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사회복지국가에서 사회투자국가로, 경제발전 모델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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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사회복지국가에서 사회투자국가로, 경제발전 모델의 전환
  • 2021.08.02 09:00
  • by 김진환 (퀘벡사회적경제 연구회, HEC 몬트리올 경영학과 박사과정)

사회적경제의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사회적경제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정부의 지배를 받았던 관제 협동조합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경제가 이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을 누린 사례는 매우 드물다.

생필품을 적절한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뭉친 영국의 협동조합에서부터 고리대금의 횡포에서 벗어나 상호 부조를 목표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신용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정부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다.

정부와 사회적경제 섹터와의 협업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의 일이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캐나다 등 일부 나라에서 돌봄, 고용 창출,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목표와 밀접한 영역에서 나타났고, 곳곳에서 사회적경제와 정부의 협력 사례가 등장했다. 특히 퀘벡에서 사회적경제와 정부의 협력모델은 '복지국가에서 사회투자국가로의 전환'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정부의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와 같은 전환은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내용의 변화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적경제에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그 전환점이 되었던 1996년의 노사정 시민사회 대표자 회의를 즈음한 전후 사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질문에 대답해 보고자 한다.  

먼저 4자 대표자 회의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던 퀘벡 주지사의 사정을 살펴보자. 다른 정당에 비해 노동 친화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던 퀘벡당의 주지사 뤼씨엥 부샤르는 1996년 취임 직후 주 정부의 주요 경제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즉각적이면서도 강력한 조치가 긴급히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995년 퀘벡주 독립 국민투표로 각 정당과 시민사회, 전 사회 차원에서 극심한 에너지를 소진한 뒤 부샤르 주지사가 취임했던 당시, 상황은 한마디로 비상시국이었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캐나다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었으며, 재정 적자 또한 역사상 최고점을 치고 있었고, 신용평가사들은 대외비 교신을 통해 신용등급 강등이 임박했음을 통보해왔다. 경제 성장률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재정 정책이 필요하지만, 누적된 재정 적자는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었다.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 실업문제도 심각했다. 80년대 이후 탈공업화 추세로 인해 실업률 또한 지속해서 높아지고 있었고,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실업률 저감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노동계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요구가 거셌다. 이처럼 경제 침체 및 실업률 증가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했으나, 정부에서 단독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제한이 있었다.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3월 1차 회의 때 CSN 의 제랄드 라로즈 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Copyrihgt : Le Devoir)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3월 1차 회의 때 CSN 의 제랄드 라로즈 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Copyrihgt : Le Devoir)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노사정 회의를 소집하여 위기를 돌파한 과거 퀘벡의 역사를 돌아보며, 이런 위기 상황이야말로 노사정 대표회의를 소집하여 전국민적인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96년의 노사정 대표회의에는 그동안과 달리 시민사회가 추가되어 노사정-시민사회 4자 대표자로 추진하기로 했다. 바로 전 해 빵과 장미의 행진을 통해 분출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 시민사회 대표자들 또한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10월 2차회의 때 당시 고용부 장관 루이즈 아렐 (Louise Harel) 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을 당시 주지사인 뤼씨엥 부샤르 (Lucien Bouchard) 가 바라보고 있다. 주지사 우측은 데자르뎅 연합회 이사장이었던 끌로드 벨랑 (Claude Béland) 의 모습이 보인다. (copyright : Le Devoir)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10월 2차회의 때 당시 고용부 장관 루이즈 아렐 (Louise Harel) 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을 당시 주지사인 뤼씨엥 부샤르 (Lucien Bouchard) 가 바라보고 있다. 주지사 우측은 데자르뎅 연합회 이사장이었던 끌로드 벨랑 (Claude Béland) 의 모습이 보인다. (copyright : Le Devoir)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10월 2차회의 때 당시 양대 노총인 CSN(전국 노동조합 총연합회) 의 대표 제랄르 라로즈 (Gérald Larose) 와 FTQ (퀘벡 노동자 총연맹) 대표 클레망 고드붓(Clément Godbout) 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Copyrihgt : Le Devoir)
▲ 경제와 고용문제에 관한  최고위급 회담 10월 2차회의 때 당시 양대 노총인 CSN(전국 노동조합 총연합회) 의 대표 제랄르 라로즈 (Gérald Larose) 와 FTQ (퀘벡 노동자 총연맹) 대표 클레망 고드붓(Clément Godbout) 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Copyrihgt : Le Devoir)

주지사는 3월과 10월에 대표자 회의 일정을 잡고, 3월 대표자 회의에서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짜기 위한 실무그룹의 구성을 제안하여 대표자들의 승인을 받는다. 3월 대표자 회의에서 승인한 실무 그룹은 크게 기업 대표가 이끄는 민간 경제 활성화 대책을 위한 실무 그룹 몬트리올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실무 그룹,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실무 그룹,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 실무 그룹 이렇게 네 개가 있었다.

각 실무 그룹의 좌장은 기업의 대표들이 맡았던 데 반해, 사회적경제 실무 그룹은 지역 운동을 하면서 뽀앵뜨 생-샤를(Pointe-Saint-Charles)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낸시 님탄이 맡았다. 전통적인 협동조합, 공제회 조직들에 더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던 사회적경제 조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제도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여러 혁신안들을 기획해 낸 것이, 바로 낸시 님탄이 이끌었던 바로 태스크 포스 형태의 조직이었다. '사회적경제 실무 워킹그룹'이라는 공식 명칭 외에 별칭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회적경제 건설현장'(Chantier de l’économie sociale;샹티에)이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영역에도 많이 알려진 샹티에라는 이름은, 퀘벡에서 길을 다니면 곳곳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마다 팻말에 쓰여있는 말이다. 뜬구름 잡는 이념 투쟁이 아니라, 실제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대책을 건설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아일랜드, 네덜란드, 핀란드 등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회적합의 모델을 시행한 경우에 논의된 주제들을 보면 거의 모든 경우 핵심 의제는 노동문제였다. 노동 시간 감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든가, 노동의 유연성을 증진시키는 대신 고용 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던가 하는 3자간의 절충과 협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대개 케인즈식 복지국가 모델에서 노동 유연화나 복지 후퇴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로 이행되었다. 노사정 합의 모델이 대립적 노사관계에 비해서는 노동계의 이해를 반영하는 장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부상하는 중국 및 신흥국 경제와 격화되는 경쟁에 맞닥뜨린 선진국 경제로서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측면이 있다. 

퀘벡의 노사정+시민사회가 이룩한 사회적경제로의 전환은 그런 점에서 다른 노사정 합의 모델과 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고용과 재정 악화의 이중 위기에서, 퀘벡의 노사정 합의에서 만들어 낸 전환은, 어르신 돌봄, 아이 돌봄, 사회적주택, 노동통합형 사회적기업 등 주요 사회적경제 섹터에 대한 지원이 재정부담은 줄이면서 서비스의 효과성은 높이는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고, 전통적인 협동조합, 공제회에 더해 정부 투자를 받는 서비스 섹터 사회적경제를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편입했다. 

※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할 즈음 사회적경제 국제센터 CITIES 의 법인 해산결정을 즈음하여 중단되었던 '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를 시작으로 다음 연재에서 돌봄 사회적기업, 어린이집, 사회적주택, 노동 통합형 사회적기업 등 각 섹터에서 구체적으로 '복지국가에서 사회투자국가로의 전환'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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