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강원청년] 강원에서 여물어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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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강원청년] 강원에서 여물어가는 공간
  • 2020.05.30 17:39
  • by 이혜진 (들꽃사진관 대표)

강원연구원이 발표한 '강원도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의 방향('20.04.28)'에 따르면 강원도 고령화 인구 비율은 2010년 15.8%에서 2020년 20.1%로 증가했다. 이는 전국 고령인구 비율이 15.8%인 것을 고려하면 높은 비율이다. 강원도는 청년 인구감소, 고령화, 저출산으로 지역 소멸의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도 굳건히 자신이 나고 자란 터에 대한 애정으로 강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청년들이 있다. 또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강원도에 정착하게 된 청년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꽃사진관 이혜진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주]

 

■ 춘천, 느긋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공간 '책방마실'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이곳에 책방이 있는 게 맞나? 하며 가정집이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새하얀 건물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 춘천에서 책방마실을 운영하는 홍서윤, 정병걸 부부. ⓒ이혜진
​▲ 춘천에서 책방마실을 운영하는 홍서윤, 정병걸 부부. ⓒ이혜진

마당의 잔디도, 간판도 너무 매력적이라 밖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구경하다 들어갔었다.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책방마실은 서까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진한 나무색의 가구들과 흰 벽 그리고 초록색 식물의 조화가 이 공간에 취할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 공간 속에서 단단하게 움직이는 홍서윤 대표의 모습은 공간의 잔잔한 느낌을 꽉 잡아주었다. 책방에 큐레이팅 된 책들이 왠지 의미가 다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뢰도가 높아 보였달까. 홍 대표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였다. 필자가 느낀 첫인상과 홍 대표의 전직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첫인상에서 신뢰의 느낌이 온전히 전해졌다는 사실에 혼자 놀라워했었다. 왠지 이곳은 홍 대표의 팬들이 많이 찾을 것 같다.

홍 대표는 현실적인 문제로 도서관 사서 일을 접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다 지금의 남편인 정병걸 대표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보컬과 연주로 인디밴드 '모던다락방'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고, 홍 대표는 책을 좋아하고 계속 '사서' 일을 하고 싶었기에, 음악과 책이 있는 곳인 '책방마실'을 만든 것이다.

책방마실은 홍 대표의 큐레이션으로 요리, 영화, 음식, 식물,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간혹 손님들의 추천 책들도 받아서 책꽂이에 진열하고 있다. 작게 분리된 방에서는 소규모 모임도 가능하다. 또한, 책방마실은 공간마다 다른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홍 대표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오롯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책방마실의 테라스 정원. ⓒ이혜진
▲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꾸민 책방마실의 테라스 정원. ⓒ이혜진

여기에 분위기 최종 보스가 있다. 바로 온실처럼 꾸며둔 테라스 정원이다. 필자도 식물을 키우고 있지만, 남쪽을 등지고 있는 사진관에 해가 잘 들지 않아 식물들이 오전 4시간밖에 햇볕을 쬐지 못한다. 이 점이 참 속상한데, 책방마실의 테라스 정원은 오후 내내 햇볕이 내리쬐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공간이었다. 

이 공간의 컨셉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꾸몄다고 했다. 주말의 나른한 오후에 배를 통통 뚜들기며 책을 한 권 사다가 테라스 정원에 앉아 식물 냄새 맡으며, 햇볕 쬐며, 책을 읽는 상상을 하니 참 행복했다. 이것이 일상이라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평소에도 공간에 공을 들인다는 게 쉽지 않은데, 홍 대표님은 해내고 계셨다. 빛이 잘 들어오고, 그 빛들이 식물들 위에 닿는 오후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그곳을 감상했었다. 

책방마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책만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 모임을 하러, 요가ㆍ명상을 하러, 음악공연을 즐기러 오기도 한다. 홍 대표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며 춘천 문화인들의 느슨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 2층 소모임 공간. ⓒ이혜진
▲ 2층 소모임 공간. ⓒ이혜진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형식의 독서ㆍ글쓰기 모임인 '방구석독서 모임'을 하고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일주일에 한 명씩 돌려 읽으며 다른 색으로 메모, 밑줄을 남기며 의견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사람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홍 대표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읽은 사람들끼리 만나보진 못하지만 다른 색으로 써진 감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인간적이고 따뜻한 마음들이 전해질 것 같다. 

비대면 사업으로 온라인 책판매도 고민하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생긴 노하우로 책방마실의 특별한 온라인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을 꾸미듯이 온라인도 홍 대표답게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나갈 것만 같다. 온라인으로 책방마실의 회원이 될 수 있다면 필자도 회원이 되어 멀지만 가까운 책방마실의 느슨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 소가 살던 집을 전시 공간으로 만든 고기은(딸), 고종환(아버지)대표. ⓒ이혜진
▲ 소가 살던 집을 전시 공간으로 만든 고기은(딸), 고종환(아버지)대표. ⓒ이혜진

■ 강릉, 이야기를 엮어내는 소박한 전시공간 '소집'

소집은 소가 살던 집이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공간을 고기은 대표가 차지했다. 처음에 진짜 소가 살던 집이냐고 재차 확인 질문을 했었다.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비슷한 반응이었을 것 같아 피로도가 많이 쌓였을 텐데, 조금 죄송스러웠다.

고 대표는 필자가 사진관을 운영하기 전에 만났던 사이이다. 2018년 태백 '무브노드' 오픈식 행사에서 아는 사람이 너무 없어 집에 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던 찰나 옆자리에 앉아 있어 주었던 고 대표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그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는 말에 늦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필자 또한 여행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공감되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 대표의 아버지가 강릉의 사진작가라 우리의 대화는 더더욱 풍성했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소집'을 오픈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 고 대표는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며 소집을 운영하고 있다.(아버지와 처음 찍어보는 커플사진이다) ⓒ이혜진
▲ 고 대표는 아버지와 티격태격하며 소집을 운영하고 있다.(아버지와 처음 찍어보는 커플사진이다) ⓒ이혜진

고 대표는 이전에 방송작가로 일했다고 한다. 그 일을 그만두고 여행 작가를 하다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그 공간이 책방일 거라 예상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고 대표는 이미 책을 여러 번 냈고, 책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보고 있을 수 없고 매일 입고되는 책을 정리하고, 분기마다 정산하는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이후에 아버지가 원하는 '카페'도 고려를 했으나 고 대표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자신의 여행 습관을 되돌아보니 꼭 박물관과 갤러리를 갔다고 한다. 공간 안에서 작품을 바라보며 생각을 깨워 주기도 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곤 했으니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갤러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집을 운영한 지 이제 1년. 이 일은 쉽지 않았고 한다. 여행하는 유목민들은 한곳에 오래 있으면 불안해하기 마련이다. 고 대표는 소집을 오픈하고 여행과 공간 사이의 접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다. 소집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여행 작가 일에도 집중하고 싶었던 고 대표. 그래서 소집은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딸이 잠시 비운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마당에 잡초도 뽑고, 가끔 하모니카를 불기도 하며 소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마 이 공간에 고 대표보다 더 많은 애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소집의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는 관람객. ⓒ이혜진
▲ 소집의 전시물을 구경하고 있는 관람객. ⓒ이혜진

소집에는 지역작가나 예술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하고 있다. 작가들에게는 개인전을 하기에 부담 없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소집의 작은 규모가 전시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시장에 항상 '소집지기'가 있기 때문에, 전시작가가 상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1년 동안 9개의 전시가 이루어졌고 전시작가들과 토크쇼도 진행하면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고 대표는 관람객에게 전시작품을 설명하기도 하고, 소집 주변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을 뽑아 스토리 카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이벤트도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행복하다고 한다.

소집은 최근 재미난 것을 기획하고 있다. '함께 쓰기 강릉, 고하다(가제)'라는 제목의 온라인 이야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여행지 강릉이 아닌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강릉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들을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다. 공간에 묶여버린 유목민의 라이프 밸런스를 위한 새로운 발상이다. 이렇게 소집은 강릉의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강원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소중한 공간이 될 것만 같아 10년 뒤가 기대된다.

 

이혜진 (들꽃사진관 대표)

필자는 강원도 정선에서 나고 자랐다. 한때는 답답한 강원을 벗어나고 싶어 훌쩍 떠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보니 강원의 매력을 알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현재는 들꽃사진관을 운영 중이다. '어디를 가든지 마음을 다해 가라'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오늘의, 바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18-19년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주관한 '나, 강원청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참여해 강원도에 정착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본고는 촬영 당시 나누었던 대화,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을 진솔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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