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특집] 여성친화적인 사회적경제라는 담론의 난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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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특집] 여성친화적인 사회적경제라는 담론의 난처함
  • 2020.03.06 19:29
  • by 김주환(단국대학교, 자유교양학부 조교수)

3월 8일은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된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1975년 UN에서 이날을 '세계여성의 날'로 지정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됐다. 중국과 북한, 베를린, 헝가리, 우즈베키스탄, 라오스 등 많은 나라들이 여성의 날을 휴일로 지정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이다.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사회적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여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이어지는지 살펴보고 사회적기업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나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실행돼야 하는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 여성친화적인 사회적경제(?)

일반적으로 공식 경제 영역은 이익 추구, 냉정한 현금 계산 논리, 성과 지향성, 경쟁, 위험 감수, 모험적 기업가정신 등 전통적으로 남성적 특성이라고 여겨져 온 가치나 태도들을 미덕으로 삼아 작동한다. 실제로 공식 경제 영역은 남성에, 비공식 가정 경제 영역은 여성에 적합한 자리라고 여기는 뿌리 깊은 성별 노동 분업의 논리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여성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정서적, 감정 관여적이기에 공식 경제 실천에는 부적합하다. 이러한 관점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임금노동과 부불노동, 일터와 가정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면서 가부장적 남성 지배 질서를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Grameen Bank

이렇게 볼 때 젠더 차원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실천 영역은 매우 독특하다. 사회적경제는 일종의 경제 영역이지만 이른바 영웅적 남성 기업가로 응축된 남성적 특성들의 논리로 조직되는 영역이 아니라 돌봄, 배려, 상생, 공존, 공감, 감성적 관여 등 여성적인 것으로 불리는 가치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를 다루는 담론들은 보통 앞서 말한 공식 경제 영역 특히 시장의 논리와 이른바 남성적인 특성들을 오늘날 우리 삶과 사회의 여러 위기를 가져온 원인으로 탄핵하면서 그 대안으로 사회적경제와 이른바 여성적인 것의 논리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적경제를 대안적인 여성친화적 경제라고 말한다. 누구나 냉정한 현금 계산의 논리보다는 이웃들과 나누고 정서적으로 공감하면서 만들어가는 공존의 삶이 더욱 따뜻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아 보인다. 

 

■ 성별노동분업의 변형: 해체하면서 재생산하기

사회적경제의 실천 영역들 중 특히 사회적기업에 한정해서 말해보자. 사회적기업의 담론은 여성들을 사회적기업의 주체로 호명한다. 일례로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한정된 가계의 자원을 효과적이고 세심하게 분배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보고 빈곤계층 여성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어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도록 도모한다. 이를 통해 여성은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소규모 경제활동을 통해 가정경제를 경영하는 유능한 기업가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사회적기업 담론들에서 일터와 경제는 남성, 가정과 가사는 여성으로 할당되어 있던 성별노동분업의 구도가 부정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유리 천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공식 경제 조직에서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 비율은 매우 낮지만, 사회적기업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는 여성관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는 점을 여러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위직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의 사회적경제 참여도는 매우 높다. 즉 사회적경제 담론은 가정에 머물고 있던 여성을 공식 경제 영역 또는 일터로 끄집어낸다. 이렇게 볼 때 사회적경제는 전통적인 성별노동분업의 구조를 해체시키는 대안적 성격을 지닌다. 

▲ 1983년  설립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소액 대출을 실시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다. ⓒGrameen Bank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와 같은 성별노동분업의 해체는 다른 방식으로 성별노동분업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사회적경제의 실천들(특히 사회적기업 활동들)은 주로 사회서비스 영역, 즉 돌봄서비스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사회적경제가 전통적으로 가족이나 지역공동체들이 수행하던 돌봄 영역을 산업의 형태로 제도화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경제는 그동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 노동을 공적 영역으로 이전시켰다. 하지만  공적 영역 안에서 다시 성별노동분업의 구조를 반복한다. 사회적경제가 여성친화적이라는 담론은 공적 경제 영역 내부를 지배적인 경제 영역과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남성적 영역과 여성적 영역으로 재할당하는 논리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경제는 성별노동분업을 해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재생산한다.  

 

■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여성친화적 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가 여성친화적이라고 말하는 담론은 이웃과의 정서적 공감에 기반한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사회적경제의 특성이 흔히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들과 친화성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회적경제의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특성은 자기중심적이고 이해관계 중심적인 기존 경제 논리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관계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특성을 여성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특성들을 통해 사회적경제의 실천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게 여성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다.  관계 지향성과 공동체 지향성이 도덕적으로 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그것이 악용될 경우 자칫 자기 이해보다는 타인의 이해를 우선해야 하고 자기는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필요도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시킬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기존 지배 질서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미 충분히 희생당하고 있는 집단이다. 일례로 '여성의 빈곤화(feminization of poverty)'현상을 들 수 있다. 이는 서구에서 1970년대 이후 빈곤이 급격히 여성에게 집중되면서 여성문제화 되어 가는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사회적기업과 같은 사회적경제 영역들은 이들 빈곤취약계층 여성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여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또 다른 다양한 취약계층들을 보살핀다. 그런데 삶의 어려움이나 위기를 겪는 이웃을 돌본다는 점 그 자체를 미화하다 보면 정작 그 돌봄 노동을 하는 빈곤계층 여성들의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등은 비가시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다양한 희생을 경험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사회적경제가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pixabay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특히 오늘날같이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없이 훌륭한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훌륭한 궁극적 가치들은 당장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운영하는 논리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에게 가장 긴급한 문제들 중 하나가 조직의 지속가능성이다. 이들의 구체적인 실천을 관통하는 압박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전략이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다시 파고든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경제 조직도 일종의 경제조직으로서 경제 논리로 운영될 때 본래 목적인 사회적 가치의 창출과 이웃과 나누는 삶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나타난다. 이때 역설이 발생한다. 관계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은 궁극적 목적일 뿐 당장은 그와 상반되는 냉정한 경제 논리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경제 조직이나 활동가들은 경제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매파들의 논리와 동일한 논리가 등장한다. 젠더 차원에서 말하자면 이른바 남성적인 것의 논리가 여성적인 것의 논리를 몰아낸다. 관계 지향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이라는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특성들은 이런 식으로 이른바 남성적인 것의 논리 강화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도덕의 언어에서 권리와 정치의 언어로 

이렇듯 사회적경제와 여성은 간단치 않은 관계로 엮여 있다. 사회적경제가 여성친화적이라는 말은 의도치 않게 가부장적 남성지배 논리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사회적경제가 부상한 것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해 빈곤 문제가 전면화됐기 때문이다. 빈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문제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한 해법 역시 각종 사회보장제도나 복지제도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문제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해법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pixabay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잔인함은 바로 이 상식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빈곤과 여기서 연유하는 우리 삶의 위기들을 사회적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해결하라고 압박한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해결은 개인적 노력으로 대처하라는 이 뻔뻔함이 신자유주의의 잔인한 맨얼굴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적경제는 바로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요청되었다. 즉 현장활동가들의 신념이나 지향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구멍을 보완하기 위한 기능적 요구가 사회적경제로 구체화됐다. 빈곤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취약한 이웃들이 있으니 이들을 돌봄, 공감, 관계, 공동체, 상생 등을 미덕으로 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적인 것의 특성들은 이렇게 신자유주의 체제의 기능 논리로 포섭된다. 

애초에 국가 주도의 복지를 통해 사회적 제도로 해결되었어야 할 문제를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것'이라고 여겨온 도덕적 가치들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니 이상과 같은 역설과 난처함이 계속 반복된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도덕적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그 도덕적 가치들을 일반화하고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힘과 전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경제가 진정으로 여성친화적인 실천 영역이 될 수 있으려면 흔히 여성적인 특성들이라고 말해지는 가치들을 단순히 신자유주의의 말단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 이 사회 전체를 바로 그 여성적인 가치들을 통해 재조직하는 논리로까지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전면적으로 확장하려면 사회적경제는 여성들의 희생을 미화하는 도덕의 언어를 벗어나 사회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여성들과 약자들의 권리 요구의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은 도덕의 영역을 넘어 정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통받는 이웃을 보고 도덕감정이 발동해 돕고자 하는 마음은 고귀하지만 마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그 마음을 사회적 제도로 구체화해야 한다. 여성친화적 가치를 넘어 여성친화적 제도를 만드는 정치 운동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김주환 교수의 "사회적기업과 젠더 담론의 정치동학(2015)" 일부를 재정리, 요약한 것이다.

 

김주환

Georgia state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하고 현재는 단국대학교, 자유교양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심분야로는 사회학이론과 사회사상, 사회적경제와 통치성, 문화사회학, 정치사회학, 권력과 담론 등이다. 지은 책으로 <포획된 저항>(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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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단국대학교, 자유교양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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