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주거권 투쟁에 뿌리를 둔 사회적주택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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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사회적경제 이야기] 주거권 투쟁에 뿌리를 둔 사회적주택 운동
  • 2021.10.11 09:00
  • by 김진환 (퀘벡사회적경제 연구회, HEC 몬트리올 경영학과 박사과정)
06:24

캐나다 시민사회의 사회적주택 섹터는 20세기 초반부터 협동조합 주택 등 사회적 주택을 보급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면서도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 70년대, 정부 정책 전환을 기점으로 큰 흐름을 형성했지만, 시민사회와 정부의 관계가 늘 화목한 협력 관계였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문제제기와 투쟁으로 일관된 갈등의 연속이었다. 

70년대 사회적주택 관련 시민사회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공공임대주택의 지배구조 개선 투쟁이고, 다른 한 흐름은 정부 정책 목표의 달성과 맞물렸던 ‘커뮤니티 하우징’ 운동의 확산이다. 

70년대 지배구조 개선 투쟁을 대표하는 사례 하나가 쟌-망스 주택법인(La Corporation d’habitations Jenne-Mance :CHJM)이다. 쟌-망스 주택법인은 퀘벡의 비영리 주택법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홍등가이자 슬럼가였던 곳을 철거하고 그 지역에 살던 노동자 및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정부가 만들어 운영한 것인데, 연방정부 기관인 CMHC가 건축비용의 75%를 대고 나머지를 몬트리올시와 주정부가 부담하여 만들어진 공공임대주택을 운영하는 기관이 CHJM, 즉 쟌-망스 주택법인이다. 

▲ 쟌-망스 주택법인 전경  ⓒLa Corporation d’habitations Jenne-Mance
▲ 쟌-망스 주택법인 전경  ⓒLa Corporation d’habitations Jenne-Mance

최초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이자 최초의 사회적주택(공공임대주택)이라는 의의 외에도 쟌-망스 주택법인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공공임대 주택의 입주자들이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의 수혜자들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이용자들로서 임대주택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거권 운동단체들과 퀘벡 노동자 총연맹(FTQ) 등 시민사회와 노동계와의 협력을 통해 입주자들의 이사회 참여가 입주자들에게 이익이 될 뿐 아니라 임대주택과 시 정부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입주자들이 참여하는 지배구조는 다른 공공임대주택의 운영에도 표준이 되었다. 

오늘날 쟌-망스 주택법인은 가장 친환경적인 주차시설로 상을 받고,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협력을 통해 커뮤니티 가든과 재활용 프로그램, 이주자 주민들을 위한 문해(文解)프로그램 운영 등,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입주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로, 사회 통합과 도시 재생의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퀘벡의 사회적 주택 섹터에서 쟌-망스 주택법인 사례와 같은 공공임대주택에서의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흐름이 70년대 이후 정부기관이 아닌,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사회적경제 주택' 의 대두이다. 70년대에는 사회적경제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이라 '사회적경제 주택'은 캐나다에서는 '커뮤니티 하우징'으로 불린다. 

70년대에 퀘벡에서 커뮤니티 하우징이 급속하게 확산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구 변화와 경제 환경으로 인한 ‘주거 위기’를 들 수 있다. 베이비 부머 세대의 사회진출 및 가족 구조 변화로 인한 주택 수요 증가보다 주택 공급의 증가는 뒤처지고 있었으며, 저소득층이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또한 턱없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재개발 정책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으나 기존 주민들의 주거권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공공임대주택 지배구조 민주화 투쟁 및 강제 철거 반대 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시민 단체간의 네트워크는 투쟁 일변도로는 정부의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의 주거권을 장기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주택형태. 협동조합 주택과 비영리 법인 형태의 사회적주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퀘벡 각 지역에서 재개발과 철거 반대를 위해 투쟁하던 시민단체들이 이후에 연합하여 만든 조직이 도심재개발 민중전선 (Le Front d'action populaire en réaménagement urbain : FRAPRU) 인데, FRAPRU는 80년대 각 투쟁단체간의 여러 차례에 걸친 토론을 통해 저소득-노동 계층의 주거권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방법은 사회적주택이라는 데에 총의를 모으고, 각 투쟁 지역에서 재개발 대상 지역을 상업 주택이 아닌 사회적주택으로 재개발하는 데 힘을 모으게 된다. FRAPRU는 각 철거 반대 투쟁 조직들의 연합 조직으로서 정책 개발과 어드보커시 활동에도 역량을 집중하여, 주정부 및 연방 정부의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자료집 발간과 시민사회 투쟁 조직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 1970년대 퀘벡 각 지역에서 재개발과 철거 반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시민단체 ⓒFRAPRU   
▲ 1970년대 퀘벡 각 지역에서 재개발과 철거 반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시민단체 ⓒFRAPRU  

퀘벡 사회적주택 섹터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형태의 단체들이, 사회적주택 설립/ 운영 실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실무지원기관(GRT:  Groupe de ressources techniques)이다. 이 GRT라는 기관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것은 연방정부-주정부의 예산이 함께 투입되는 커뮤니티 하우징 지원 프로그램, LOGIPOP이 계기가 되었다. 당초 정부의 예산 집행을 위해 설립된 중간 지원 기관의 성격을 띠었으나, 퀘벡주 이외의 다른 주에서는 프로그램들의 종료와 함께 조직들이 사라진 것과는 반대로, 퀘벡주에서는 LOGIPOP 프로그램의 종료 이후에도 사회적 주택 관련 시민사회 네트워크 속에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확장해 나갔다. 

GRT는 단순히 협동조합이나 비영리 주택법인의 설립 및 운영 실무만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각 사회적주택의 실무를 지원하면서, 사회적주택의 소비 관계와 생산관계에 대한 철학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의 관점으로 주택의 소비자를 볼 때 적절한 물리적 공간을 적절한 시장 가격에 공급받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면, 사회적 주택의 입주자들에게 필요한 공동체의 형성,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 소속감과 자존감 등이 사회적주택의 종합적인 소비관계의 중요 요소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생산 관계가 ‘개선’ 또는 ‘미화’가 필요한 지역을 정비하여 철거 후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여 시장에 공급하는 방식이었다면, 기존 주민들의 주거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삶의 질에 대한 생각, 공동체 참여 등 무형의 요소들이 생산 관계에 대한 개념에 추가되어 신축할 것인지 매입 후 리노베이션을 할 것인지,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공동체 형성을 위해 더 나은 방식인지, 하는 요소들이 GRT가 활동하면서 수만 개의 사회적주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점차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온 것이다. 

ⓒBatir Son Quartier 
ⓒBatir Son Quartier 
▲Cooperative Le Coteau vert – 대표적인 GRT 조직인 "Batir Son Quartier"가 협력한 현장 ⓒBatir Son Quartier 
▲Cooperative Le Coteau vert – 대표적인 GRT 조직인 "Batir Son Quartier"가 협력한 현장 ⓒBatir Son Quartier 

이 GRT 라는 형태의 조직들은 퀘벡의 사회적주택 섹터가 오늘날의 모습이 된 데 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조직들이며, 다음 글에서는 몬트리올에서 활동하고 있는 GRT 조직의 탐방기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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