협회와 모종의 협의를 이룬 일부 의사들의 비양심적인 행태라 비판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육식을 통한 단백질 섭취가 필수적이지 않을뿐더러 노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고, 심지어는 육식이 남성성의 과도한 증폭과 가부장제 사회를 일구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혹자는 "육식을 하는 지식인을 의심하라"며 강경하게 말하기도 한다. 어디선가 고기를 먹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글을 읽은 것도 같다. 이쯤 되면 애초에 육식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개인의 건강 측면 뿐만 아니라 육식과 기후 위기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게 되면서 무언가 섬뜩하도록 이상했던 지난여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50여 일간 지속된 장마를 겪었다. 스콜성 폭우가 간헐적으로 내렸다. 비정상적인 더위로 예전보다 여름이 힘들어졌다. 오래 습하고, 더 더웠기 때문에 에어컨을 오래 켜두고, 서큘레이터를 내내 틀었다. 건조한 차가움에 만족하며 긴 옷을 걸치거나 담요를 덮는다. TV에서는 수도 없는 고기 종류와 그보다 훨씬 많은 먹는 방식과 고기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십수년간의 습관으로 힘들거나 우울할 때, 무엇인가 기념하고 싶을 때 본능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고기를 찾는다. 아무런 의식 없어 치킨, 백숙, 소고기구이, 샤브샤브, 목살, 삼겹살, 막창을 먹고, 느닷없이 내리는 비를 감상한다. 기후 위기와 육식, 이 둘의 연관성에 대한 정보가 죄책감을 동반한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때는 이미 달라진 여름을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채식주의자는 비겁하다"고 말한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생명이든 늘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며 살아가므로, 살생이 두려워 선택한 채식은 한 생명으로서의 본성에 어긋난다는 말일 것이다. 생명의 순환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차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의 말이 성립하려면 우리 자신이 직접 닭을, 돼지를, 소를, 양을 잡아 죽이고 도륙해야 한다. 이 행위를 함께 했던 원시공동체는 생명을 희생시키는 죄책감을 상쇄하고자, 생명을 취하는 감사함을 인지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의례를 행했다. 적어도 무엇을 먹고 있는지, 그것도 얼마나 먹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가 고기를 섭취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특정한 의식을 갖고 생명을 취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패키지들을 카트에 담거나, 식당에서 먹음직스러운 이미지와 이름으로 인쇄된 종이를 손으로 훑다가 멈추면 된다. 육식에 치르는 대가는 오직 돈이다. 칼을 들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고기는 그렇게 손쉽고 편리하게 우리의 의식에서 오직 대량생산과 생산비 절감이 목적인 공장식 도축 과정을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이 더 자주 무의식적으로 육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불필요하고 과도한 육식이 거대한 환경 파괴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괴리감을 선명하게 목도하고, 의식적 선택을 위한 작은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장을 볼 때 신선하고 붉은 고기들 뒤로 잔인한 공장식 도축이 건재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식재료 뿐만 아니라 재료가 유통되는 과정 또한 친환경적인 생협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한다.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나 버섯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자극적이고 과한 메뉴보다 여러모로 건강하고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식단을 선택한다. '미트리스먼데이(MeatlessMonday)'라는 해쉬태그를 걸어 직접 만든 채식 식사 사진과 작은 실천을 공유한다. '플렉시테리언'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며 채식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이제 개인의 이 미미한 행위가 얼마나 기후 위기에 도움이 될까 하는 허무함에 대해 생각한다. 급하게 샐러드를 사는 경우 채소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손에 들고, 미처 갖고 나오지 못한 텀블러를 떠올리며, 치킨 이야기에 습관적으로 흥분하는 나를 바라본다. 끝내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속화된 종말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고심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애써 스스로를 설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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